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선木船 / 김경성
제 몸속의 문을 닫아 놓고 멀리 떠난 나무를 기억한다
몸속에 키우던 바람을 꺼내 만든 날개에 지느러미를 그려놓고
날개 안쪽에는 커다란 부레를 달고
한 마리 고래상어가 되어 물 위를 난다
나무는 나무였던 것을 잊은 채
잎을 지우고 가지를 지우고
그래도 그림자는 지울 수 없어
켜켜이 쌓인 나이테가 번지며
바닷속 물고기들의 지느러미를 흔든다
제 몸에서 나는 숲 냄새를 수평선에 걸쳐두고
젖은 얼굴로 바라보는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고래상어가 떠나고
그루터기는 나무였던 것을 잊었다
길 잃은 은자가 찾아와 앉았다 가고
다친 새가 날아와서
울다 가는
계간 『시와산문』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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