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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나무를 찾아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에 펼쳐지는 운명의 거리

by 丹野 2011. 8. 23.

[나무를 찾아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에 펼쳐지는 운명의 거리

   어느 흐린 여름 날 저녁 경기 양평 두물머리 느티나무 풍경.

   [2011. 8. 16]

   주말 연휴 내내 비 내리고, 잠시 그치는 듯하더니 다시 또 비 소식입니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비가 내린답니다. 그칠 줄 모르고 야속하게 내리는 비입니다. 계속되는 비 탓에 일 거리를 찾지 못한 일용 노동자 한 사람이 일 거리를 기다리며 눈물 짓던 뉴스 속의 영상이 떠오릅니다. 도시의 노동자 뿐 아니라, 농촌의 농부들에게도 이 비가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입추 지나고 비 내리면 농부들의 근심은 커지는 법이지요. 알곡이 잘 익으려면 맑은 햇살이 더 많이 필요하니까요.

   예전에는 그래서 입추 지나면 날씨가 쾌청하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고 하지요. 기청제 풍습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라도 기청제를 올려야 할 모양입니다. 나무들에게도 이처럼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비는 좋을 게 없습니다. 여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에게는 특히 더 그럴 겁니다. 벌 나비를 불러들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피운 꽃 송이가 세찬 비바람을 못 이기고 죄다 떨어지고 말았으니까요.

   '애기무궁화'라고도 부르는 경북 안동 지역에서 자라난 '무궁화 안동'의 꽃.

   그나마 간당간당 남아있던 꽃송이도 이런 날씨에는 꽃가루받이를 이루기가 언감생심입니다. 비가 잠시 멈추고 가늣한 햇살 퍼지면 나비와 벌은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꽃을 찾아들지 못 하지요.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겨우 날개를 말렸는가 싶을 즈음, 다시 또 비가 내리곤 하기를 거듭한 여름이었으니, 나무들이 이 비를 좋아할 리 없지요. 이제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간절하게 그리운 시절입니다.

   이 즈음에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무궁화가 있습니다. 나라꽃이어서 모두가 좋아하고, 아끼는 나무입니다만, 야릇한 거리감이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그 하나의 증거가 우리 시 가운데 무궁화를 아름답게 노래한 詩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겁니다. 서정주, 천상병을 비롯한 시인들의 작품에 무궁화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다른 나무만큼 무궁화를 온전히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선(詩仙) 이백의 노래에서 무궁화를 찾는 게 쉽습니다. "세상에 무궁화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건 다시 없다"고 강조한 노래입니다. 많이 알려진 시이지만, 무궁화를 한번 더 바라볼 분명한 이유가 있는 즈음이어서 떠올렸습니다.

   ['시가 있는 아침' - 이백, '무궁화' 보기]

   서산 해미읍성의 감옥터 돌담 앞에 슬픈 운명으로 서 있는 회화나무.

   서산의 해미읍성을 찾았던 그 날은 이른 아침 햇살이 참 좋았습니다. 겨우 새벽 잠이 적은 마을 노인 두어 분만 눈에 띄는 새벽 녘, 오랜만에 찬란한 햇살이 읍성 안으로 밀려들었어요. 아침 햇살을 누구보다 먼저 반긴 건, 회화나무였습니다. 높은 가지 끝에 우윳빛 꽃을 올망졸망 피워낸 회화나무가 햇살에 비춰 환한 표정으로 새벽 나그네를 반겼습니다. 그러나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결코 웃을 수 없습니다.

   [사람과 나무 이야기 (41) -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보기]

   우리 땅에 불어닥친 잔혹한 피바람 가운데 하나인 병인박해 때, 가톨릭 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교수대 노릇을 하던 이 회화나무가 어찌 웃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받아내는 찬란한 햇살 안에는 비명에 죽어간 숱한 영혼들의 아우성이 담겨 있습니다. 2008년 충청남도 지방기념물로 승격돼 이전에 비해 사람들의 보살핌이 살가워지기는 했으나 그의 슬픈 표정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도 여름을 보내기 전에 우윳빛 꽃을 가지 위에 피웠습니다.

   사람보다 높이 자라고, 굵은 가지를 넓고 아름답게 펼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좋은 나무로 여기는 회화나무입니다. '학자수(學者樹)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훌륭한 나무이지요.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해미읍성에서 이 회화나무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얄궂은 운명을 띠게 됐습니다. 언제라도 해미읍성 회화나무를 바라보면 나무에 매달려 죽어간 사람들의 아우성이 하나하나 만져지는 듯합니다.

   해미읍성을 찾을 때면 떠오르는 詩가 있습니다. 나희덕 님의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라는 시입니다. 시에서 나희덕 님은 두 그루의 나무를 찾아보라고 권하지요. 물론 그 중 하나는 감옥 앞에 서 있는 이 슬픈 운명의 회화나무입니다. 다른 하나는 회화나무에서 읍성 가운데의 동헌 쪽으로 몇 걸음 떨어진 곳, 동헌 입구에 서 있는 느티나무입니다. 두 나무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그들이 겪어온 세월이 보여주는 삶의 스펙트럼의 차이는 깊고도 멀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옥 앞의 회화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동헌 앞에 화려한 자태로 서 있는 느티나무.

   혹시라도 해미읍성에 가시게 된다면, 나희덕 시인의 권유처럼 꼭 한번 두 나무 사이를 걸어보세요. 동헌 앞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화려하게 살아온 느티나무의 풍요로움과 감옥 앞에서 참혹한 죽음을 바라보며 처참하게 살아온 회화나무의 고행의 운명, 그 사이에 펼쳐진 삶에서 죽음까지의 스펙트럼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천천히 걸어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고 남은 두 그루의 나무들이 펼쳐 보이는 파노라마입니다.

   다시 또 빗소리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결코 반가운 비 될 수 없는 시절이지만, 오늘은 눈 감고 내리는 빗소리 가만히 들으렵니다. 저잣거리의 온갖 소음을 하나로 덮어내는 빗소리입니다. 내리는 빗소리 안에 담겨있을 지금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분들의 한숨 소리, 그리고 폭우와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젊은 청춘들의 신음 소리도 찾아보겠습니다. 이 여름이 남긴 기억을 해미읍성 회화나무처럼 오래 간직하려는 마음입니다.

   '시가 있는 아침'에서 박설희 님의 시 '먼나무'와 함께 소개한 먼나무의 잎.

   끝으로 지난 주의 '시가 있는 아침'을 다시 볼 수 있는 링크 남깁니다. 여유 되실 때에 보시면서 차분하고 평안한 나날 보내시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시가 있는 아침' - 이태수, '회화나무 그늘']
   ['시가 있는 아침' - 권현형, '자귀나무 아래까지만']
   ['시가 있는 아침' - 김태형, '그게 배롱나무인 줄 몰랐다']
   ['시가 있는 아침' - 김언희, '벼락 키스']
   ['시가 있는 아침' - 박설희, '먼나무']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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