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처 / Daum 이미지
운동 후 기 運動 後 記 / 나호열
-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몸에서 화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해 시월 때문이다
놀이와 노동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늘 힘이 모자랐다
낙하하는 포탄의 작열과
가지에서 떨어지는 벚꽃의 아우성이
피와 살의 힘
나는 빗나간 화약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진 만큼
또 수 없이 많은 꽃들이 피어났던 까닭에
우리는 놀이와 노동의 근친을 잊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홍조 그 부끄러움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한 사내의 불끈거리는
팔뚝의 힘줄을 볼 때 더하다
앞으로 밀고, 잡아 당기고, 위로 올리고
걷고 뛰면서
나는 한 사내를 이기고 싶다
누가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고 했는가
짐승의 시간이 초식의 슬픔을 잘게 부술 때
땀은 화약냄새를 짙게 풍긴다.
지금 내가 들어 올리는 것은
0 그램의 허무
깊은 날숨이다.
*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 정문에 아치로 걸려 있는 문구이다
-나호열「운동 후기, <<미네르바>> 2010년 봄호
자본주의적 근대 사회에서 권태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는 물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걸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가 사는 세상이 이 수용소와 다를 바가 없다. 노동 역시 현대사회에서 인간
에게 강요된 사회적 규율이다. 이 노동을 통해 인간은 행복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놀이와의 관련을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의
활동은 유용한 가치를 창조하면서도 그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어야 한
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오직 추상화된 시간으로만 환원되어 이
기쁨과 즐거움을 배제하고 만다. 노동이 힘든 고통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
다.거기에 바로 권태가 만들어 진다. 시인은 이를 “0 그램의 허무”라고 표
현하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권태를 벗어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는 예
술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수치화된 시간이라는 교환가치의 질서에서 벗어
나 잇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시를 쓰면서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는 것
이 바로 이를 잘 말해준다. 때문에 예술은, 특히 시를 쓰는 일은 이 권태라
는 수치화된 시간 질서를 거부하는 일이고 시간을 생생한 새로움으로 환원
하는 일이다.
- 새로운 시간들을 위하여 '부분'/ 황정산(문학평론가 ․ 대전대학교 교수)
-<우리詩 월평>2010년 4월호에서
'이탈한 자가 문득 > 풍경 너머의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자 무용가 박명숙 (0) | 2013.09.14 |
---|---|
"무너지는 공산성... 이대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못한다" (0) | 2013.09.12 |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니... 비극의 아우슈비츠 (0) | 2013.09.07 |
29살 청년 여행가 이시우, 길 위에 서다 (0) | 2013.09.07 |
[스크랩] 광화문 네거리에서 히말라야의 정취를 느껴볼까? (0) | 2013.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