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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풍경이 되고싶은 詩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시의 세계 / 주경림

by 丹野 2019. 8. 11.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시의 세계

 

주경림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달, , 세기 등으로 나누어 기념한다. 금강경에서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 했지만 시간을 나누는 것에는 좀더 가치있는 삶을 추구해보려는 인간의 욕망이 깃들여 있다. 을미년 2015년은 푸른색 양띠인 청양의 해다. ‘을미60갑자 중 이 상징하는 푸른색과 12간지 중 양을 뜻하는 가 합쳐져 청양이 되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의미의 청색과 온순하고 성실하며 단체생활 잘 하는 양의 성격이 합쳐져 원만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한 한해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 시인들도 두루두루 편안하여 건필할 수 있는 행운의 해로 열리기를 기원해 본다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

 

 

범부채는 한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간다

 

 

봄내 다리를 키우고

 

여름내 꽃을 베어물고

 

가으내 씨를 여물게 한다

 

겨울이면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

 

겨우내

 

숱한 칼바람에 걸음을 익히고

 

씨방을 열어 꽃씨를 얼린다

 

때로 눈을 뒤집어쓴 채 까만 눈망울들 굳세게 한다

 

 

그리하여 입춘 지나 우수 어디쯤

 

비에 젖으며 바람에 일렁이며

 

발목에 힘 빼고 몸 풀어

 

쓰러진다 온몸으로 쓰러진다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를 풀고 씨를 묻는다

 

 

발 달린 짐승이라 해서 인간이라 해서

 

이와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범부채의 일생, 꼭 그럴 것이다

 

 

범부채는 한 해에 딱 한 걸음씩 길을 간다

 

──안상학,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유심, 2015. 1.)

 

 

꾸밈없는 수수한 서정시로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안상학 시인의 시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에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 투영되어있다. 범부채의 성장, 결실, 번식하는 생육과정을 통해 무릇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범부채가 고작 한 해에 한 걸음씩 길을 가기 위한 생존 전략이 눈물겹도록 어여쁘다. 봄에는 우선 흙에 서기 위해 다리인 줄기를 키운다. 여름에 꽃피우고 가을에는 씨가 여문다. 겨울이면 씨앗을 쌌던 씨방이 허옇게 바래면서 뒤집어지는 모습을 마침내 수의를 입고 벌판에 선다라고 표현한다. “수의에서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칼바람과 눈보라는 꽃씨를 얼리기도 하면서 야물고 굳세게 생명성을 간직하게 해준다. 겨울을 잘 견디어 이른 봄, 온몸으로 쓰러져 키만큼 한 걸음 옮긴 곳에 머리를 풀고 씨를 묻는다죽을 힘을 다하여 견디어 온몸으로 쓰러지는 거체전진擧體全眞의 삶이 완성된다. 안상학 시인이기에 풀 한 포기에 눈길을 주어 이렇듯 세세하게 범부채의 일생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이 곧 우리가 사는 길임을 곡진하게 일러준다.

 

 


달을 삼킨 장대비는 포플러 나무 속 작은 새집을 밀어냈다

떨어진 새집은 질경이 위에서 뒤척인다

서너 뼘 건너 둥근 돌이 있고 그 옆에는 썩은 나무가 흰 버섯을 키우고 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로 가는 길은 가깝고도 멀다

나무 사이 떨어지는 얼룩덜룩 햇빛으로 키워내는 키 작은 나무를

얼싸안고 길을 내는 것이다

 

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방을 만든다

빛은 들어가고 빗물은 빠져나가게, 바람은 멈추었다가 사라지는 둥근 방은 하나의 우주다

새들이 나뭇가지로 수백 번 쓰는 둥근 말의 ,

견고한 체위 

 

떨어진 새집의 벽이 느슨하게 풀어지며 체위를 바꾸는 시간은 한 달 남짓 걸렸다

둥근 돌멩이가 저만치 굴러가 있었고

동쪽으로 난 벽이 허물어진 채 씀바귀꽃의 그림자를 입에 물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새집이 되고

