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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풍경이 되고싶은 詩

그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부분'

by 丹野 2013. 1. 11.

 

 

그의 품에서 한참을 울었다 '부분'

  

박 수 빈

 

 

 

김경성, 「목기미 해변에 닻을 내리다」(《우리시》2012년 9월호)

 

 

인간의 가치는 타자와 맺은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원만한 관계는 행복감을 주기도 하고 결핍이 사랑의 욕망을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언젠가는 사랑의 시간은 추억이 되고 현실에서 사라져간다. 그렇다면 사랑은 관념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다음에 인용하는 시의 도입부도 예사롭지 않다. “끊어진 전선을 목에 걸친 전봇대”에서 앞의 시처럼 서로 이리저리 얽힌 관계의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끊어진 전선을 목에 걸친 전봇대, 백사장에 발목을 묻고 있다

전선을 타고 지나다니던 오래된 말들이 길 위에 떨어져 있다

 

떨어져서 굴러다니던 말들은 전봇대와 전봇대를 넘나드는 새들의 몫이다

먼 곳의 소식도 그의 몸을 타고 흘러왔고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선단여**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지금 남아 있는 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그때의 새가 아니고,

그때의 물이 아니고

 지구를 수만 번 돌다가 온 바람만이 그대로일 뿐,

 

공룡이 발톱을 세워서 써놓은 유적은 느다시 구릉***에서 흘러나온 빗물이거나

 암벽 사이로 고개를 내민 금방망이 꽃이라고,

 

물고기가 산란하는 동안 먼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목기미 해변에 얼굴을 묻은 닻들은 바닷물의 농염에 붉은 꽃이 피고

이따금 목에 걸려드는 해초는

등지느러미가 아름다웠던 물고기의 말을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통보리사초밭에 부리를 묻은 검은머리물떼새,

살아 숨 쉬는 것들의 뜨거움이 둥근 목기미 해변을 따라 흘러다니고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물처럼 드리워져 있다

 

닻의 그림자를 재며 생의 농도을 읽는 목기미 해변,

낡은 전봇대도 모래 구릉에 닻이 된 채

전선을 타고 흘러갔던 것들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 서해 굴업도 동쪽 해변

** 굴업도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

*** 지는 해를 늦게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

 

- 김경성,「목기미 해변에 닻을 내리다」(《우리시》 2012년 9월호) 전문

 

 

 

위 시는 여행지에서 느끼는 서정을 수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목기미 해변은 돌과 바람과 모래가 빚어낸 아름다움을 극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구해변이다. 신기루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모래평원은 절경이며 몽환적이고 신비스럽다. 이 시는 한 폭의 풍경화이다.

화자는 백사장을 걷는다. 전봇대를 보며 오래된 말들이 오고 갔을 것을 생각한다.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들도 생각한다. “지금 남아 있는 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그때의 새가 아니고,/ 그때의 물이 아니고/ 지구를 수만 번 돌다가 온 바람만이 그대로일 뿐”이라는 부분이 미끄러지는 ‘차연’의 맥락으로 감상할 수 있다. 데리다가 만든 조어인 차연은 어떤 단어나 문장이 확정적인 의미맥락을 담지하지 못하고 그 뜻을 끊임없이 유예시키는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엄밀함과 논리적 확실성으로 무장한 기표라 하더라도 기의는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시에서도 간파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진행되던 의식의 흐름이 “목기미 해변에 얼굴을 묻은 닻들은 바닷물의 농염에 붉은 꽃이” 핀다는 부분에 가면 좀 더 시선을 머물게 한다. 바다에 붉은 꽃이 피는 색채이미지가 도드라지고 대상과 동일시되는 부분이다. “이따금 목에 걸려드는 해초”가 “등지느러미가 아름다웠던 물고기의 말을 전해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구현 역시 감정이입의 대목이다. “통보리사초밭에 부리를 묻은 검은머리물떼새”는 저릿하다. 그것도 “검은머리물떼새”이므로 색채 이미지가 어둡고 가라앉게 한다.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발자국이 그물처럼 드리워져 있다”는 부분에 가면 독자의 동공을 커지게 한다. “사라져버린 사람들”은 예전에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어떤 일들을 꿈꾸고 누리며 지냈을까. 지금은 없는 그 사람들. 소멸의 이미지를 상상해본다. 시인이 시 속에서 다 말하지 않고 나머지 상상력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단순한 회상이나 사랑 같은 퇴행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이렇게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 시는 감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박수빈 2004년 시집 『달콤한 독』으로 작품 활동 시작.

wing289@hanmail.net

 

 

 

출처 - 우리詩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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