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신은 세계관이다
김완하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은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다. 20세기 현대사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의 고도성장은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다.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급기야 2만불 소득과 5천만 인구를 동시에 성취한 7번쩨 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한 측면에서도 우리나라는 1위를 차지하는 여러가지가 있어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이 1위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헝가리와 자살률에서 세게 1, 2위를 서로 다투고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자고 일어나면 벌어지는 학생들의 자살 또한 우리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정신을 다시 생각해 본다. 이러한 불행은 시정신만이 그 대안이라는 판단이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 자살률 1위라는 절망 앞에서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에게는 반드시 시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시는 원천적으로 생명과 사랑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에 시를 사랑하는 마음은 곧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직결된다. 우리가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에서 다루는 자연의 아주 작은 부분도 생명의 한 핵심으로 받아들여진다. 시의 출발은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그 높은 단계는 종교적인 의미와도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시 두 편을 감상하도록 하자.
나주 들판에서
정말 소가 웃더라니까
꽃이 소를 웃긴 것이지
풀을 뜯는
소의 발 밑에서
마침 꽃이 핀 거야
소는 간지러웠던 것이지
그것만이 아니라,
피는 꽃이 소를 살짝 들어올린 거야
그래서,
소가 꽃 위에 잠깐 뜬 셈이지
하마터면,
소가 중심을 잃고쓰러질 뻔한 것이지
- 윤희상(1961~ )의 「소를 웃긴 꽃」전문
이 시는 소와 풀꽃 사이에 흐르는 생명의 교감을 예리하게 발견하여 신선한 충격과 함께 생의 진정한 순간의 감동을 아낌없이 자아내고 있다. 시를 대하는 순간에 소와 풀꽃 사이의 상황이 매우 정감 있게 다가온다. 이렇듯이 시인들은 생명들의 교감과 사랑의 정신 위에서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고 상상한다. 이 시에는 시인의 상상력으로 풀꽃 한 송이가 소를 들어 올리고, 그러자 소는 잠깐 공중에 떠 있는 것이다, "소가 중심을 읽고 / 쓰러질 뻔한 것" 이라느느 표현에 이르면 누구라도 입가에 웃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작은 생명에게도 위대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꺠닫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풀꽃 하나도 소중한 생명의 힘으로 바라보려는 것이 시정신인 것이다.
저무는 들판에
소가
풀을 베어먹는다.
풀잎 끝
초승달을 베어먹는다.
물가에서 소는
놀란다.
그가 먹은 달이
물 속 그의 뿔에 걸려 있다.
어둠 속에
뿔로 달을 받치고
하늘을 헤엄치고 있는 제 모습 보고
더 놀란다.
- 이성선 (1941~2001)「달을 먹은 소」전문
이성선은 순간과 영원의 동시적 존재에 대해서 눈뜨고 생명과 사랑의 시를 썼던 시인이다. 이 시는 현실 세계를 넘어서우주 속의 한 점으로서의 생명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시인의 시선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시에는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라는 역설적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초승달이 그렇고 풀 위에 있는 달을 소가 베어 먹는 것도 그러하다. 초승달은 곧 차오르고 풀잎도 다시 자라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소와 풀과 달이 하나로 연대하여 자연의 일부로 동화된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바로 생명의 세계란 이러한 것이다.
서두에서 시 두편을 살펴본 것은 시정신에 대하여 말하려는 것이다. 시정신이란 21세기의 도구적 이성이나 도구적 세계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정신이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현실에서 다시 생명의 가치를 회복하고 존중하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대안이다. 우리 사회가 시정신을 잘 간직하고 있는 한은 최소한 자살률 1위라는 현실의 비극적 상황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광의의 시정신은 세계관이라 생각한다. 그 점에서 시정신은 시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이다. 세계관으로서의 시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물들을 생명과 사랑의 가치로 바라보고 교감하는 정신이다. 시정신은 무엇보다도 본질에 바탕을 둔 정신이다. 그리고 사랑과 생명에 바탕하여 친자연을 지향한다. 협의의 시정신은 시 작품 안에 담겨져 있는 시인의 정신이다. 이렇듯이 개별적인 작품에는 다양한 시정신이 담겨 있다. 한 시인의 여러 작품에 담겨 있는 시정신이 통합되어 그 시인의 시정신을 형성하는 것이다.
시정신이란 생명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생물에서도 생명 이상의 가치와 정감을 지니고 대하려는 자세,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생명과 사랑으로 관계 맺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우리 사회는 새걔애소 저설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생명과 사랑의 기쁨으로 차오를 수 있을 것이다.
계간지 「시와정신」
편집인 겸 주간 김완하
- 계간지 「시와정신」2012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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