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나무
[중앙일보] 입력 2011.08.02 00:08 / 수정 2011.08.02 00:08
은행나무 Ginkgo biloba L.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
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사람보다 먼저 나무가 있었다. 처음 뿌리 내린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건 그의 운명이다. 나무를 찾아 든 짐승은 잎을 갉아먹고, 열매가 맺히기를 기다렸다. 언제나 도도하게 하늘로 치솟아 오르지만, 나무는 모든 것을 내어주고 홀로 슬프다. 사람도 나무를 찾아왔다. 사람은 머무르는 자리마다 나무를 심으며 수천의 세월을 보냈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도 나무 없는 곳은 없다. 나무가 아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사람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다. 비바람 눈보라 몰아쳐도 꼼짝 않고 나무는 제 속살에 차곡차곡 세월을 쌓는다. 말 없이 서서 천년의 역사를 담는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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