새집이 다시 나뭇가지가 되는 시간 동안

새들은 달빛에 젖은 깃털을 털며 미끄러지듯 수백 번 포플러 나무에 찾아들었다

 

견고한 체위의 우주 속에서 온전하게 알을 깨고 나온

깃털 푸른 새들이 포플러 우듬지에 앉아 바람을 타고 있다

 


 

──김경성, 견고한 체위(시와산문, 겨울호)

 

 

안상학 시인이 범부채의 한살이를 시의 소재로 삼았다면 김경성 시인은 포플러나무에서 떨어진 새집이 무너져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가는 과정을 주의깊게 살펴본다.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새집[]이 속성을 유지하다[] 서서히 부서져[] 사라지고 흩어짐[]을 기도하듯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견고한 체위는 시인의 직접 경험인 만큼 진정성이 있어 읽는 이의 공감을 자아내고 시간과 노력을 많이 기울여 완성한 시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이다.

 

첫 연에서 포플러나무 속 작은 새집을 밀어낸 것은 달을 삼킨 장대비였다. 세찬 비바람에 새집이 떨어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달을 삼킨 장대비에서 범상치 않은 우주적인 힘, 혹은 운명적인 필연성 등이 감지된다. 흔히 있는 일이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킬만한 특별한 상황으로 바뀐다. 주변에 질경이, 둥근 돌, 썩은 나뭇가지가 키우는 흰 버섯 등이 보이는데 이들 역시 생성과 소멸이 순환되는 자연환경이라 할 수 있다. 새들이 부러진 나뭇가지를 물어다 만든 둥근 방을 하나의 우주로 보고 새들이 나뭇가지로 수백 번 쓰는 둥근 말의 집, 견고한 체위로 발전한다. 새들은 둥근 방에서 깃털 푸른 새들을 만들었고 김경성 시인은 그 둥근 말의 집에서 시를 뽑아냈다.

 

한 달 남짓 걸려 새집이 제 몸을 풀어 나뭇가지로 돌아가는 그 광경이 시인에게는 놀라운 황홀이었다고 시작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자연의 소멸이 당연하듯 견고한 체위도 무너지고 만다. 새집이 무너지듯, 그를 바라보는 시인의 생애 역시 조금씩 무너지고 있음을 독자는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견교한 체위가 깃털처럼 부드러운 체위로 바뀌면서 시 한편이 완성된다. 김경성 시인이 시의 씨앗을 물컹한 몸속에 넣고 아주 견교한 체위로 진통 중이라니 견교한 체위의 우주 속에서 온전하게 알을 깨고나올 깃털 푸른 시를 기다려 볼 것이다.     

 

 

 

그림 속에서 시 찾기

 

 

물 소리, 방망이 소리, 수다떠는 소리

 

작은 화폭은 투정이 없다

 

내 유년 그곳에서 놀고 있는 착각

 

 

비누바구니 들고 엄마 따라갔던

 

시끌벅적한 빨랫터

 

시집살이 석삼 년 참아온 새댁

 

눈 열고 입 열고 귀 연다

 

구멍 난 옷소매 핑글 떨어지는 눈물

 

난타로 맞는 방망이 소리

 

산자락 휘돌아 메아리로 돌아오면

 

너럭바위  빨래 하얗게 웃는다

 

 

새물내 감도는 무색의 빨랫터

 

이제 너럭바위로 남아

 

무거운 세월 이고 있다

 

──이겨울, 빨랫터-김홍도<빨랫터>(시와산문, 겨울호)

 

 

많은 시인들이 미술이나 음악, 무용, 영화 등의 인접 예술에서 얻은 영감을 시로 표현해왔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으면 시가 될 수 없겠지만 자신만의 눈으로 새롭게 보아내고 생각을 담아내면 또 하나의 독창적인 작품이 태어나게 된다. 이겨울 시인의 빨랫터는 김홍도 <빨랫터>라고 부제가 붙어있어 그림을 보고 쓴 시임을 알 수 있다. 실은 김홍도의 <빨랫터>도 강희언의 <사인사예도士人射藝圖>에서 영감을 얻은 풍속화이다. 27x22.7cm 그림에는 개울가에서 빨래를 헹구는 여인, 이야기를 나누며 방망이질하는 두 여인, 바위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훔쳐보는 선비, 바위에 앉아 머리를 빗는 여인과 그 품을 파고드는 어린아이가 보인다.

