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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나무를 찾아서] 詩를 찾아서, 나무를 찾아서, 그리고 사람을 찾아서

by 丹野 2011. 8. 1.

[나무를 찾아서] 詩를 찾아서, 나무를 찾아서, 그리고 사람을 찾아서

   6월부터 7월 사이에 우윳빛의 작은 꽃을 활짝 피우는 돈나무.

   [2011. 8. 1]

   지난 [나무편지]를 올린 지 고작 이레 지난 건데, 참 길게 느껴지는 한 주였습니다. 비 때문이겠지요. 그냥 '비가 왔다'고 할 수 없을 만큼 큰 비였지요. 이 비에 생명을 잃은 젊은 영혼들이 안타까워 한 주 내내 가슴을 졸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 비와 태풍 소식이 이어집니다. 참으로 무심하게 내리는 비, 비, 비입니다. 다른 해의 이 즈음이라면 수도권 도심이 텅 비는 즐거운 휴가철이어야 하는데, 우울한 비만 끊임없이 내리네요.

   집 앞의 회화나무에 꽃이 핀 줄 모르고 지난 것도 필경 비 때문이었습니다. 자주 지나치는 길이지만, 꽃이 피어있는 동안 대개는 우산을 쓰고 지났던 거죠. 자연스레 나무 위에서 피어난 회화나무의 꽃을 볼 수 없었습니다. 세찬 비 맞고 떨어진 꽃 송이 보고서야 그가 꽃을 피웠다는 걸, 심지어 거기에 있었다는 걸 겨우 알아채게 됐습니다. 내 곁의 소중한 나무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편지는 그래서 놀랄 정도로 아름답게 꽃을 피웠던 지난 달의 '돈나무'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토종의 돈나무는 쓰임새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해 그리 사랑받지 못했다.

   지난 유월 말,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난 돈나무입니다.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이 나무를 옛 제주 사람들은 왜 '똥나무'라고 부르며 홀대했을까요? 아무리 살림살이가 고단했던 옛 사람들이었음을 감안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 눈으로도 이 나무가 '똥나무'라 불러야 할 만큼 몹쓸 나무였다면 이런 의문은 들지 않겠지요. 그러나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꽃이 피든 안 피든 돈나무는 참 예쁜 나무입니다.

   그걸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나무를 자기 나라로 가져가면서 제주 사람들이 부르는 '똥나무'를 그대로 옮겨갔고, 경음과 이응 받침을 정확히 하지 못하는 그들은 '돈나무'라 불렀습니다. 그 나무가 다시 우리에게 전해질 때에 예전에 우리가 부르던 '똥나무'가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부르던 '돈나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겁니다.

   꽃 없어도 잎이나 수형이 단아해 좋은 돈나무가 이처럼 화려한 꽃을 피웠다.

   꽃이 피었을 때나 그렇지 않았을 때나 단아한 몸가짐으로 조용히 서 있는 돈나무는 언제라도 좋습니다. 까닭에 생각 없이 지나는 길에서라도 돈나무를 지나칠 때면 꼭 한번씩 눈을 맞추고 지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많던 만남 중에 이만큼 활짝 꽃을 피운 돈나무는 처음이었습니다. 숲 속 오솔길을 돌아들면서 우윳빛 꽃을 환하게 피운 이 돈나무를 만난 건 그야말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돈나무 꽃을 처음 보는 건 아닙니다만, 이만큼 잘 자란 나무에서 이만큼 화려하게 꽃을 피운 걸 만나기는 처음입니다. 돈나무를 잘 아시는 분들이라 해도 이처럼 온 가지에 조롱조롱 작은 꽃들을 화려하게 피운 걸 보시기는 쉽지 않은 것 아닌가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머무르며 이 나무와 나누었던 그 동안의 적지 않은 이야기들을 되짚어 주고 받았습니다. 지난 이야기를 들으며 나무가 '호호' 웃는 듯했습니다.

   사임당 신씨가 머무르던 오죽헌 뒤란을 지키고 서 있는 율곡매.

   연재 중인 칼럼, '사람과 나무 이야기'에는 강릉 오죽헌의 나무 이야기를 썼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오죽헌은 지나치리만큼 꾸며낸 모습 때문에 마음이 그리 많이 끌리는 곳은 아닙니다. 아마 이 집의 큰 나무가 아니었다면 저로서는 일부러 오죽헌을 찾을 일이 없었을 겁니다. 이 여름에도 그 나무들이 보고 싶어 오락가락하는 비를 피해 부리나케 강릉을 찾았습니다.

