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양 적성산성 적성비 앞
달의 뒤편 1
김경성
몇 잎 남지 않은 담쟁이덩굴이 아니어도
바람 들어와 산성은 늘 허허롭다
감꽃이 피고 지는 동안
돌 틈으로 쓸어내리는 빗물 있었을 것이고
스러져 다른 나무에 기대고 있는 소나무 또한
지상에 떠 있는 동안 빛나는 생이었으므로
솔방울 열어 씨앗 날리고 있다
산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모퉁이
라고 고고학자는 말했다
모퉁이에 서서
이쪽저쪽으로 퍼져있는 산성의 길을 바라보니
파헤쳐놓은 성벽 뒤편이
진흙으로 덮여있다
푸른 이끼의 말로 덮여있다
거친 돌을 감싸 안고 화살의 독을 묽게 만들어
성 안에 꽃이 피어나게 했던 것이
진흙의 부드러움이었다니,
달의 뒤편도
푸른 이끼보다 더 은은한 것들로 덮여있어
지느러미가 달린 말들이 파닥거리고 있을까
산성의 부드러운 내면을 들여다보며
달의 뒤편이 궁금해진다
- 시집 『와온』문학의 전당 2010년
2006년 가을, 적성산성에서 / p r a h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