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헤겔 미학의 현재적 의미

by 丹野 2010. 10. 1.

 

 

 

 

"상징적 예술형식"의 해석을 통해서 본 헤겔 미학의 현재적 의미

 

 

I. 논의의 출발점

 

헤겔은 그의 베를린 미학강의에서 "예술의 종말"이란 논제를 주장했다. 이 논제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예술이 수행했던 - 그 가능성에 있어서 - 최고의 진리매개 기능이 근대에 와서는 더 이상 예술에 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근대에 와서 주관화된 정신은 예술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학에 의해 가장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제에 의하면 오늘날 예술이란 현상은 개념적 인식의 하위에 속하게 되고, 그 역할수행력이 부당하게 한정지워진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논제를 앞에 두고, 오늘날에 있어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며, 이 논제를 주장한 헤겔은 과연 근대에서의 예술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그리고 그의 미학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묻게 된다.

이러한 물음과 더불어, 또는 이러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철학적으로 예술을 규정하려는 자들은 부단히 헤겔미학을 그들의 예술규정과 이론의 기초로 삼으면서 헤겔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1) 그들은 자신의 이론에 보충으로 필요할만한 개념이나 이론을 헤겔미학에서 추출하여 그들의 이론에 접목시키면서 헤겔미학을 활성화시키고자 했다. 이러한 방향에서 헤겔미학을 활성화시키려고 하는 시도의 문제점과 한계는 그들의 이론정초에 차용된 헤겔의 개념이나 이론이 헤겔철학의 체계와 헤겔이 논의한 사유의 맥락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으로 헤겔미학을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당위성이 없으며, 헤겔미학을 본래의 헤겔사유에서 동떨어지게 할 뿐이다.

이와 다른 방향에서 헤겔미학을 활성화시키려고 했던 시도는 헤겔미학을 문화철학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이미 헤겔의 사후에 헤겔학파에게서 부터 행해져 왔다. 그들은 헤겔미학에서 예술의 역사적 기능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헤겔미학을 신칸트학파의 문화철학으로 발전시킨다.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헤겔체계의 독단론을 극복하고 헤겔미학의 현재적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도 역시 성공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신칸트학파의 문화철학에서와 헤겔미학에서의 예술규정이 근본적으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비록 신칸트학파의 문화철학에서 예술이란 문화를 상징하는 형식으로 규정되지만, 여기에서 예술은 비역사적인 (선험적) 주관성에 기초하는 것일 뿐임으로, 신칸트학파의 문화철학에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헤겔의 규정에 핵심이 되는 '역사성'이 논의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문화철학적 해석에 반발하면서 예술의 '역사성'을 헤겔미학 해석의 중심개념으로 하여 헤겔미학의 현재적 중요성을 밝히려는 시도들도 있다. 이러한 방향에서의 시도는 먼저, 예술의 역사성을 기초로 하여 철학적 미학을 정립하려고 한 H. 쿤(Kuhn)(2)에서와 E. 훗설(Husserl)의 현상학을 헤겔미학에서의 예술의 역사성을 서술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자들에게서 보여진다.(3) 이들의 한계는 자신의 이론을 수미일관하게 전개하지 못했다는 것, 또는 완성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예술의 종말론"과 체계적 종료성이 헤겔미학을 해석하는 데에 가장 난점이 되고 있는 까닭은 지금까지의 헤겔미학 해석이 헤겔의 제자인 H. G. 호토(Hotho)가 헤겔의 사후, 1835년에 출간한 헤겔미학판(5)을 원전으로 삼기 때문이다.

호토는 헤겔미학을 출간하기 위해, 헤겔이 베를린에서 1820/21, 1823, 1825, 1828/29년에 강의한 강의원고와 학생들의 강의필기노트들을 편집의 자료로 이용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자료로써 헤겔의 미학강의를 편집할 때, 헤겔의 의도와는 달리, 헤겔의 다른 저서들처럼 미학 역시도 변증법적 논리에 따른, 완결된 체계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또 헤겔미학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라고 생각했다. (6)

