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김경성 - 근작시

새집

by 丹野 2017. 7. 26.



 


새집


 

김경성

 

 



몸을 반으로 접어야 들어갈 수 있는 종이상자의 문을 뜯어냈다

 

씨방이 둥근 접시꽃은 꽃도 둥글어서 해마다 그 자리에서 아날로그로 피어나고

 

으깨어진 무릎을 펼 수 없어서 구부린 채로 살아가는 나는,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뒤로도 물러 설 수 없는

종이상자 커다란 나무라고 불렀다

부챗살 서까래처럼 길게 뻗은 가지의 옹이 진 자리가 그렁거리는 눈물 같았다

 

잎이 피고 지는 사이에 마음 자락도 너울져서 숲이 되기도 하고

눈물 번지듯 비가 내리면 닫히지 않는 창문으로 여울목이 흐르고는 했다

 

접힌 등줄기에서 자라는 담쟁이가 맞지 않는 문틀을 붙잡고 문밖으로 팔을 뻗칠 때

방안 가득히 들어오는 푸른 바람이 허파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빠져나가는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허공의 지문을 읽어내는 나무의 겨울눈目처럼

한 그루 나무속에

깃들어 사는 생이 긍휼 하다

 


 

 

  -계간《문예바다》2017년 봄호

 

 

 

 

 

김경성

전북 고창에서 출생.

2011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와온』,『내가 붉었던 것처럼 당신도 붉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