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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노란 색의 목련 꽃이 부르는 이 봄의 마지막 송가

by 丹野 2011. 5. 16.

[나무를 찾아서] 노란 색의 목련 꽃이 부르는 이 봄의 마지막 송가

   한적한 숲 속 낮은 곳에서 돌보는 이 없는 풀잎 위에 보석처럼 영롱하게 맺은 아침이슬.

   [2011. 5. 11]

   며칠 째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어떤 곳에서는 비의 양도 꽤 많은 모양입니다. 하늘도 짙은 잿빛 먹구름을 당최 몰아내지 않는 게 며칠 째이네요. 하시는 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린이날부터 며칠 동안 계속 휴무이셨던 분이 적지 않았던 주말이었습니다. 한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띄우던 '나무 편지'도 연속된 휴일을 모두 보내고, 오늘 아침에 월요일 기분으로 보내드립니다.

   지난 휴일 동안 길 위에 나선 분들이 적지 않았던 듯합니다. 주말에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오는 길도 평소에 비해 세 배 쯤은 걸린 듯합니다. 평소라면 두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인데, 지난 주말에는 가는 데에만 여섯 시간, 오는 데에도 똑같이 여섯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길 위에 나섰던 분들이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아무렇게나 삐죽삐죽 솟아난 풀잎 끝에도 동산에 해 오를 무렵, 반짝이는 이슬이 맺혔어요.

   수목원 경내의 고요한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고요한 숲을 거닐었습니다. 천천히 비공개 구역을 걸어 올랐습니다. 동백 꽃과 어우러져 목련 꽃 피어날 즈음이면 낮은 곳에서는 수선화가 피어나고, 길섶의 낮은 곳에는 개나리도 다문다문 피어있어, 온갖가지 색깔의 잔치가 벌어지는 곳입니다. 진달래 꽃도 점점이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산길이죠.

   다른 지역에 비해 개화기가 늦기는 하지만, 천리포수목원에도 이제 목련 꽃 가장 좋은 시절은 지났습니다. 가지 끝에 숱하게 피어나 지난 봄을 아름답게 노래하던 목련 꽃들은 대부분 떨어졌습니다. 지난 주에 연초록의 향연을 벌이던 히어리 꽃도 다 떨어졌습니다. 시절에 맞지 않게 벚나무의 꽃이 환하게 길을 밝힌 것이 오히려 수상하게 느껴지는 늦봄 아침의 산길, 몸을 낮추어 낮은 곳을 바라보니, 돌아보는 이 없이 아무렇게나 돋아난 들플의 잎사귀 위에 보석처럼 영롱하게 맺힌 이슬방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목련 중에 가장 늦게 피어나는 축에 속하는 엘리자베스 목련의 노란 꽃.

   목련 꽃 다 떨어졌다지만, 우리 수목원의 명물 목련 가운데 하나인 엘리자베스 목련(Magnolia x 'Elizabeth')은 지금이 한창입니다.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략 목련은 흰 꽃의 목련이 가장 먼저 피어나고 그 뒤를 이어 붉은 빛의 목련이 피어나지요. 그 뒤를 곧이어 노란 색의 목련 꽃이 피어납니다. 붉은 꽃의 목련을 자목련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노란 색의 목련을 황목련이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그러나 황목련이라고 부를 때에 헷갈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꽃의 빛깔이 노란 색이라 해서 황목련이라고 부르는데, 이북에서는 '일본목련'을 '황목련'이라고 부른답니다. 일본목련은 흔히 '후박나무'라고 잘못 부르는 나무예요. 잎이 넓고 큰 키로 자라서 초여름에 하얀 꽃을 나무 위에 활짝 피우는 나무를 흔히 후박나무라고 부르지만, 그건 일본목련입니다. 북한의 식물용어를 혼동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아도, 알아둘 필요는 있겠지요.

   바다로부터 밀려온 짙은 해무 탓에 엘리자베스 목련 꽃 위에도 이슬 방울이 초롱초롱 달렸습니다.

