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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생애 및 작품세계

by 丹野 2012. 1. 6.

 

 

보리스 파스테르나크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생애 및 작품세계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생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모스크바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니드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 저명 화가이었으며 톨스토이의 <부활>의 삽화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처음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작곡에 뜻을 두었다. 1903년부터 6년 동안 음악을 공부했다. 그러나 1909년 모스크바 대학의 역사 철학 부에 들어갔다. 1912년에 독일의 마르부르크대학에 유학하여 여름 학기 동안 헤르만 코헨(Herrmann Cohen) 문하에서 신칸트학파 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소설가 레프 톨스토이,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등은 자주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초기 시작에 블로크와 릴케의 영향이 받았다. 동시대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영향도 볼 수 있다. 1914년에 첫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를 출간한다. 이 후 이른바 미래파계의 시 그룹 ‘원심력'(遠心力)‘에 참여했다. 1917년 여름에 쓴 시집 <나의 여동생 - 인생>은 자연과 현실세계와의 교감과 융합 속에서 시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어린 시절부터 파스테르나크는 조숙한 시인이었다. 혁명 후에 소비에트 교육부 도서관에서 일했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서사시로 기울었다. <슈미트 대위>(1927) 등에서 혁명과 개인의 운명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운문체 소설 <스펙토르스키>(1931)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작품에 <의사 지바고>의 주인공의 원형이 등장한다고 한다. 파스테르나크와 알고 지내던 모스크바의 한 의사가 유리 지바고의 모델이라는 설도 있다. 그 의사는 1929년에 사망했다.

서정시로 1932년의 <제2의 탄생>, 1943년의 <1번 열차에서> 등이 유명하다. 사실 <의사 지바고> 이전부터였다. 특히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 파스테르나크는 소련 당국의 요주의 대상이었고 정치적인 비판도 자주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창작 활동 이외에 번역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가 러시아어로 번역한 <그루지야 시인집>(1946), <파우스트>(1953), <셰익스피어 희곡집>(1953) 등은 뛰어난 번역으로 정평이 나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가족들은 1921년에 독일로 이민했다. 현재 후버 연구소 아르키브(Hoover Institution Archives)가 Josephine의 딸(파스테르나크의 조카) Helen Pasternak-Ramsay가 정리, 보관하고 있던 가족 문헌(편지가 대부분)을 인수하여Pasternak family archives로 소장하고 있다. 그 아르키브에 파스테르나크가 1921년부터 1945년 사이에 가족들에게 쓴 편지 70점이 포함되어 있다. 후버 연구소의 러시아 문헌 아르키브는 20세기 러시아 문헌 자료에 관한 한, 비러시아 지역 최대,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러시아 문학은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 : 1879.12.21~1953.3.5)의 사망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었다. 이른바 스탈린 격하운동과 함께 개인숭배의 배격이 공공연히 논해지기도 하고 스탈린 통치 하에서 공포의 상징이었던 베리아가 숙청되었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던 죄수들이 돌아오고 많은 사람들이 복권되었다. 공포의 시대가 가고 사뭇 자유로운 기운이 득세하는 분위기였다.

문학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에렌부르크의 <해빙(解氷)>이 발표됨으로써 소련의 해빙기 문학이 본격화되었다. <해빙>의 뒤를 이어서 소련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작품들이 연이어 발표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의사 지바고>와 두진체프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등이 있었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의 작품세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Boris (Leonidovich) Pasternak)는 러시아의 시인이다. 그는 장편소설 〈의사 지바고 Doctor Zhivago〉로 1958년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자 소련 내에서 커다란 반대가 야기되어 수상을 거부했다. 러시아 혁명의 잔혹함과 그 여파 속에서 펼쳐지는 방황, 정신적 고독, 사랑을 서사적으로 기술한 이 소설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소련에서 비밀리에 번역본으로 유포되었다.

