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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피아노가 있는 바다 / 김경성

by 丹野 2017. 6. 20.



피아노가 있는 바다


김경성



음계를 읽어가던 손이 사라졌다

얼굴이 사라지고 목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가슴이 사라졌다


빗물 먹은 악보가 눈물처럼 번져있다

바람과 바다가 연주한다

오래전에 떠난 당신의 그림자가 한참이나 머물다 간다


바다가 연주하는 곡이 건반마다 새겨져서 그토록 깊고 푸른 통음이었을까

바닷속까지 뒤집히는 격정적인 연주는 바다의 울음이었을까

당신의 울음이었을까

몸으로 읽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던 낡은 피아노가 월정리 바닷가에 나와 있다

갈매기 한 무리가 피아노 건반에 앉아서 붉은 눈을 비비고 있다


교향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간『애지』201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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