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시집『와온』

이끼

by 丹野 2020. 9. 15.

 

이끼 / 김경성

 

그만큼의 거리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디여도 몸 내려놓을 자리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가장 가벼운 몸으로 골짜기 그 너머까지

썩은 나무의 등걸을 지나 동굴 속까지

너른 바위 안쪽까지

철퍽철퍽 미끄러지는 물 잔등이어도

마른 입술 툭툭 터지도록 긴 가뭄이어도

몸 깊숙이 남겨놓은 자리가 있어

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

아주 짧은,

단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도 너른바위를 덮고

계곡을 덮고

고인돌까지 덮을 만큼

지독하게 간절한

무엇이 있어

 

 

 

『와온』, 문학의 전당, 2010

 

 

 

 

'丹野의 깃털펜 > 시집『와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깊고 두꺼운 고요  (0) 2020.09.15
나무는, 새는  (0) 2020.09.15
달의 궤적  (0) 2020.09.15
달의 궁전  (0) 2020.09.15
달의 뒤편 1  (0) 202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