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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철사처럼 경련하며 뻗어가는 힘이 / 오정국

by 丹野 2012. 12. 17.

 

 

철사처럼 경련하며 뻗어가는 힘이

—에곤 실레, 「무릎을 꿇은 여자 누드」(1910)

 

   오정국

 

 

 

벗겨놓은 육체는 차갑고 메마르다

 

저만큼의 높이에 이르러 저절로 갈라진 나뭇가지처럼

팔은 좌우로 나뉘어져 있고, 말라붙은 근육의

힘줄들, 철사처럼 경련하며 뻗어가는 힘이

오직 한 곳으로 쏠리고 있다

퀭한 눈이다 공터처럼 고요한

 

상반신을 구부려서

엉덩이를 치켜 올려주면 좋겠는데

희뿌옇게 열어놓은 가랑이, 피딱지마냥 말라붙은 거기가

그녀의 음부임을 말해주고 있는데, 무수한 눈길이

그쪽으로 지나가고, 거기에 맺히는

오후 2시의 나른한 슬픔들

 

벗겨놓은 육체의 빛깔들이

서걱거리며 부서진다

 

상체를 일으킬 생각을 접어버린 누드는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 미라 같다

거기에 붓끝을 들이댄 사내가 견뎌낸

 

그 오랜 밤낮의

내전의 탄흔처럼

핏빛으로 얼룩진 사타구니, 내 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내 안의 네발짐승을 일으키고 있다

 

 

 

 

 —《열린시학》2012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