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장경판
김경성
오래된 숲을 들여다본다
행과 연을 맞추어서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모두 숲의 중심이 되는
햇빛은 사라지고 오직 그림자와 바람만이 가득한 숲
그림자 가득 머금은 채
제 몸을 훑고 가는 바람의 탯줄을 붙잡고 서 있어야만 하는,
관절 마디마디에 짜디짠 바닷물 들여놓고
나이테를 가르며 달려드는 날카로운 칼날에
온몸을 던져서 제 몸에 경전을 돋을새김했던 기억으로
달이 뜨는 밤이면 목신木神의 춤이 시작된다
제 안에 모두 들일 수 있다고
완강하게 서 있는 눈물 출렁이는 숲,
달빛 휘감으며 내려놓는 말씀은 늘 깊다
나무의, 숲의
몸을 끌어안고 제 마음의 심지를 새기면서
옹이까지도 모두 사랑하리라 어루만지던 그 사람의 온기가
나무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듯
천년이 흘러도 마음 그대로이다
그늘 한 자락 끌어다 덮고 말씀에 젖는다
주석이 필요한 사랑도
더는 내려설 곳 없는 절망도
숲에 들어서면 그대로 위안이 되는
지상에서 가장 은밀한 숲,
묵향 가득한 경전 지상의 숲에 펼치고 있다
그대 숨결 같은 바람 세상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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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니아프스키 - 침묵의 로망스
- 김경성 해인사 장경판에 부쳐
一木爲中心 한 그루 나무로도 숲의 중심이 되니
何必言解註 하필 주석과 해석을 말하리오!
亦有淸風影 오로지 맑은 바람 그림자가 있을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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