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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물의 회상 / 최 준

by 丹野 2013. 2. 7.

 

물의 회상 / 최 준 

 

 

돌의 심장 하나 갖고 싶었다

시간보다 느리고 긴 길을 견디며

아주 천천히 둥글어지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무수한 이름들 스쳐 지나고

간간이 말 걸어보기도 했지만

저마다 모양과 빛깔을 고집하는

무수한 몸의 언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저들의 세상으로 온전히 스며들 수 없었다 

 

소용돌이와 침묵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알게 된 건

여전히 길 위에 있다는 것

울고 싶지 않을 때 울어야 하고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어야 한다는 것 

 

욕망이 생겼다 그때부터

악어의 이빨과 코끼리의 코로

씹고, 숨 쉬는 거였다

죽을 때까지는 죽지 못할 지상에서

나를 닮은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둥근 지구에서

영원히 뛰어내릴 수 없었다 운명처럼

잊고 가야할 게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