첫 번 째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는 1913년에 출간되었다. 1917년에는 2번째 시집인 〈장벽을 넘어서 Poverkh baryerov〉를 펴냈다. 〈누이, 나의 삶 Sestra moya zhizn〉(1922)을 출간하면서 역량 있는 신인 서정시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시는 상징주의의 영향을 반영한다. 러시아의 기준으로 볼 때는 비록 전위적이고 비종교적(非宗敎的)이었다. 그러나 1933~1943년의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너무 동떨어져 출판이 불가능했다.

셰익스피어, 괴테,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 베를렌, 릴케 등을 번역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1956년 파스테르나크는 큰 기대에 부풀어 모스크바의 유력한 월간지에 소설 〈의사 지바고〉를 기고했다. 그러나 "10월혁명과 혁명의 주역인 인민, 소련의 사회건설을 중상했다"는 비방과 함께 거부당했다. 1957년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출판사를 통해 서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파스테르나크에게서 저작권을 사들인 그 출판사는 '수정을 위해' 원고를 되돌려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소련에서 파스테르나크 탄핵운동이 일어났다. 그는 작가동맹에서 제명되었으며 생계유지의 수단마저 빼앗겼다. 그를 국외로 추방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제1서기장 흐루시초프에게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내게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보냈다. 그는 페레델키노의 집에서 암과 심장병에 시달리며 여생을 보냈다. 영어로 번역된 작품으로는 단편소설과 자전적 작품 〈안전 통행권 Okhrannaya gramota〉(1931), 그리고 엄숙함과 고요한 내적 관조로 끝나는 그의 시작품 전체가 있다.

1987년에야 소비에트 작가동맹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사후 복권을 허락했다. 1958년 작가동맹에서 추방된 이후 불법으로 되어 있던 작품들의 적법성이 인정되었다. 드디어 〈의사 지바고〉가 소련 내에서 출판될 수 있었다.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주도한 평가위원회는 복권에 덧붙여 페레델키노에 있는 그의 집에 기념관을 세울 것을 건의했다.




■ 주요작품


* 닥터 지바고

제정 러시아에서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지바고(유리이 안드레예비치)는 아내 토냐와 행복한 생활을 하던 중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참 진행되던 상황에서 군의관으로 입대한다. 전장에서 지바고는 남편이 자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기자 혹시 하는 마음에서 간호원으로 자원한 라라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전쟁이 끝나가면서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지바고는 옛날의 생활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러시아 전역을 서서히 휩쓰는 혁명의 대열에 적극 동참하지 못하고 시련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혁명에 회의를 품은 지바고는 결국 가족들을 데리고 우랄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심한다. 우여곡절 끝에 기나긴 기차 여행을 마친 지바고는 바리키노라는 조그만 시골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도서관에 들렀던 지바고는 우연히 라라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라라의 집에서 두 달 정도를 보내던 중 문득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던 지바고는 도중에 군의관을 구하던 파르티잔에 붙잡혀 포로 생활을 시작한다. 파르티잔이 패주하는 과정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지바고는 옛날 그 집에서 그 때까지 살고 있던 라라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아내와 식구들이 떠나고 없다는 말을 들은 지바고는 그 곳에서 라라와 함께 살면서 아이까지 두었다. 그러나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라라와 함께 바리키노로 옮겨가서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적막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들은 라라의 제안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들이 떠나기로 한 그 날 아침 지바고는 혁명군의 부름으로 그 지역 인민 위원회에 출두를 했다. 거기에서 라라의 옛 남편이자 혁명군의 군사 지도자였던 스트레니코프가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보니 소식을 들은 라라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라라에 대한 그리움으로 며칠을 그 곳에서 보내던 중 뜻밖에도 총살을 당했다던 스트레니코프가 찾아오고 그와 함께 혁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며칠 후 스트레니코프도 떠나간다. 지바고는 혁명이 성공하고 소련정부가 새로운 경제 계획을 진행시키던 때에 모스크바로 돌아와 그 옛날 피난을 가던 시절에 만났던 젊은이를 다시 만나 우정을 나누며 살다가 생을 마치게 된다.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소설은 혁명의 와중에서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참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사랑과 고난을 통해 혁명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세련된 문체와 상징적이며 철학적인 내용과 대화,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서사시적인 사건 전개는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흔히 상징적 리얼리즘 소설로 분류되는 이 소설은 그 제목 자체부터 상징적이다. 제목에 쓰인 '지바고'는 '살아 있는, 생생한' 등의 뜻을 가진 형용사인 '쥐보이'의 소유격 형태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사회 체제가 아직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작가 자신이 혁명 후의 체제에 반대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소설은 사랑과 혁명의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와 함께 1917혁명으로 겪게 되는 삶의 고통과 사랑은 우리도 익히 체험한 바 있다는 점 등이 이 작품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킨 바 있다.

