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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천 년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 곁에서 꼿꼿이 일어선 금낭화

by 丹野 2011. 5. 16.

[나무 엽서] 천 년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 곁에서 꼿꼿이 일어선 금낭화

   강원 영월에서 그냥 돌아나올 수 없게 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천년 넘게 살아온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입니다. 천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제 모습을 잃지 않는 나무입니다만, 나무 주위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초행 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길을 찾는 건 어려웠습니다. 세월 따라 사람살이가 많이 바뀐 때문입니다. 예전에 가던 길을 짚어 갔지만, 난데없이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서게 돼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돌아다니다가 멀리서 큰 키로 높이 솟아오른 나무를 찾아내고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천년 넘게 살아온 나무는 몇 해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 달라진 걸 알 수 없는데,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옹기종기 마을이 모여있던 곳으로 넓은 도로가 생겼고, 나무 앞의 마을은 흩어졌습니다.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극진히 아끼는 나무인 것은 틀림없지만, 주변 풍경이 몰라보게 달라진 겁니다. 천년 된 은행나무를 바라보느라 이리저리 돌아보다가, 나무 아래 쪽에서 금낭화 꽃을 만났습니다. 조금 이르지 싶게 피어난 이 꽃이 예뻐서, 나무 주변의 풀을 뽑으러 나온 마을 노파 두 분과 쪼그리고 앉아서 빨간 꽃 바라보며 천년 된 은행나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작은 생명의 우렁찬 함성에 귀 기울이며 … 5월 3일 아침에 솔숲(http://solsup.com)에서 고규홍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