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성난 파도의 횡포…처절하게 저항하는 인간
2011-10-29 06:12
그림속의 선율 - 윌리엄 터너의 '난파선'
19세기 바다를 지배한 영국…화단서도 해양畵가 주류
작가는 사실적 묘사 위해 배를 타고 폭풍우 체험
난파 직전 비극의 현장,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
19세기 바다를 지배한 영국…화단서도 해양畵가 주류
작가는 사실적 묘사 위해 배를 타고 폭풍우 체험
난파 직전 비극의 현장,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듯…
윌리엄 터너의 '난파선'(1805년, 캔버스에 유채, 171×241cm, 런던 테이트 갤러리)
하루 내내 잔잔하던 바다에 오후가 되면서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친다. 푸른 하늘은 순식간에 시커먼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성난 파도는 눈앞의 모든 걸 집어삼킬 태세다. 모선은 이미 침몰했다. 수부들의 목을 조르는 운명의 여신의 손길이 너무나 가혹하다. 모선에서 탈출한 수부들은 예상치 못한 기상변화에 몸을 떨면서 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운명에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배들은 포효하는 파도의 험상궂은 입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이미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고 뻗친 손길도 부질없어 보인다.
아침 나절만 해도 수부의 머리는 온통 장밋빛 미래로 가득 찼다. 한몫 챙겨 고향에 자기만의 가게를 내고 가족과의 행복을 꿈꿨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들은 자신들이 악몽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인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난파선'(1805년)은 무심한 자연의 횡포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운명을 묘사한 것이다.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나 19세기 전반 영국 화단을 평정한 이 풍운아는 당대의 여느 영국 화가들이 그랬듯이 바다를 무대로 한 해양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의 달콤한 과실을 수확함과 함께 해외식민지 개척을 통해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당시의 영국인들에게 바다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희망의 공간이었다. 바다는 영국을 부자로 만들었고 세계 최강국의 영예를 안겨줬다. 그것은 16,17세기 네덜란드인들이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의 꿈과 희망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이 그랬듯 영국의 귀족들은 해양풍경화를 앞다퉈 자신들의 저택에 걸었다. 그것은 희망의 부적이었다. 그들은 그 그림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출정의 날을 꿈꿨다. 그런 시대 상황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은 다름 아닌 화가들이었다. 그들은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터너도 그런 수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돈에서 자유로워진 화가는 더 이상 주문자의 기호에만 영합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때부터 터너는 자신만의 해양풍경화를 그린다. 그의 머릿속에 자리한 바다는 무한한 꿈과 희망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을 예기치 않은 비극으로 몰아가는 비극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는 무심한 자연재해에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의 운명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다. 특히 망망대해에서 폭풍우를 만나 난파하는 비극의 현장은 그가 가장 즐겨 그린 소재였다. (그것은 곧 당대 유럽을 풍미했던 낭만주의자의 감화를 입은 것이기도 했다. )
그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러한 장면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도록 묘사함으로써 비극의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그것은 운동감을 부여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지된 화면에 운동감을 부여한다는 터너의 의도는 모순된 것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파도의 격랑을 정지된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19세기 초에는 사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터너는 이런 매력적인 그림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실제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여기에 상상의 눈을 덧붙여야 한다는 것이 터너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상도 실제의 경험을 축적하는 과정을 통해 그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고 믿었던 화가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위험한 현장에 나아가 시각적 체험을 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은 그래서 수많은 전설적인 에피소드를 낳았다. 1842년에 그려진 '폭풍우'는 60세의 터너가 증기선 선원에게 부탁해 돛대에 묶인 채 4시간 동안 경험한 사실들을 토대로 그려진 것이라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인가.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그의 그림은 어느 화가의 그림보다도 드라마틱하게 감상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관객은 그의 그림 속 파도의 궤적을 따라 어느새 난파선 위에 앉아 있는 수부가 된 자신을 발견하고 손에 땀을 쥐게 된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한편의 비극적 드라마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숙명론의 굴레에 무기력하게 자신을 맡기지는 않는다. 난파 일보 직전의 배 위에 내리비치는 한줄기 빛을 보라.금빛으로 빛나는 돛대가 우리에게 구원의 희망을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 명화와 함께 듣는 명곡 - 드뷔시 교향적 스케치 '바다'
클로드 드뷔시(1908년)
'바다'는 모두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의 바다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1악장은 동트기 전의 고요한 바다가 풍기는 신비로운 분위기로부터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의 환희 가득한 느낌,한낮의 바다 풍경이 자아내는 변화를 절묘하게 담았다. 제2악장 '바다의 유희'는 큰 물결과 작은 물결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바다의 장관을 그렸고,제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는 폭풍우가 지나가고 난 후의 평온한 바다의 모습을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묘사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드뷔시는 바다에 가본 적이 딱 한 번뿐이라는 점이다. 그의 유일한 경험은 영국에 갈 때 도버해협을 건넌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했을 뿐이었단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
DEBUSSY: La Mer(바다)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Philharmonia Orchestra
<1악장 '바다의 새벽에서 정오까지': 8'53>
<2악장 '파도의 장난': 6'48>
<3악장 '바람과 바다의 대화':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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