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방식 / 김경성
꽃이 지고 있어요 버찌가 부풀고 있어요 수양 버드나무가 긴 가지를 흔드니 호수에 파문이 일어요 봄 내내 앉아있던 청둥오리가 마지막 편지인 듯 푸드덕 날아오르며 아주 커다란 말을 호수 가득히 채워놓고 서쪽으로 날아갔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소소한 날이었는데 그런 게 아니었군요 저도 그만 움칠! 한참이나 새가 날아간 하늘을 바라봤으니까요
사는 일이 별거 아닌 게 아니었어요 제비꽃이 저보다 큰 나비를 불러들여서 꽃이 진 줄 알았으니까요 어느새 민들레 씨앗이 붕붕붕 하늘을 날고 있어요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키 큰 모과나무에 연분홍 꽃이 피었어요 분홍으로 말하는 것들은 설렘이 있어요 꽃을 세어보다가 날이 저물 뻔했어요 하루 해는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는 것 모과 꽃을 세다가 알았어요
바짝 마른 낮달이 종일 뭉게구름을 헤쳐가며 궁구르더니 색을 입었어요 어스름한 저녁 말랑말랑해진 달에서 은은한 빛이 나요 그제야 별들도 제 이마를 닦으며 눈을 깜박거려요 가끔씩 긴 꼬리를 매달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별도 있어요
버찌는 버찌대로 모과 꽃은 모과 꽃대로 별은 별대로 달은 달의 방식으로 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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