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김경성
처음부터 높은 곳에 달의 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해찰 하는 사이 달은
나무 우듬지에 걸터앉아
호시탐탐 우리 근처를 배회했던 것이다
날개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나무 모양으로 세우고
수백 채의 집을 지어 달의 방을 만들었다
비밀번호를 몰라도 방으로 들어가는 법을 아는 달은
지금도 몸 굴리거나 몸 열어 여러 개의 방을 삼키면서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가장 높은 꼭대기의
집 한 채,
다른 집보다 한 뼘은 더 깊은 방에 사는 그가
보름날 금실로 짜 넣은 달그림자 접어놓고
달의 문을 열어 내 손에 열쇠를 쥐어주었을 때
솜털 세운 달의 가슴 부풀어 올라
물오른 나무도 덩달아서 향기 분질러대며
열꽃 같은 꽃망울 터트렸다
문을 열고
쏟아져나오는 달빛
삼키며 달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달의 궁전은, 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닳아버린 달의 안쪽이 다시 커지는 만큼의 시간이거나
먼 곳까지 빛의 그물 드리워 달의 몸이 작아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
달의 문짝 너머로
부풀어 오른 달의 가슴이 보이는
그의 방이 달의 궁전이다
*달의 궁전-폴 오스터의 장편소설 '달의 궁전'
- 시집 『와온』문학의 전당,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