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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풍경이 되고싶은 詩

아픔에 대하여 / 황정산

by 丹野 2019. 8. 11.



아픔에 대하여


황정산

 

그 동안 우리는 아픔을 아픔이라 말하지 못했다. 나의 고통은 약함의 표징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참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적어도 나는 강해지거나 강하다고 착각할 수 있었다. 강압과 차별과 등급과 서열을 만들고 그것들의 지배를 내면화 시켜왔다.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모든 갑질은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더러 어떤 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말하며 이 아픔을 정당화시키기까지 해 왔다. 지난 겨울을 태우던 촛불은 바로 이 고통의 치유이다. 나쁜 권력들은 항상 고통을 은폐한다. 지난 정권이 우리로 하여금 세월호를 잊으라 하고 블랙리스트로 신음마저 통제하려 했던 사실이 바로 이것을 잘 말해준다. 그간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 속에 살아 왔던가를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짧고 굵게 말하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갈까

지나갈까, 모르겠지만

이 느낌 처음 아니지

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

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

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


황인숙, Spleen전문(시로여는 세상2017년 여름호)


 

spleen은 오장육부 중 비장을 말한다. 시인은 이 비장이라는 용어를 비장함을 말하는 비장이라는 말과 동음이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삶이 이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하고 있다. 슬픔이기도 하고 고통이기도 한 이 비장함은 우리 삶에 찾아오는 단골손님 같은 것으로 자주그리고 자꾸 안녕하고 보내지만 또 계속 찾아오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가볍고 경쾌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이 시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영위되고 있는지를 간명하게 잘 말해주고 있다.고통은 대개 슬픔의 모습으로 일상화 된다. 다음 시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 검붉은 눈동자들 그렁그렁한 눈물

깨물면 입술도 까매지는 블루베리 베리블루

달콤한 얘기 시큼해 블루베리 베리블루

도톰한 젖꼭지 맞닿은 무릎 팔베개하며 잠들던 밤

창가에 앉는 새 기웃거리다 블루베리 베리블루

넝쿨에 얼굴이 가려진 블루베리 베리블루

차마 못 지운 흔적

갓난아기 맑은 눈동자 블루베리 베리블루

건들바람에 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블루베리 베리블루


박수빈, 블루베리전문(미네르바2017년 여름호)


 

블루는 슬픔의 색이다. 시인은 짓푸른 블루베리에서 바로 이 슬픔을 들여다 본다. 그래서 블루베리가 베리블루가 된다. 그런데 이 슬픔은 우리의 삶에 뿌리깊게 내재한 것이어서 도톰한 젖꼭지 무릎 팔베개하며 잠들던사랑의 순간에도 갓난아기 맑은 눈동자와 같은 너무도 순수한 존재에게서도 어김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시인은 이 슬픔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깨물면 입술도 까매지는블루베리처럼 이 슬픔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감춰진 슬픔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들춰내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시인은 바로 그 일을 한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 더욱 고통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음 시는 애써 그 고통의 근원을 파헤쳐 본다.

 

누군가 있었던 자리가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누워본다

별이 쏟아지던 하늘은 금이 가 있고 그 틈으로 내리 꽂히는 빛에 눈이 멀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을 보고만 어느 사람이 제 눈을 파내지 못해서 울컥거렸는가

꽃 자리인 듯 움푹 팬 곳에

시위를 떠나지 못한 화살이 꺾여져 있다

      

어느 시간에서 건너 왔는가

청동검 푸른 낯빛에도 흔들리지 않는 침묵

수없이 많은 눈동자가 굴러다닌다

 

무뎌진 돌 화살촉을 무릎에 대고 갈아본다

살갗을 파고 도는 돌의 눈물이 무겁다

김경성, 고인돌전문(시와산문2017년 여름호)


 

시인은 슬픔의 근원을 무거움에서 찾는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고인돌은 슬픔의 표상이기도 하다. 제 몸의 무게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한 곳에 붙들려 있는 고인돌은 흔들리지 않는 침묵으로 세상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옆에 시위를 떠나지 못한 화살이 꺾여져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은 그것을 느끼기 위해 자신의 무릎에 그 좌절된 자유를 문질러 본다. 그리고 시인은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은 바로 날지 못하고 묶인 자가 가지는 슬픔의 공감에서부터 온다. “돌의 눈물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타자의 고통 속에 존재한다. 그 고통을 잊으면 우리는 폭력의 주체가 되지만 그 고통을 기억하는 한 우리는 노래를 잃지 않는 시인이 된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고통을 기억하고 그것을 노래하는 자로 남겠다는 것이다.다음 시는 이 고통의 기억을 겨울의 이미지와 잘 결합시키고 있다.

