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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 김신용

by 丹野 2012. 12. 17.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김신용

 

  

나뭇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은, 나무가 제 손을 떨어뜨려 무엇인가를 덮어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다못해 손수건이라도 떨어뜨려

아픈 곳을 가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마치 천수천안처럼, 무수히 달린

저 나무의 잎들,

그 잎들을 하나씩 떨어뜨려, 제 발치에 깃든 것

뼈를 덮을 살 한 점 없이 누운, 아픈 것들을

가만히 덮어주며, 이마를 덮어주듯 떨어져 내리는

나뭇잎,

나뭇잎들의, 손

 

그러나 그 나뭇잎 하나도 덮지 못하고 추운 것들이 있는 것 같은 겨울 밤

 

누군가 곁에 와서 내 손을 나뭇잎처럼 끌어당긴 손이 있었을 것 같아

 

문득 내가 나무가 되어 서 있으면, 떨어져 내리지 못하고 팔목에 완강하게 붙어 있는

손이

잎맥도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시릴 때가 있다

그 시든 나뭇잎처럼, 추울 때가 있다

그때, 그 나뭇잎을 가만히 끌어당겨 덮고 있는 것

제 몸의 마지막 남은 온기로, 말라버린

나뭇잎을 덮어주는 것

 

살 한 점 없어도, 따뜻한

 

저 나뭇잎 아래, 물고기 뼈

 

 

 

 

 —《시인동네》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