 

첫 연에서 물 소리, 방망이 소리, 수다떠는 소리등 소리의 향연으로 이겨울 시인의 빨랫터가 열린다. 시끌벅적해도 작은 화폭은 투정이 없다고 시인은 말한다. 마땅치않아 불만을 터뜨리는 이나 떼를 쓰는 어린아이는 보이지 않는 시인의 유년시절의 놀이 공간이다.  둘째 연 부터는 시적 화자가 엄마 따라갔던 추억 속의 빨랫터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방망이질로 쌓였던 스트레스도 풀어보는 빨랫터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서울에서는 삼청동, 청계천 등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후반부에서부터 시인의 예술적 감각으로 새롭게 재현한 빨랫터의 모습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빨래를 바위에 널어 햇볕에 바래면 하얗게 표백되는데 이를 마전이라 불렀다. 시인은 빨랫터의 그 모든 소리가 산자락 휘돌아 메아리로 돌아오면 너럭바위 빨래 하얗게 웃는다라고 표현한다. 물과 시끌벅적한 수다와 방망이질로 여인들의 마음도 너럭바위의 하얀 빨래처럼 정화되었을 것이다. 빨래터는 여인들의 일터이며 놀이터, 카타르시를 경험하여 쾌감과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장소이다. “새물내 감도는 무색의 빨랫터라는 한끗 차이로 시가 완성된다. 시에서도 빨래하여 갓 입은 옷에서 나는 냄새인 새물내가 물신 풍겨온다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앞에 서면

 

화폭 가득

 

몸 벗고 떠난 맑은 영혼의 눈

 

반짝인다

 

 

가만히 숨죽여 들여다보노라면

 

투명한 물방울에 내 심장이 투영되어

 

생전의 몸짓으로 옴작옴작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내 죄밑천이 들어날까 가슴이 뛴다

 

 

한 방울의 물방울사리가 되기까지

 

샘을 버리고

 

도 버리고

 

바다마저 버려 마침내

 

한 점!

 

 

 

점 하나에 우주를 품고

 

아스라이 빛나는 한 폭의 경전이다

 

──서정란, 물방울 사리(문학과창작, 겨울호)

 

 

서정란 시인은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에서 한방울의 물방울 사리를 보아낸다. 이미 많은 시인들이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 그림을 순수함과 정화의 이미지로 그려냈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소재에서 몸 벗고 떠난 맑은 영혼의 눈이라는 서정란 시인만의 사리를 건져낸다. ‘사리는 부처나 성자의 유골, 현재는 스님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난 후 유골에서 수습한 작은 구슬 모양의 결정체를 가리킨다.

 

둘째 연에서는 투명한 물방울에 투영된 자신의 심장을 보아냄으로써 사리의 성역聖域에 시인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성속을 허무는 작업이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이루워진다. “생전의 몸짓으로 옴작옴작/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내 죄밑천이 들어날까 가슴이 뛴다라고 시인은 솔직하고 꾸밈없는 고백을 한다. 차가운 사리와 뜨거운 심장이 하나의 물방울이 되는 지점에서 시의 꽃이 활활 피어난다. “섬세한 서정 뒤에 숨은 예리한 눈빛이라 평한 민영 시인의 말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화가의 물방울은 이제 시인의 심장으로 살아 뛰기 시작한다.

 

김창열 화백은 무색무취한 물방울에서 관람객이 스스로의 의미를 찾길 바란다고 했는데 서정란 시인은 물방울에서 사리를 보아냈다. 사리가 몸을 벗고 결정체를 이루듯 물방울 사리가 되기까지는 물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샘과 강, 바다마저 버려 생명의 근원이며 마음의 본디 자리인 한 점 물방울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점 하나에 우주를 품고하나 속에 모두가, 모두 속에 하나가 존재하는 한 생명은 한 폭의 경전으로 확대된다.