   개화 시기가 비슷하지만, 황목련의 꽃은 자목련보다 하루 이틀 정도 늦게 피어나는 편입니다. 황목련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 수목원에서 가장 잘 자란 황목련은 사진의 엘리자베스 목련입니다. 여러 그루의 엘리자베스 목련 가운데 이 나무는 고 민병갈 설립자가 그 분의 가까운 친척 어른인 Ruth Miller Kyte 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로, 목련 동산의 제일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노란 색 꽃을 피우는 황목련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니어서, 처음 보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최근에는 이 꽃이 예쁘고 특별해서, 우리나라의 여러 식물원에서 여러 품종들을 앞다퉈 갖춰 놓았고, 또 일부 조경회사를 통해 구할 수도 있게 됐지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란 색 꽃의 목련은 우리나라에서는 천리포수목원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었습니다.

   꽃이 피고 나서야 서서히 돋아나는 엘리자베스 목련의 초록 잎사귀.

   우리 수목원의 목련 가운데에는 품종의 이름 가운데 'Yellow' 'Gold' 'Royal' 등의 이름이 들어간 나무들이 대개는 노란 색 꽃의 목련입니다. 여러 품종의 황목련 중에 아무래도 가장 돋보이는 건 엘리자베스 목련입니다. 대개의 황목련이 잎과 함께 꽃이 피는데, 엘리자베스 목련은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그 노란 색이 더 돋보이는 겁니다. 이 목련은 노란 색의 꽃을 그처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뉴욕의 브루클린 식물원에서 선발해낸 새 품종입니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나게 하려고 브루클린 식물원에서는 백목련을 이용한 겁니다. 꽃보다 늦게 피어난다고는 했지만, 엘리자베스 목련의 잎은 꽃이 한창 아름다운 즈음에 서서히 돋아납니다. 그래서 우리 엘리자베스 목련도 지금 꽃이 한창이면서 새 잎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습니다. 백목련과 그리 다를 것이 없는 생김새인데, 색깔만큼은 참으로 신선합니다. 처음 보신다면 목련이 어떻게 이런 색깔의 꽃을 피우는지 놀랄 수밖에 없지요.

   짙게 깔린 바다 안개에 자무룩하게 젖어든 목련 동산에 홀로 아름답게 꽃을 피운 엘리자베스 목련.

   엘리자베스 목련이 꽃을 피운 이 즈음에 동백 꽃도 한창입니다. 목련은 물론이고, 동백도 예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적어도 열흘에서 보름 정도 늦은 셈입니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목련이 꽃을 피우고 나면, 이제 우리 수목원에 있는 대부분의 목련은 그 찬란했던 봄의 송가(頌歌)를 모두 마치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 아름다운 수목원에도 여름 빛이 찾아 들겠지요.

   그 빛을 따라 작은 풀들도 점점 키를 키우고 제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겠지요. 바라보는 사람이야 있든 없든, 싹을 틔운 온갖 식물들은 제가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 햇살을 끌어들일 겁니다. 그렇게 여름 깊어져 이마에 땀방울이 솟아날 즈음이면 이 봄을 찬란하게 밝혔던 목련 꽃들이 다시 그리워질 겁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 그리움을 한 잎 두 잎 쌓아두는 일과 똑같습니다.

   목련 동산 한가운데에서 이 봄의 끝을 잡고 어느 누구보다 찬란하게 봄의 송가를 부르는 엘리자베스 목련의 싱그러운 자태.

   며칠 째 내리는 비가 마치 여름의 장맛비처럼 끊이지 않고 계속되네요. 먹구름 가득인 잿빛 하늘도 여름 장마철을 닮았습니다. 개화가 늦었다는 이야기는 봄이 늦게 찾아왔다는 이야기인데, 여름은 여느 때보다 더 빨리 찾아오려나 봅니다. 도무지 따라잡기 힘든 계절의 흐름을 우리 식물들이 어찌 견디려는지, 다시 또 모두의 안부가 걱정되는 아침입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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