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회상 / 최 준
돌의 심장 하나 갖고 싶었다
시간보다 느리고 긴 길을 견디며
아주 천천히 둥글어지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무수한 이름들 스쳐 지나고
간간이 말 걸어보기도 했지만
저마다 모양과 빛깔을 고집하는
무수한 몸의 언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
저들의 세상으로 온전히 스며들 수 없었다
소용돌이와 침묵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알게 된 건
여전히 길 위에 있다는 것
울고 싶지 않을 때 울어야 하고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어야 한다는 것
욕망이 생겼다 그때부터
악어의 이빨과 코끼리의 코로
씹고, 숨 쉬는 거였다
죽을 때까지는 죽지 못할 지상에서
나를 닮은 돌멩이 하나
나뭇잎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다
둥근 지구에서
영원히 뛰어내릴 수 없었다 운명처럼
잊고 가야할 게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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