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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풍경 너머의 풍경

한없이 맑고 푸르른 제주도 길 위의 곰솔을 찾아서

by 丹野 2011. 2. 17.

[나무를 찾아서] 한없이 맑고 푸르른 제주도 길 위의 곰솔을 찾아서

   산방산이 멀리 내다보이는 마늘 밭과 양배추 밭 풍경.

   [2011. 2. 21]

   사철 푸르른 제주도의 초록 길을 걸었습니다. ‘올레’라는 제주도 말로 부르는 길입니다. 가끔은 바쁘게 걸었지만, 대개는 ‘천천히’ 걸으며, 푸른 길 위에서 마주치게 될 큰 나무 한 그루에 대한 그리움을 한 꺼풀씩 풀어냈습니다. 한참을 걸으면 그 아름다운 나무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발걸음 무거워져도 마음은 초록의 싱그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어서 보고 싶은 그 나무 아니라 해도, 걸으며 지나치는 곳곳의 제주의 한적한 마을들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마을 가운데의 널따란 마당에, 혹은 마을 한 켠의 마을회관이나 경로당 앞 마당에서 사람을 지켜주는 멋진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젊은 나무라 불러야 할 나무들도 사람의 마을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향기를 머금고 푸르게 수천의 나뭇가지를 뻗어올렸습니다. 나무만 아름다운 건 아니었습니다. 동백은 물론이고, 수선화도 몇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자갈 밭 위에 저절로 형성된 깊은 숲, 곶자왈.

   앙증맞게 표시된 올레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만난 곶자왈은 참 특별한 숲입니다. ‘자왈’은 제주도 마을 분들께서 자갈과 같은 작은 돌을 뜻한다고 가르쳐 주셨는데, 사전에는 ‘덤불’을 뜻하는 제주 말이라고 합니다. ‘곶’은 숲을 뜻하는 말이고요. 사전에 어찌 됐든, 곶자왈은 제주도 분들의 이야기처럼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평지 숲입니다. 돌이 많은 땅이어서 사람이 살기 어려워 오래도록 방치해 둔 땅에 저절로 이루어진 덤불 숲이 바로 곶자왈입니다.

   곶자왈을 걷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풀로 이루어진 곶자왈은 깊은 숲이지만 대부분이 평평한 길로 이어집니다. 돌 바닥이 조금 불편할 수야 있겠지만,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서 걷기에는 더 없이 편안한 길이지요. 깊은 숲을 평탄한 오솔 길을 걸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제주도 외에 따로 없을 듯합니다. 별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햇살 들지 않아 눈이 채 녹지 않은 곶자왈의 작은 오솔길을 오래 편안하게 걸었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제주 올레길.

   푸른 숲 속의 오솔길과 함께 푸른 바다 옆으로 난 길도 산책에는 참 좋은 길입니다. 유행처럼 제주도 올레 길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까닭이 있는 겁니다. 끝없이 수평으로 펼쳐지는 풍경 안에 담기는 초록 빛 아름다움은 이 즈음 제주도 올레 길의 특별한 멋이지 싶습니다. 중부지방에 비하면 제주의 날씨는 따뜻한 편이지만, 바람만큼은 매우 찹니다. 지난 주 초, 제주의 시내버스에서 내려 행복한 걷기에 나섰던 고내 포구 길에서도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았습니다.

   거센 바람을 타고 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걷다보면 사진 장비가 들어있는 가방의 무게가 부담스러워집니다. ‘등짐도 정들면 내 등짝’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려놓고만 싶은 등짐입니다. 묵직한 사진 장비 없이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제게도 오기나 할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납니다. 발걸음이 버거워질 즈음, 제주의 명품 나무 가운데 하나인 수산리 곰솔이 길 모퉁이에서 나그네를 끌어안을 듯 반갑게 나섰습니다.

   수산봉 남쪽의 수산리 저수지 가장자리에 서있는 4백 살 짜리 곰솔.

   수산리 저수지 가장자리에 서있는 곰솔입니다. 4백 살의 오래된 나무입니다. 나이에 비하면 키는 그리 크지 않은 나무입니다. 기록에는 12.5미터로 돼 있습니다만, 실제로 나무 앞에 서서 보니, 그보다 작아 보입니다. 기록이 틀린 게 아니라, 전혀 늙어 보이지 않고, 싱그러운 젊음을 간직한 듯한 자태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수산리 곰솔의 가지펼침은 키의 두 배나 되는 24.5미터입니다. 조금 비스듬히 서서 물가로 가지를 넉넉히 드리웠습니다.

   역시 곰솔은 물과 어우러지는 풍경이 장관입니다. 소나무 종류의 나무 가운데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인 때문이겠지요. 이 수산리 저수지는 한 때 유원지로 이용되었던 모양입니다. 나무 반대편에는 유원지였던 시절에 왁자하게 번창했을 비교적 큼지막한 건물이 한 채 있지만, 지금은 건물 외벽으로 온갖 가지 덩굴식물과 푸른 이끼가 올라와 을씨년스러운 풍경입니다.

   올레 길 코스를 알리는 앙증맞은 안내 표지.

   걸어서 지나온 제주에서의 사흘은 행복했습니다. 제주의 ‘다음 커뮤니케이션’에서 일하는 제자를 만난 일도 그 행복을 더해 주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연을 맺은 제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아끼는 데에 비하면 길 안내가 허술하게 느껴져, 가끔씩 불필요한 헛걸음을 해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다시 걷고 싶어지는 늘 푸른 길임은 틀림없습니다.

   ※ 한 가지 알려드립니다. ※
   ‘솔숲의 나무 편지’와 함께 ‘솔숲의 나무 엽서’를 보내드리렵니다. 나무 엽서는 한 장의 사진과 짧은 글들로 전해드리는 짤막한 편지입니다. 예전에 흔히 쓰던 ‘그림 엽서’와 같은 형식이지요. 나무 편지 못지않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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