러시아의 볼세비키 혁명을 무대로 하여 시인이며 지식인인 의사 지바고가 혁명 전에서부터 모스크바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기까지 사랑과 삶을 그렸다. 의사 지바고는 전형적인 지식인으로 혁명을 맞이해서 자신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하나로 자신의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나 혁명은 그의 운명에 변화를 가져오며 그는 소외감을 빠져가며 혁명 그 자체에 반감을 가진다. 자아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지바고는 틀에 박힌 삶을 벗어나 자유롭고자 한다. 이 때문에 작품에 무언가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나타난다.

지바고 가족은 우랄 지방으로 떠난다. 혁명군들은 반혁명 분자를 색출하려고 기차를 세운다. 여기에서 적발되면 강제 유형을 당하거나 곧 죽을 수 있었다. 지바고 가족이 겪는 심리적 불안이 잘 표현된다. 눈 내린 주위의 정경은 너무나도 평화로워 급박한 시대 상황이나 지바고의 고통스러운 탈출 노력과 선명하게 대조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반혁명의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다고 하나 무언가 미래에 대한 빛을 느끼게 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깊은 신앙과 자유에 대한 예감은 역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은 시와 산문이 교차하는 지점에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모색한 작품이다. 의사 유리 지바고는 러시아혁명이 정치적, 사회적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 절박한 시대상황 속에서 개인적인 자유의 세계로 성실하게 살아가려 했다. 자연과 교감을 통해서, 영원한 러시아를 상징하는 여성 라라를 통해서, 시대의 편승자와 낙오자로 구분되는 수많은 운명을 통해서, 혁명과 사회주의의 현실에 대한 환멸과 새로운 통일적 원리에 대한 동경을 표현했다.


■ 참고사항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에 나타나는 기차 여행은 혁명이라는 역사적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작자나 주인공의 의식과 그러한 개인의 의식과는 관계없이 진행되는 역사의 흐름을 동시에 보여준다. 기차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데서 미래 지향의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톨스토이가 흔히 애용하였던 이 기차 여행 모티브는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 근대 초기 문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의사 지바고』는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지바고와 라라의 비극적인 사랑을 주제로 했다. 그러나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의 위에 역사의 검은 그림자가 내려진다. 지바고는 고아가 되었지만 모스크바의 지식인의 가정에서 자라서 상류 계급과 그 문화의 전형적인 체현자(體現者)가 된다. 그러면서 감수성이 섬세하고 뛰어난 의사이면서 철학이나 문학을 연구하여 이 장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24편의 시를 발표하고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지바고를 휘감아 버린 혁명을 하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 속에서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고자 한다. 전쟁이나 혁명도 그의 정신의 내부까지 파고들지 못한다. 그것들에 대하여 강한 이화감(異和感)을 느끼지 못하고 생활을 사랑하면서 진실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혁명이 정신에게 지령을 내리려고 할 때 자신의 할 수 있는 장소는 라라와의 사랑 그 자체이다. 이것에서 파스테르나크 자신의 인생관과 아내 이외의 여성과의 사랑이라는 경험도 반영되고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정치를 일시적인 외적 요인으로 보고 인간의 정신, 감정, 창조성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정치의 힘에 대하여서 의의를 제기하고 있다. 혁명의 폭력에 반대하여 「부드러움을 통하여서 우리들은 최고의 선(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를 「사실에서 멀리 떨어지고, 그 기반이 불확실한 자기 중심적인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권력자는 「자기의 무오류성(無誤謬性)의 신화」를 주장하기 위하여 진실을 무시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불행한 소녀 시절과 결혼 후에 불행하였던 라라는 지바고에게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거나 이러니 저러니 하고 심사할 수 있는 따위의」미(美)를 초월한 존재이다. 라라와 지바고의 우연한 회우 (會遇)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그 자체이다. 개인의 영혼과 자유의 존엄을 역사의 법칙에 대비시킨 것으로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라라의 존재는 푸시킨 이후의 전통이 되어 있는 근대 러시아 문학의 여성상에 이어지는 시적인 여성상의 하나이다.

