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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한 많은 어린 임금의 설움과 슬픔을 바라보고 위로한 나무

by 丹野 2011. 5. 16.

[나무를 찾아서] 한 많은 어린 임금의 설움과 슬픔을 바라보고 위로한 나무

   어린 단종이 한양 땅을 바라보며 돌무지 탑을 쌓았다는 망향탑에서 내려다 본 영월 청령포를 휘감아 도는 서강.

   [2011. 5. 2]

   강원도 영월 청령포 단종 유배지에 들어서려면 강을 건너야 합니다. 강을 건넌다 했지만, 힘 좋은 사람이라면 헤엄을 쳐서라도 금세 건널 수 있을 만한 작은 개울에 불과합니다. 기껏해야 70미터도 채 안 되는 강폭을 건너려면 작은 나룻배를 타야 합니다. 날씨가 궂으면 이 배가 그 짧은 폭조차 다니지 않기도 합니다. 이 강은 영월의 동강으로 이어지는 서쪽 강이어서 서강이라고 부릅니다.

   제 경험으로 영월 청령포는 붐빌 때보다 한산할 때가 더 많은데, 지난 주말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제가 도착한 이른 아침만 해도 두 명의 젊은 여인 외에는 별다른 관광객이 없어서, 고즈넉한 분위기였지만, 그 분위기는 금세 망가졌지요. 중간고사를 마치고 소풍에 나선 증고등학생들이 몰려들었을 뿐 아니라, 마침 '단종 문화제'라는 행사에 맞춰 나들이온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많았습니다. 딱 한 척의 나룻배가 오가는 선착장에서 줄지어 서서 이 가늣한 강을 건너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한 많은 세월을 보낸 영월 청령포의 어가.

   청령포에는 키가 30미터나 되는 큰 키의 소나무가 있습니다. 더 꼼꼼히 찾아봐야 하겠습니다만, 아마도 이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소나무 가운데에 가장 키가 큰 나무이지 싶습니다. 이 나무는 특히 옆으로 가지를 넓게 뻗지 않고 위로만 솟구쳐 오른 탓에 실제 키보다는 훨씬 커 보이기도 합니다. 주위에 무성한 솔숲이 있어서 가지를 옆으로 펼칠 수 없었던 이 소나무는 위로만 솟아오른 겁니다.

   나무에는 '관음송(觀音松)'이라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소나무 앞에 붙은 '관음'은 불교식 이름이 아닙니다. 나무가 이 곳에서 일어난 한 많은 세월의 소리를 바라보았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조선 세조2년인 1456년, 550년 전 이 자리에서 나무가 바라본 것은 숙부에게 왕의 자리를 빼앗기고 유배당한 어린 단종의 한 맺힌 울음 소리였습니다.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뉘어 하늘로 높이 솟아오른 관음송 줄기.

   관음송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좋은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우거진 솔숲 그늘이 어두울 뿐 아니라, 울창한 숲 사이에 관음송과 다른 나무 사이의 경계가 구분되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흐린 날씨에 빛도 거의 들지 않는 상황이어서, 한 오라기 빛이 잠깐이라도 나무 위에 찾아들기를 기다리며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워낙 키가 큰 나무여서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나무가 잘 보이도록 사진기를 삼각대 위에 붙들어 앉힌 뒤에 햇살이 나무에 닿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큰 소용이 닿을 리 없겠지만, 강제로 빛을 더해주는 스트로보까지 세워두었지요. 그러나 큰 비와 천둥번개까지 머금고 있던 먹구름은 청령포 하늘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틈엔가 무리를 지어 찾아든 옛 단종 또래의 어린 아이들의 왁자함도 스쳐 지나고,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에 같이 건너왔던 두 여인도 청령포를 느긋이 돌아보고 떠났지만, 기다리는 빛은 한 오라기도 새어 들지 않았습니다.

   단종의 설움과 한을 바라보았다 해서 '관음'이라는 이름이 붙은 소나무.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으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땅이 축축하기도 했지만, 앉을 자리를 짚어보려는데, 곳곳에는 이제 막 한창 때를 살짝 넘긴 제비꽃들이 무성하게 깔려 있었어요. 단종의 관음송에만 눈길을 모으느라 채 바라보지 못했던 작은 생명들이었습니다. 발 디딜 자리를 조심조심 살피며 조금은 불편한 자세로 몸을 낮춰 제비꽃 푸른 꽃잎에 눈을 맞추었습니다.

   어린 단종도 이 곳에 서서 한양 땅을 그리워 했을 겁니다. 어린 그가 지나온 세월이 한스러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음이 차오를 때에도 '나는 왕이다' '나는 왕이다'를 되뇌며 그는 로열 패밀리의 자존심을 잠시도 내려놓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울음 소리는 그래서 누구도 들을 수 없었겠지요. 그의 울음 소리를 알아챌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나무 뿐이었습니다. 이 나무를 문음(聞音)이라 하지 않고 관음(觀音)이라 한 건 그래서일 겁니다. 들으려야 들을 수 없었던 왕의 울음을 온전히 바라본 나무라는 뜻인 거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이고 다른 한쪽은 높은 절벽이 에워싼 육지 속의 오지, 청령포의 쓸쓸한 풍경.

   청령포 관음송을 바라보는 마음은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어린 왕도, 나무도 한 마디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나무는 왕의 가슴 속 울음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겁니다. 나무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갔지만, 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무 소리 내지 못 하고 눈으로만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관음의 소나무 앞에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관음의 사람으로 머물렀던 하루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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