무언가
김경성
물에서 미리 뿌리를 내리는 삽목처럼 물줄기를 찾아서 왔을까
가지가 잘린 나무가 종이상자가 되어 집으로 왔다
문 앞에 탑으로 서 있는 종이상자에는
검붉은 생고기와 간고등어 복숭아 감자 양파 지중해의 올리브와
목관악기가 들어 있다
수국이 물을 빨아들이듯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목관악기로
무언가를 연주한다
나무는 수신인이 찍혀있는 소인을 따라서
제 속에 이어 붙인 숲으로 현관 앞에 탑을 쌓기도 하고
사람들의 입에 덧대어진
향기도 없는 넓은 꽃잎이 지는 것을 바라본다
전지가위로 잘라 낸 수국은
덧없다는 말을 다 지우고 가지 끝에 뿌리를 내리며
꽃숭어리에 닿고 싶어서 호흡이 가쁘다
입을 닫고 손도 마주 잡을 수 없는, 오로지
눈으로만 말하는 이 세상
어느 별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이 집어등처럼
그 많은 말言을 모으고 있는 것일까
새벽에 배달된 목관악기를 꺼내서 연주를 시작한다
집안 가득히 차오른 무언가(無言歌) 창문 틈으로 새어나간다
-『포엠포엠』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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