사랑은 끝없는 절망감을 주기도 한가. 그러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진 빚을 갚고 싶었습니다' 라고 집필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의 격동기를 살아가며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나 시와 번역으로 한평생을 일관했던 삶을 뒤늦게나마 후회하고 역사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사명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 말을 타다가 떨어져 평생 다리의 불편함을 감수해야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중 병역을 면제받고 우랄지방의 군수공장에서 일했다. 이 무렵이 시인 파스테르나크의 출발점이었다.1914년 발표된 `구름 속의 쌍둥이'가 처녀시집이다. 3년 뒤 발간된 시집 `나의 누이 나의 삶'으로 시인으로서 독자적인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934년 소련 내의 모든 문학단체가 해산되고 소비에트작가동맹이 결성돼 창작에도 사회주의적 원칙이 선언되었다. 그러자 그는 모스크바 근교의 시골집으로 이사해 9년 동안 긴 침묵을 지킨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의식적으로 혁명이나 사회주의 건설을 찬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비판했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상징주의자, 형식주의자, 탐미주의자로까지 낙인이 찍혔다. 독자들이 그의 시를 갈구했으나 당국이 그의 시집 출간을 방해했다. 1945년 그는 아무런 기약도 없이 모스크바 근처의 페레젤키노 별장에 틀어박혀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의 집필을 시작했다.

닥터 지바고의 시대적 배경은 1905년의 러시아 제1차 혁명과 1917년의 10월 혁명, 그리고 그 혁명이 현실화되어 가는 시기이다. 작품에서 작가 자신의 분신으로 볼 수 있는 유리 지바고는 러시아가 붕괴되는 일대 사회적 혼란 속에서 비참한 운명과 비극적인 사랑을 체험한다. 유리 지바고는 러시아의 인텔리 계층을 대표한다.

작품 속에 사랑의 테마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사랑은 인간대 인간의 사랑(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지바고의 예술창조에 대한 사랑, 희생의 사랑(기독교적인 사랑)이라는 3가지 양식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테마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현격한 대조를 이루며 작품에 종교적인 색채를 더해준다.

유리 지바고는 기독교적인 윤리 속에서 찬양되는 인간의 덕성을 믿는다. 자연과 사랑 그리고 미의 지고성을 믿는다. 지바고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인간과 우주 사이의 연계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강압과 억제, 공포와 획일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그늘에서 시달리고 있는 인텔리의 항의와 자유에 대한 동경, 개성의 존중 등이야말로 이 작품 속에 흐르고 있는 작가의식이다.

작품 속의 사랑과 고독의 선율은 러시아 혁명이 가져다 준 좌절감과 묘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닥터 지바고의 전면에 흐르는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색조는 전체적으로 반혁명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반혁명적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다고는 하나 무언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느끼게 하는 것은 인간생명에 대한 작가의 한없는 신앙 때문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1917년 10월 혁명과 적군과 백군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란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이런 시각은 자연스럽게 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회의적인 견해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내포한 작품으로 자주 오해를 받았다.

