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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새 책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소개합니다.

by 丹野 2011. 11. 1.

[나무 생각]새 책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소개합니다. 

   [2011. 10. 31]

   "사람살이에 한창 부대끼던 마흔 즈음에 불쑥 찾은 곳이 천리포수목원이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좋은 일 나쁜 일을 글로 써담아내던 신문 일을 하던 때였지요.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때, 무작정 찾아온 곳이 바로 여기었어요. 그게 벌써 12년 전이네요. 오늘처럼 가을 하늘 쨍하게 푸르던 날이었습니다."

   새로 낸 책이 도착했습니다. 그 책의 맨 앞에 놓은 '들어가는 글'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난 12년 동안 '나무 편지'라는 이름으로 써온 글 가운데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 편지'만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그 동안 띄웠던 편지 중에 일부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새로 낸 책의 머릿글과 정성껏 이 책을 편집한 출판사 편집자의 책 소개 글로 이어가겠습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의 편지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 이담 선생님의 그림 중 한 편.

   두 달 쯤 수목원에 붙박여 사는 게 뜻하지 않게 달콤했습니다. 그게 수목원의 무성한 나무들 때문인 줄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시계를 가방 속에 처박아 놓고 아무 때나 아무 데로나 아무렇게나 걸었지만, 내딛는 걸음마다 나무가 앞을 가로막았고, 풀꽃이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가로등이 없어 새까만 밤의 수목원 숲에 앙금처럼 내려앉는 적막도 좋았습니다. 그런 밤이면 천리포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집 잃은 청솔모처럼 숲 속을 헤맸습니다. 더 없이 달콤한 날들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 내 앞 길을 수직으로 막아세운 나무들은 하나같이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였습니다. 그게 한 편의 잘 지은 시(詩)라는 걸 깨달은 건, 싸락눈 내리던 어느 겨울 날 늦은 오후였습니다. 숲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겨울의 하얀 목련 꽃은 생명의 경이였습니다. (……)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일이 자연에 다가서는 첫 걸음이어야 한다는 말은 레이첼 카슨 선생이 유고집에 유언처럼 남긴 말입니다.

   책에서 소개한 '하늘과 바람을 따라 제 모습을 피워내는 천리포수목원의 명물' 삼색참죽나무.

   (……) 두 달의 천리포수목원 생활을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그리웠던 건 천리포 바다의 해조음(海潮音)이었습니다. 겨우 두 달이었지만, 파도 소리는 이미 제게 가장 따뜻한 자장가가 되었던 겁니다. 온 낮과 밤을 돌아다니며 만났던 숱한 나무들 사이를 휘감아 도는 해조음을 그려보았습니다.

   하릴없이 서울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돼 다시 천리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목원 나무들의 잎잎이 매달린 해조음을 하나 둘 떼어내 제 감상의 갈피에 꽂았습니다. 나무를 노래한 시들을 찾아 베끼고, 그 나무들을 찾아 헤매는 운수납자가 된 건 당연한 순서겠지요. 그로부터 12년 동안 부평초 되어 홀로 떠돌았지만 언제라도 외롭지 않았던 건 내 앞에 나무들이 있었고, 천리포수목원의 벗들과 식물을 떠올릴 수 있어서였을 겁니다.

   책 본문 페이지의 한 장. 위 그림은 출간 직전 교정을 위해 출력했던 페이지 중의 하나입니다.

   처음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던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저는 여전히 늘 혼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을 준비하던 지난 한해동안의 천리포 답사에는 고맙고 즐거운 동행이 있었습니다. 스케치북과 듬직한 카메라를 배낭에 메고 찾아오신 김근희 이담 부부 화가 선생님이 그분들입니다. 나무 편지에 아무렇게나 담았던 식물의 느낌을 그림으로 살려내기 위해 두 분의 화가는 하염없이 지는 꽃, 떨어지는 낙엽을 안타까워 하며 꽃들의 이야기를 정겨운 그림으로 담아 내셨습니다. 종종걸음치며 온 가슴으로 그려낸 두 분의 그림을 이 책에 담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입니다. -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 편지' 머리글에서

   머리글에서도 적었지만, 이 책에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을 담았습니다. 그림은 부부이신 김근희 이담 선생님이 함께 수고해주셨어요. 두 화가 선생님은 꽃 떨어지기 전에 그림을 완성하려고 늘 종종걸음치며 정성껏 그림을 그려내어 책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셨어요. 책으로 된 편지지만, 마치 손으로 쓴 편지처럼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두 분 화가 선생님의 공입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의 편지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 김근희 선생님의 그림 중 한 편.

   책이 나오는 동안 가장 수고하시는 분들은 편집과 디자인을 담당하시는 출판사 분들입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의 새 브랜드인 '아카이브' 이름으로 펴냈는데, 이 브랜드는 얼마 되지 않는 동안 특히 생명과 생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분위기를 바탕으로 한 화제 도서를 여러 권 낸 주목할 만한 브랜드입니다. 새로 낸 저의 책도 좋은 출판 브랜드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는 좋은 책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때로는 비판적으로, 또 때로는 호의적으로 가장 성의 있게 책의 내용을 검토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편집자입니다. 애초의 원고를 쓰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성의로 책을 만든답니다. 특히 이번에 책을 낸 '아카이브' 편집자 분들은 그런 점에서 대단히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늘 그런 편이긴 합니다만, 저자로서 저는 결코 짧지 않았던 출판 과정이 힘들면서도 늘 즐거웠던 게 사실입니다.

   천리포수목원을 대표할 나무 가운데 하나인 호랑가시나무의 겨울 열매 모습.

   한 권의 책이 나오면 그 책의 편집자들은 그 동안 성의 있게 보았던 원고를 바탕으로 책 소개를 씁니다. 어떤 경우에는 지나치게 주례사 풍으로 소개 글을 쓰는 바람에 신뢰를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만큼 책을 정확히 아는 분은 없을 겁니다. 제가 평소에 책을 선택할 때에 출판사의 책 소개를 가장 먼저 참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물론 비판적으로 읽어내야 하겠지만, 그 보다 정확한 소개는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저의 새 책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누구보다 정확히 아시는 편집자께서 소개한 소개 글의 일부로 오늘의 나무 편지 마무리합니다. 그 동안 그러하셨듯이, 이번 책에도 많은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책 본문 페이지의 한 장. 위 그림은 출간 직전 교정을 위해 출력했던 페이지 중의 하나입니다.

   수목원의 꽃과 나무에 관한 에세이기도 하지만 숲길을 천천히 거닐며 작은 생명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기분 좋은 책으로 자연에 다가서는 법을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 천리포수목원의 꽃과 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을 식물도감 식으로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하나의 꽃과 나무로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면서 수목원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전해줍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에는 많은 식물들이 저자 섬세한 감성과 만나고 개인적인 경험과 만나면서 꽃과 나무들이 숨겨놨던 속살을 드러내듯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처음에는 어색했던 그들과의 만남이 곧 풀어집니다. 마치 말하지 못했던 숨겨둔 이야기를 하고 더 가까워지는 사람들 사이처럼 말이지요. 저자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아는 것보다 자연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전해주고자 했습니다.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를 접하고 나서 아이들과 함께 손잡고 다른 어느 숲을 가더라도 그래서 그곳의 꽃과 나무들을 만나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더 아름다운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출판사의 책 소개글 에서

   '천리포에서 보낸 나무편지' 찾아보기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