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사이에 펼쳐지는 운명의 거리 | |
어느 흐린 여름 날 저녁 경기 양평 두물머리 느티나무 풍경. | |
[2011. 8. 16] | |
'애기무궁화'라고도 부르는 경북 안동 지역에서 자라난 '무궁화 안동'의 꽃. | |
그나마 간당간당 남아있던 꽃송이도 이런 날씨에는 꽃가루받이를 이루기가 언감생심입니다. 비가 잠시 멈추고 가늣한 햇살 퍼지면 나비와 벌은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꽃을 찾아들지 못 하지요.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겨우 날개를 말렸는가 싶을 즈음, 다시 또 비가 내리곤 하기를 거듭한 여름이었으니, 나무들이 이 비를 좋아할 리 없지요. 이제 그만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간절하게 그리운 시절입니다. | |
서산 해미읍성의 감옥터 돌담 앞에 슬픈 운명으로 서 있는 회화나무. | |
서산의 해미읍성을 찾았던 그 날은 이른 아침 햇살이 참 좋았습니다. 겨우 새벽 잠이 적은 마을 노인 두어 분만 눈에 띄는 새벽 녘, 오랜만에 찬란한 햇살이 읍성 안으로 밀려들었어요. 아침 햇살을 누구보다 먼저 반긴 건, 회화나무였습니다. 높은 가지 끝에 우윳빛 꽃을 올망졸망 피워낸 회화나무가 햇살에 비춰 환한 표정으로 새벽 나그네를 반겼습니다. 그러나 한 많은 세월을 살아온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결코 웃을 수 없습니다. | |
해미읍성 회화나무도 여름을 보내기 전에 우윳빛 꽃을 가지 위에 피웠습니다. | |
사람보다 높이 자라고, 굵은 가지를 넓고 아름답게 펼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좋은 나무로 여기는 회화나무입니다. '학자수(學者樹)라고까지 부를 정도로 훌륭한 나무이지요. 그러나 똑같은 이유로 해미읍성에서 이 회화나무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얄궂은 운명을 띠게 됐습니다. 언제라도 해미읍성 회화나무를 바라보면 나무에 매달려 죽어간 사람들의 아우성이 하나하나 만져지는 듯합니다. | |
감옥 앞의 회화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동헌 앞에 화려한 자태로 서 있는 느티나무. | |
혹시라도 해미읍성에 가시게 된다면, 나희덕 시인의 권유처럼 꼭 한번 두 나무 사이를 걸어보세요. 동헌 앞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화려하게 살아온 느티나무의 풍요로움과 감옥 앞에서 참혹한 죽음을 바라보며 처참하게 살아온 회화나무의 고행의 운명, 그 사이에 펼쳐진 삶에서 죽음까지의 스펙트럼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천천히 걸어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모두 떠나보내고 남은 두 그루의 나무들이 펼쳐 보이는 파노라마입니다. | |
'시가 있는 아침'에서 박설희 님의 시 '먼나무'와 함께 소개한 먼나무의 잎. | |
끝으로 지난 주의 '시가 있는 아침'을 다시 볼 수 있는 링크 남깁니다. 여유 되실 때에 보시면서 차분하고 평안한 나날 보내시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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