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한 많은 어린 임금의 설움과 슬픔을 바라보고 위로한 나무 | |
어린 단종이 한양 땅을 바라보며 돌무지 탑을 쌓았다는 망향탑에서 내려다 본 영월 청령포를 휘감아 도는 서강. | |
[2011. 5. 2] | |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한 많은 세월을 보낸 영월 청령포의 어가. | |
청령포에는 키가 30미터나 되는 큰 키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더 꼼꼼히 찾아봐야 하겠습니다만, 아마도 이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소나무 가운데에 가장 키가 큰 나무이지 싶습니다. 이 나무는 특히 옆으로 가지를 넓게 뻗지 않고 위로만 솟구쳐 오른 탓에 실제 키보다는 훨씬 커 보이기도 합니다. 주위에 무성한 솔숲이 있어서 가지를 옆으로 펼칠 수 없었던 이 소나무는 위로만 솟아오른 겁니다. | |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뉘어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관음송 줄기. | |
관음송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거진 솔숲 그늘이 어두울 뿐 아니라, 울창한 숲 사이에 관음송과 다른 나무 사이의 경계가 구분되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흐린 날씨에 빛도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이어서, 한 오라기 빛이 잠깐이라도 나무 위에 찾아들기를 기다리며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 |
단종의 설움과 한을 바라보았다 해서 '관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나무. | |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으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땅이 축축하기도 했지만, 앉을 자리를 짚어보려는데, 곳곳에는 이제 막 한창 때를 살짝 넘긴 제비꽃들이 무성하게 깔려 있었어요. 단종의 관음송에만 눈길을 모으느라 채 바라보지 못했던 작은 생명들이었습니다. 발 디딜 자리를 조심조심 살피며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몸을 낮춰 제비꽃 푸른 꽃잎에 눈을 맞추었습니다. | |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다른 한쪽은 높은 절벽이 에워싼 육지 속의 오지, 청령포의 쓸쓸한 풍경. | |
청령포 관음송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어린 왕도, 나무도 한 마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나무는 왕의 가슴 속 울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겁니다. 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갔지만, 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무 소리 내지 못 하고 눈으로만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관음의 소나무 앞에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관음의 사람으로 머물렀던 하루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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