   봄이었다면 연분홍 꽃을 예쁘게 피었을 홍매입니다. '율곡매'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지난 2007년 가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의 오래 된 여러 그루의 매화 가운데에 손꼽히는 나무입니다. 6백 년 전 쯤에 심은 나무이니, 나이로 봐도 우리나라의 여느 매화나무 못지 않게 오래된 나무이죠. 물론 크기나 생김새에서도 다른 어떤 매화나무에 뒤지지 않습니다.

   봄에 연분홍 빛 꽃을 피우는 율곡매의 열매는 여느 매실나무보다 굵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임당 신씨가 이 집에 머무르기 훨씬 전부터 이 자리에서 자라던 이 매화나무를 사임당은 무척 아꼈다고 합니다. 나무는 오죽헌이라는 이름의 작은 살림채 뒤란 귀퉁이, 담벼락 가까이에 서 있습니다. 사임당이 그린 여러 그림에는 매화가 많이 나오는데, 그 매화의 모델이 바로 이 나무였지 싶습니다. 사임당의 맏딸, 그러니까 율곡 이이의 큰 누이 되는 분의 이름에 매화를 넣은 것도 그이가 얼마나 매화를 좋아했는지 보여주는 예이겠지요.

   매화나무를 식물학에서는 '매실나무(Prunus mume Siebold & Zucc. for. mume)'로 부릅니다. 대개의 식물 이름을 그 나무가 맺는 열매의 이름에서 따오는 방식을 따르는 거지요. 감이 열리는 나무를 감나무, 밤이 열리면 밤나무, 복숭아가 열리면 복숭아나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무 이름을 쓸 때, 식물학에서 정한 이름을 따르는 게 원칙이지만, 매실나무라 부르면 그 본래의 운치가 사라지는 듯해서, 이 경우만큼은 틀린 걸 알면서도 '매화나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죽헌 율곡매의 줄기에 묻어나오는 6백 년 긴 세월의 더께.

   오죽헌 뒤란에서 한창 탐스러운 열매를 듬성듬성 맺은 율곡매 앞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피하며 처마 밑에 주저앉았다가 일어나서 서성거리기를 몇 시간 되풀이했습니다. 오래 바라보며 나무와 눈길을 맞추는 누군가를 기다린 겁니다. 그게 누가 되더라도 그가 나무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지를 알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얄궂게도 오죽헌 방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사람들 가운데에 나무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대개는 그냥 흘긋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서너 시간 쯤 지나는 동안, 참으로 많은 관람객이 드나들었지만, 제가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걸음을 재촉하려 했던 때문이겠지요. 날씨만 화창했어도 나무 앞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더 기다렸습니다.

   오죽헌 지붕 위로 가지를 뻗은 율곡매에서 단아한 풍채.

   스무 살을 조금 넘긴 듯한 젊은 여자가 홀로 나타난 건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다시 또 오죽헌 지붕 위로 다가올 즈음이었습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앙증맞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그녀는 처음에 나무 앞에 세워둔 안내판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그리고는 신기하다는 눈길로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빙빙 돌며 사진을 찍고 나서도 나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더군요.

   예뻤습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무 가지 끝을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은 참으로 해맑았습니다. 그가 나무와 나누는 대화를 어지럽힐 수 없어 그냥 모른 체하고 있다가, 그녀가 나무에 눈길을 고정한 채 뒷걸음질치며 돌아서려는 즈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칼럼에 그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만, 여대생이라는 그녀는 매우 수줍어 하며 나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지만, 그냥 좋다고 했습니다.

   [칼럼 다시 보기]

   오죽헌 앞마당을 아름답게 하는 또 하나의 나무인 오죽헌 배롱나무의 미끈한 줄기.

   새로 쓰게 된 글이 있어서 덧붙여 소개합니다. 여러 신문들이 매일 시 한 편과 그 시를 뽑아내 읽은 시인의 감상을 함께 싣는 칼럼입니다. 이 난은 대개 시인들이 맡아 연재해 왔는데, 시인이 아닌 사람으로서 제가 쓰기에는 분에 넘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같은 콘셉으로 '나무가 말하였네'라는 책을 낸 뒤로, 더 쓰고 싶었던 글이기도 해서 제게는 벅차고 보람된 일입니다. 처음으로 손택수 시인의 '나무의 수사학'을 골라냈습니다.

   ['시가 있는 아침' 다시 보기]

   [관련 인터뷰 기사 보기]

   당분간 매일 아침에 한 편의 시, 한 장의 사진, 그리고 짧은 감상의 글을 더 많은 독자 여러분께 전하게 돼 부담이 크지만 영광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열심히 좋은 글 낼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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