 

속 깊은 내용인데 참 쉽게 읽혀진다. 그동안 시의 언어를 절차탁마하며 가꾸어온 서정란 시인의 시적 역량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침묵에 귀기울여야 할 때

 

 

쓸데없는 소리들은 집이 다 잡아먹는다

 

 

맑은 어둠이 내릴 때 집은

 

큰 범종을 걸어놓은 걸까, 음관音管이 생긴다

 

소리의 혀를 내밀어 잡음을 걸러내는 중이다

 

소용돌이치던 공기도 슬몃슬몃 가라앉는다

 

 

어스름이 냄새와 빛깔까지 잠시 붙잡아 둔다

 

순간, 귀에 익은 소리들

 

아이들의 공차는 소리, 마지막 풀벌레 소리

 

 

맑은 소리만 잡아두었다가 내뱉는다

 

혀가 짧은데 더 멀리 퍼져 나간다

 

소리에 끌려가는 시간이다

 

어릴 적,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가

 

먼 들판에서 놀아도 흑백사진처럼 들린다

 

 

이미 달을 갖고 싶어하는 시간이므로

 

돌담집이나 동해 바다나,

 

달빛 스미는 돌의 외침까지 품고 있는 게다

 

먼저 귓바퀴가 젖어야

 

달빛이 물로 변하는 소리까지 또렷이 들을 게다

 

──손창기, 어슬녘 귓바퀴가 젖어야(시와산문, 겨울호)

 

 

어슬녘은 조금 어둑어둑한 무렵으로 해질녘, 저물녘을 말하는데 참 정감있는 순수 우리말이다. 손창기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눈과 귀를 가졌다. 시의 배경은 어릴 적, 저녁밥 먹으라는 어머니 소리에 끌려가는 저녁 무렵이다손창기 시인의 시, 어슬녘 귓바퀴가 젖어야를 읽고나니 필자의 주위에도 어둠이 자분자분 내려앉았다. 사물을 식별할 수 없는 깜깜한 암흑이 아니고 형체와 윤곽을 눈으로 어루만져볼 수 있는 맑은 어둠이었다. 맑은 어둠에는 분잡한 일상과 시끄러운 소리들을 걸러내는 여과장치 효력이 있는 듯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한다.

 

첫 행, “쓸데없는 소리들은 집이 다 잡아먹는다에서 의 의미를 침묵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고 시의 씨앗도 발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으로 읽어보았다. 시인은 그 집에 큰 범종을 걸어놓고 소리를 걸러낸다. 순진무구했던 어린 시절의 공차는 소리, 청정한 자연의 소리인 마지막 풀벌레 소리 등 맑은 소리만 듣게 된다. 이쯤에서 시의 제목, “귓바퀴가 젖어야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아마 잡음을 걸러낸 맑은 소리,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귀를 말하는 것 아닐까.

 

손창기 시인은 그런 귀로 달빛이 물로 변하는 소리까지듣고 싶어한다. 과연 달빛이 물로 변하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달은 예로부터 낭만적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환상적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지막 연이 아득한 신화의 세계를 더듬는 것처럼 신비감에 젖어들게 한다. 손창기 시인의 시가 갖는 마력이다.

 

 

 

끝맺으며

 

안상학 시인의 범부채가 길을 가는 법과 김경성 시인의 견고한 체위에서는 유정물이든 무정물이든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순환 반복하는 자연의 질서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회화 속에서 시의 모티브를 얻은 이겨울 시인의  빨랫터와 서정란 시인의 물방울 사리는 자신만의 눈으로 새롭게 보아낸 독창적인 시세계를 열었다. 손창기 시인의 어슬녘 귓바퀴가 젖어야에서는 달빛이 물로 변하는 소리까지들을 수 있게 침묵의 소리에 귀기울여 보는 시인의 자세가 의연했다.

 

을미년은 잘라도 다시 솟아나는 양의 뿔처럼 우리 시인들의 가슴에 시정詩情이 넘치게 우러나는 청양의 해가 될 것이다.

 

 

 

 

 

  주경림 /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2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씨줄과 날줄, 눈잣나무, 풀꽃우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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