닥터 지바고는 1956년 노브이 미르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절당한다. 결국 닥터 지바고는 1957년 이탈리아어로 번역 출간돼 빛을 보게 된다.1958년에는 영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이 때부터 파스테르나크는 세계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간다.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발표되고 그가 수상을 받아들이려하자 이튿날부터 소련의 매스컴이 그를 집중 공격했다. 그 다음날 작가동맹이 그의 제명을 결정했고 결국 파스테르나크는 노벨상 수상을 사절하겠다는 의사를 스웨덴 아카데미에 타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시민권을 박탈해 국외로 추방하라는 압력이 거세게 일자 그는 흐루시초프에게 탄원서를 보낸다.

'나의 출생, 생활과 일은 러시아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를 떠난 내 운명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이같이 엄한 조치를 취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의 노력으로 국외 추방은 면했다. 이때 받은 상처는 그의 죽음을 재촉했다. 사랑하는 조국으로부터 한 발짝도 떼지 않으려 했던 그는 뜻대로 조국에 머물게 됐지만 `검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그가 모스크바 교외의 작가촌 페레델키노에서 조용히 영면한 것은 노벨상 사건 이후 1년 반이 지난 1960년 5월30일이었다.

1987년에야 비로소 소비에트작가동맹에서 파스테르나크의 사후 복권을 허락했다.1958년 작가동맹에서 추방된 이후 불법으로 돼있던 작품들의 적법성이 인정돼 드디어 닥터 지바고가 소련에서도 출판될 수 있었다.

소련 당국의 강압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비난과 난도질에도 불구하고 닥터 지바고는 파스테르나크라는 이름과 함께 러시아 문학사에서 불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영화 닥터 지바고 (Doctor Zhivago)

* 제작년도 : 1965년 / 제작국가 : 미국 / 감독: David Lean
* 출연 : Omar Sharif, Geraldine Chaplin, Julie Christie, Tom Courtenay

시베리아 설원을 배경으로 소련의 혁명기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영화이다. 라라의 테마라는 음악과 함께 눈 덮인 설원의 로맨스가 아름다워 그 무거움을 살짝 녹여줄 수 있는 추억의 명작이다. 소련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1958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작품을 영화화한 명작으로 스페인의 마드리드 근교의 과다하라 평원에서 올 로케이션 하였다. 아카데미 각본 - 촬영 - 미술 - 의상 -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의사이자 시인인 유리 지바고(Yuri: 오마 샤리프 분)는 토냐(Tonya: 제랄린 채플린 분)와 장래를 약속하면서 열심히 의학실습에 몰두하는데 운명의 여인 라라(Lara: 줄리 크리스티 분)와 마주친다. 그러나 라라에게 혁명가 파샤(Pasha/Strelnikov: 톰 카우트네이 분)라는 연인이 있었다. 1914년 1차대전이 일어나고 군의관으로 참전한 그는 우연히 종군간호부로 변신한 라라와 해후한다. 1917년 혁명정부가 수립된 러시아에서 유리와 같은 지식인은 제일 먼저 숙청될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우랄산맥의 오지 바리끼노로 숨어든다.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시내 도서관을 찾은 그는 우연히 그 근처로 이주해온 라라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 유리는 라라와 토냐 사이를 오가면서 이중 밀회를 지속한다. 그 뒤 빨치산에 잡혀 강제 입산을 당한 유리는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다시 라라를 만나지만 혁명가 파샤가 처형당하고 그의 부인이었던 라라도 처형당할 운명에 처해지면서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때 라라는 유리의 딸을 임신하고 있었다. 라라는 전쟁이 끝난 뒤 유리와의 사이에서 난 딸을 찾아 헤매게 된다. 유리는 전쟁 후 지나가는 전차에서 라라를 우연히 발견하고 쫓아가지만 심장마비로 죽게된다.

닥터 지바고는 혁명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참하게 유린당하는 인간의 감성을 잘 그려냄으로서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이라 하여 소련에서 발간이 허락되지 않은 작품이다. 라라의 테마를 배경으로 눈 덮인 설원에서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유리와 라라가 떠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눈 덮인 평원으로 떠나는 라라와 이제 마지막일지 모르는 평원으로 멀어져 가는 그 뒷모습을 좀 더 보기 위해 2층으로 달려 올라가 지바고가 유리창을 깨부수는 장면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