 

3월에도 시린 밤을 짚으며 눈이 온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눈이불을 덮은 듯 바깥이 환하다

숲이 하얗게 얼고 있다

     

눈꽃에 덮인 나무들은

툭툭 불러지는 꽃눈의 신통에 여러 날을 앓겠다

병을 업은 사람들은 봄에도 여름에도 겨울이겠다

뼛속에서 얼어버린 체온이

체온을 얻으려고 희디 흰 눈밭을 맨발로 헤매겠다

 

남에서 동으로 북에서 서로 촛불은 촛농을 흘리며

콜록이겠다 어떤 종이들은

찢어질 듯 찢어지지 못하고 맞배지붕의 자세로 무릎이 닳겠다

그믐날 미래를 꺼낸 사람은

죽은 제 어미 곁으로 세 든 사람

풀숲에 버려진 잔설을 제 살처럼 품고 자겠다

     

얼어버린 손가락이, 손목이, 무릎이 거미줄에 걸려 있다

거미줄에 걸려서 시소를 타고 있다

누가 저 비대칭의 게임에 초대한 걸까

바람이 불 때마다 무거워진 쪽으로 한 무더기 별똥별이 쏟아진다

권행은, 관절염전문(시산맥2017년 여름호)

 


 

겨울에 관절염이 심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관절염을 앓고 있는 사람은 사시사철이 겨울이기도 하다. 뼈에서 한기가 들고 마치 뼛속이 얼어있는 것 같아 움직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관절염에 걸린 것처럼 항상 고통 속에 들어있는 몸으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한다. 촛불을 들기도 하고 뭔가를 쓰려고 종이를 꺼내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고통을 벗어날 수 없고 무릎을 닳게 하면서 고통을 내면화한다. 그리고 거미줄 같은 삶의 그물망에 갇혀버린다. 그리고 그 고통이 무거워져 기울어지며 쏟아내는 별통별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신음, 곧 시가 된다.고통을 경험한 자가 진정한 자유를 깨닫게 된다. 다음 시에서 우리는 그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엇박자 날개 짓이 유리벽에 부딪혀 파닥거린다

      

갇힌 순간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잃은 새는

계단을 흐르는 미세한 공기의 흐름조차도 감지하지 못한다

      

짹짹,

금세 밖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데

새는 생각을 찢을 수 없다

     

옥상 문을 열고 빗자루를 들어 새를 몰았다

뿔 없는 작은 짐승이 몸을 돌려 포효하듯

빛을 향해 날아갔다

이화영, 새는전문(불교문예2017년 여름호)

 


자유를 잠시 잃어버린 새를 본 경험을 시인은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잘못 날아들어 집에 갇힌 새는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 고통 속에서 바람과 공기의 흐름을 잃고 새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다. 자신이 가진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만큼 큰 고통이 어디있겠는가?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내가 누구인지를 망각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존재하지 않고 숫자로 환원된 나의 가격만이 나를 규정한다. 그것이 억압이 되어 나의 꿈과 나의 이상과 나의 가치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갇힌 새처럼 고통 속에서 신음한다. 하지만 시인은 포효하듯 빛을 향해 날아가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인은 바로 그런 자이다.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한번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진지한 성찰의 한 방식인 시는 우리가 잊으려고 하는 고통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일이다. 시는 고통을 드러내 그것을 배태시킨 사회의 어둠을 고발하고 추문화시키는 일이다. 그런데 더러 사람들은 이제는 모두 잊자고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사건은 잊고 행복한 앞날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고통을 잊어버리는 사회는 경박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지한 성찰보다는 가벼운 쾌락에 몸을 맡기고 순간의 오락에 탐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비극을 보지 못하고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위안을 받는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이렇게 고통을 잊어버리려는 우리의 정신적 나태가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고 간 비극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고통이 정말 싫은 것이라면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되고 그것과 대면하여 그 진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러한 고통이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황정산 / 1992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2002정신과표현으로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 주변에서 글쓰기, 쉽게 쓴 문학의 이해등이 있음.

 

 

 

시와산문 2017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