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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운동 후 기 運動 後 記 / 나호열

by 丹野 2013. 9. 7.

 

 

 

 

                                                                                                                   출출처 / Daum 이미지

 

운동 후 기 運動 後 記  / 나호열

 

  - *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몸에서 화약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것은

그해 시월 때문이다

놀이와 노동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늘 힘이 모자랐다

낙하하는 포탄의 작열과

가지에서 떨어지는 벚꽃의 아우성이

피와 살의 힘

나는 빗나간 화약으로 태어났던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들이 진 만큼

또 수 없이 많은 꽃들이 피어났던 까닭에

우리는 놀이와 노동의 근친을 잊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홍조 그 부끄러움은

무거운 짐을 나르는 한 사내의 불끈거리는

팔뚝의 힘줄을 볼 때 더하다

 

 

앞으로 밀고, 잡아 당기고, 위로 올리고

걷고 뛰면서

나는 한 사내를 이기고 싶다

누가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고 했는가

짐승의 시간이 초식의 슬픔을 잘게 부술 때

땀은 화약냄새를 짙게 풍긴다.

 

 

지금 내가 들어 올리는 것은

0 그램의 허무

깊은 날숨이다.

 

 

 

 

* 폴란드 아우슈비츠 유태인 수용소 정문에 아치로 걸려 있는 문구이다

 

 

                     -나호열「운동 후기, <<미네르바>> 2010년 봄호

 

 

 

   자본주의적 근대 사회에서 권태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노동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는 물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걸려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가 사는 세상이 이 수용소와 다를 바가 없다. 노동 역시 현대사회에서 인간

에게 강요된 사회적 규율이다. 이 노동을 통해 인간은 행복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놀이와의 관련을 잊어버리고 만다. 인간의

활동은 유용한 가치를 창조하면서도 그 자체가 기쁨이고 즐거움이어야 한

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오직 추상화된 시간으로만 환원되어 이

기쁨과 즐거움을 배제하고 만다. 노동이 힘든 고통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

다.거기에 바로 권태가 만들어 진다. 시인은 이를 “0 그램의 허무”라고 표

현하고 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권태를 벗어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는 예

술이다. 그것은 어느 정도 수치화된 시간이라는 교환가치의 질서에서 벗어

나 잇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 시를 쓰면서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는 것

이 바로 이를 잘 말해준다. 때문에 예술은, 특히 시를 쓰는 일은 이 권태라

는 수치화된 시간 질서를 거부하는 일이고 시간을 생생한 새로움으로 환원

하는 일이다.

 

 

 

 

새로운 시간들을 위하여 '부분'/ 황정산(문학평론가 ․ 대전대학교 교수)

 

-<우리詩 월평>2010년 4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