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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헤더 보기 새창읽기 일정입력 인쇄 메일 다운로드 [나무 생각] 소낙비 속에 꿈틀대는 우리 곁의 자연을 찾아 잠시……

by 丹野 2011. 7. 25.

[나무 생각] 소낙비 속에 꿈틀대는 우리 곁의 자연을 찾아 잠시……

   한 여름 천리포수목원의 큰연못 풍경.

   [2011. 7. 25]

   영문으로 쓰인 그림책 두 권을 꼼꼼히 보았습니다. 영문 책은 아무래도 한글 책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려야 읽게 됩니다. 본래의 뜻을 온전히 이해했는지를 살펴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가까이 지내는 분께서 권해주셔서 읽게 된 책인데, 읽는 동안 이 책의 발상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림과 글을 한 작가가 쓰고 그린 책으로, 우리 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연이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걸 어린 아이들에게 잘 보여주는 매우 유쾌한 책이었습니다. 가끔씩 제가 나무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생기면, 가장 강조하는 게 바로 이런 점이지요. 나무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는 것 말입니다. 두 권의 영문 그림책을 보면서, 여유가 된다면 저도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락없는 촛대 모양으로 피어나는 천남성 꽃.

   제가 자주 떠올리는 경험이 있습니다. 십 여 년 전, 부천에서 서울 시청 앞 근처의 직장으로 1호선 전철을 타고 출근하던 때의 경험입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자귀나무, 목련, 모과나무, 회양목, 장미가 눈에 들어오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길가에는 가로수로 가죽나무, 메타세쿼이아, 양버즘나무가 서 있지요. 아파트 낮은 울타리에는 개나리, 쥐똥나무, 철쭉이 늘어져 있고, 대로에 나오면, 은행나무, 튤립나무, 복숭아나무가 있습니다.

   나무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철 밖 풍경으로는 향나무, 무궁화, 오동나무, 버드나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수수꽃다리, 회화나무, 벚나무가 다문다문 눈에 ??니다. 회사 담벼락은 대나무와 영산홍이 둘러쌌습니다. 고작해야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출근 길에 하나 둘 헤아리며 수첩에 나무 종류를 적어보니, 무려 50가지가 넘는 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주위에는 어떤 나무가 있나요?

   물레나물 과에 속하는 금사매의 꽃 봉오리.

   같은 길로 십 년 넘게 출퇴근하면서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내 곁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헤아려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우리가 유심히 바라보지 못할 뿐 나무는 도시에도 많이 있습니다. 얄따란 그림책은 그같은 우리 곁의 자연을 다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비교적 낯선 식물과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 탓에 여러 사전과 도감을 뒤적이느라 적잖은 시간을 들여야 했지만, 참 좋았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일은 자연을 사랑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 선생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주 바라보지 않고서는 그를 사랑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먼저 내 곁의 자연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은 그 오랜 응시 속에서 싹틉니다. 그 사랑이 깊어지면 그가 망가지는 걸 견디지 못하고 온 정성을 다해 그를 지키려 나서게 될 겁니다.

   노란 꽃잎과 그 안쪽의 여러 꽃술들이 예쁜 금사매의 활짝 핀 꽃 송이.

   차츰 여름이 깊어갑니다. 지루한 장마 지났는가 싶었는데, 다시 비 쏟아지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주말에는 이미 호우주의보를 동반한 비가 뿌렸고, 이번 주 내내 비가 계속 내린다는 예보입니다. 그 동안 내린 비만으로도 몇해 만에 최대 강우량이었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아직도 내릴 비가 더 있다니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저조차도 조금씩 성가시게 생각할 때가 생깁니다.

   비 내리고 여름 깊어지면서 숲 빛깔은 한층 짙어졌습니다. 수목원의 숲에서도 온갖가지 식물들이 꽃 피고 지면서 한참 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이 짙은 녹음을 바삐 즐기는 중입니다. 긴 겨울 잠을 깨고 대지에 알록달록한 빛깔을 지어낸 새 봄의 꽃들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아니지만, 식물들에게 이 여름의 비와 뜨거운 햇살은 다음 세대의 생명을 이루어 내는 데에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금사매는 물레나물과에 속하는 다른 대개의 식물들과 비슷한 모양으로 피어납니다.

   오늘 편지에 보여드리는 사진들은 장마 들기 바로 전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난 꽃들입니다. 촛대 모양의 독특한 꽃을 피운 천남성과 탐스럽게 노란 꽃을 피운 물레나물과의 금사매입니다. 금사매의 꽃은 한 송이의 지름이 5센티미터 정도 크기로 활짝 피어나고 안쪽에는 여러 개의 꽃술이 하늘하늘 달려 있어서 보기에 참 좋습니다. 장마 지나면서 꽃은 다 떨어졌겠지만, 여름의 초입을 화려하게 알린 꽃들의 생명 잔치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지난 주에는 신문 칼럼을 한 주 걸렀습니다. 급하게 보도해야 할 다른 뉴스들에 밀려 한 주 미루게 된 겁니다.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새로 지정한 강원도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라 불리는 매화 이야기를 칼럼으로 썼는데, 그건 이번 주로 넘어왔습니다. 비교적 찾는 사람이 많은 관광지 안의 나무여서 바라보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답사 때의 이야기를 적은 칼럼인데, 그건 신문에 실리는 대로 링크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름 내내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는 수국이 있는 천리포수목원의 암석원 연못 풍경.

   기상청 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비가 내릴 듯합니다. 지금 비는 장맛비처럼 내리지만, 예보에는 소나기가 잦은 한 주가 되리라고 합니다. 말로만이라도 장마가 아니라, 소나기라니 다행 아닌가요? 뭐니뭐니해도 비는 소나기가 제맛이니까요. 축축한 날씨 이어지지만, 마음만큼은 젖지 않고 금사매 노란 꽃처럼 뽀송뽀송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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