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무의 수사학
[중앙일보] 입력 2011.08.01 00:09 / 수정 2011.08.01 00:09
튤립나무 Liriodendron tulipifera L.
꽃이 피었다,
나무의 수사학 - 손택수(1970~ )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 … )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도심에 줄지어 선 플라타너스 가로수 사이에 튤립나무 한 그루가 끼어들었다. 일부러 끼워넣은 것인지, 비슷해 보이는 플라타너스와 헷갈려 심은 건지 알 수 없다. 그의 꽃이 튤립을 닮아서 튤립나무라 한다. 얼룩덜룩 버즘 핀 듯한 플라타너스와 달리 매끈하고 단정한 튤립나무의 줄기는 번잡한 도시의 규칙을 벗어났다. 높다란 가지 끝에서 주황색의 큼지막한 꽃이 숨죽이며 피어난다. 도시의 이주민에게 튤립나무는 치욕으로 푸르다는 반어법을 가르친다. 바라보는 이 없고, 불면증에 시달려도 나무는 악착같이 푸르고, 참을 수 없이 붉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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