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생각]새 책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소개합니다. | |
[2011. 10. 31] | |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의 편지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 이담 선생님의 그림 중 한 편. | |
두 달 쯤 수목원에 붙박여 사는 게 뜻하지 않게 달콤했습니다. 그게 수목원의 무성한 나무들 때문인 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시계를 가방 속에 처박아 놓고 아무 때나 아무 데로나 아무렇게나 걸었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나무가 앞을 가로막았고, 풀꽃이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가로등이 없어 새까만 밤의 수목원 숲에 앙금처럼 내려앉는 적막도 좋았습니다. 그런 밤이면 천리포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집 잃은 청솔모처럼 숲 속을 헤맸습니다. 더 없이 달콤한 날들이었습니다. | |
책에서 소개한 '하늘과 바람을 따라 제 모습을 피워내는 천리포수목원의 명물' 삼색참죽나무. | |
(……) 두 달의 천리포수목원 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그리웠던 건 천리포 바다의 해조음(海潮音)이었습니다. 겨우 두 달이었지만, 파도 소리는 이미 제게 가장 따뜻한 자장가가 되었던 겁니다. 온 낮과 밤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숱한 나무들 사이를 휘감아 도는 해조음을 그려보았습니다. | |
책 본문 페이지의 한 장. 위 그림은 출간 직전 교정을 위해 출력했던 페이지 중의 하나입니다. | |
처음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던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여전히 늘 혼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준비하던 지난 한해동안의 천리포 답사에는 고맙고 즐거운 동행이 있었습니다. 스케치북과 듬직한 카메라를 배낭에 메고 찾아오신 김근희 이담 부부 화가 선생님이 그분들입니다. 나무 편지에 아무렇게나 담았던 식물의 느낌을 그림으로 살려내기 위해 두 분의 화가는 하염없이 지는 꽃, 떨어지는 낙엽을 안타까워 하며 꽃들의 이야기를 정겨운 그림으로 담아 내셨습니다. 종종걸음치며 온 가슴으로 그려낸 두 분의 그림을 이 책에 담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입니다. -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 편지' 머리글에서 | |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의 편지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 김근희 선생님의 그림 중 한 편. | |
책이 나오는 동안 가장 수고하시는 분들은 편집과 디자인을 담당하시는 출판사 분들입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의 새 브랜드인 '아카이브' 이름으로 펴냈는데, 이 브랜드는 얼마 되지 않는 동안 특히 생명과 생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화제 도서를 여러 권 낸 주목할 만한 브랜드입니다. 새로 낸 저의 책도 좋은 출판 브랜드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좋은 책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천리포수목원을 대표할 나무 가운데 하나인 호랑가시나무의 겨울 열매 모습. | |
한 권의 책이 나오면 그 책의 편집자들은 그 동안 성의 있게 보았던 원고를 바탕으로 책 소개를 씁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주례사 풍으로 소개 글을 쓰는 바람에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만큼 책을 정확히 아는 분은 없을 겁니다. 제가 평소에 책을 선택할 때에 출판사의 책 소개를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하겠지만, 그 보다 정확한 소개는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 |
책 본문 페이지의 한 장. 위 그림은 출간 직전 교정을 위해 출력했던 페이지 중의 하나입니다. | |
수목원의 꽃과 나무에 관한 에세이기도 하지만 숲길을 천천히 거닐며 작은 생명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기분 좋은 책으로 자연에 다가서는 법을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 천리포수목원의 꽃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을 식물도감 식으로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하나의 꽃과 나무로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수목원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전해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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