호토는 이러한 과제를 성취하는 데에 난관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변증법적 논리구조에 따르려면 헤겔미학에서 예술은 마지막 단계인 낭만적 예술형식에서 가장 발전하고 완성되어야 된다. 그러나 헤겔은 예술의 가장 조화로운 형식과 최고의 역사적 기능이 그리스 고전예술에서 도달되었고, 그 이후의 시대에는 뷸가능하다는 것, 즉 "예술의 과거성"(7)을 명확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호토는 그리스에서 예술이 형식적, 기능적 측면에서 정점에 도달했다는 헤겔의 주장과 변증법적 논리구조에 의하면 낭만적 예술형식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예술의 완성이란 모순을 해소할 수 없었다. 그는 헤겔미학을 편집하면서 "예술의 종말론",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술의 과거성" 이론을 부득히 택스트에 삽입했지만, 이 이론을 논리정련하게 따르지 않았다. 그대신 그는 그리스 예술형식과 마찬가지로 낭만적 예술형식에도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헤겔미학의 원전으로 간주되어져온 호토판 《헤겔미학》은 한편으로는 "예술의 종말"이란 논제가 내포하고 있는 헤겔의 그리스 고전예술 중심사상에 가해지는 "고전주의 비난"의 문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이 "예술의 종말론"과 병행하여 행해지는 (기독교적) 낭만주의 예술에 대한 높은 가치부여라는 모순적 논리구조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 헤겔미학을 해석하거나, 활성화시키려는 시도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호토판 헤겔미학이 이러한 문제들로써 지금까지의 헤겔미학 해석과 활성화 시도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헤겔의 베를린 미학 강의필기노트들이 하나, 둘씩 발견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8) 이 새로운 헤겔미학 해석원천은 헤겔이 베를린 미학강의에서 호토판 《헤겔미학》에서와는 다른 맥락에서 예술의 의미에 대해 논의하며, 다른 관점에서 그 역할규정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논의한 예술규정은 "예술의 종말" 내지는 "예술의 과거성" 이론과 예술의 현재적 의미이란 표면상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사실이 모순되지 않고 병립될 수 있는 것으로 논증할 수 있게 한다.

이 논증의 가능성은 무엇보다도 헤겔이 베를린 미학강의에서 논의한 것을 근거로 하는 "상징적 예술형식"의 새로운 규정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에서는 먼저 헤겔의 베를린 미학강의에서 논의되는 "상징적 예술형식"의 특성과 새로운 규정을 상론하고, 이 규정이 어떻게 "예술의 종말론"과 예술의 현재적 의미를 모순없이 동시에 주장할 수 있게 하는지, 또한 나아가서는 어떻게 헤겔미학이 "예술의 종말론"에도 불구하고 현재적 의미를 보유하는지를 밝혀 본다.

II. "상징적 예술형식"의 새로운 규정과 그 근거

"비예술"로서의 "전예술(Vorkunst)"?

헤겔은 미학강의에서 예술을 내용과 형식의 관련방식에 따라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예술형식이란 세가지 예술형식으로 나눈다. 이 세 예술형식은 그가 정신이 발전, 현상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역사의 세 시기, 즉 고대 동양의 세계, 그리스 고전시대, 중세 이례의 근대에 상응되어진다.

헤겔이 의미하는 예술의 내용은 "정신"이다. 그에게 있어서 정신은 "실체(Substanz)"에서 "주관(Subjekt)"으로 운동해 나가며, 스스로를 구체화하려는 본질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철학에서는 "의식" 내지는 "개념", 그리고 정신을 진리, 참된 것과 동일시하고 이를 신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종교에서는 "신적 이념"이란 각각 다른 용어로 사용된다.

예술도 근본적으로 정신을 내용으로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정신은 진리에 대한 한 민족의 종교적 표상, 즉 신적 이념의 형태에서 예술의 내용이 된다. 이 신적 이념은 다름 아닌 신에 대한, 또는 진리에 대한 인간의 의식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서 이 신적 이념도 변하게 된다.

헤겔은 신에 대한 의식, 신적 이념이 아직 추상적이고, 그 이념에 주관성보다 실체성이 더 지배적인 역사적 시기를 고대 동양에서 본다. 이 시기에서 신은 자연적 힘과 위력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추상적인 신적 이념은 자신을 구체화하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이를 찾지 못하고 다만 거대하고, 다수적인 형태들을 통해서 표현된다. 헤겔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념이 표현된 예술을 "상징적 예술형식"이라고 칭한다.

신적 이념은 다음의 역사단계, 즉 고대 그리스에서는 실체성에서 주관성으로 한층 더 나아간다. 이 이념은 여전히 자연물을 통해 구체화되지만, 자연물 중에서도 인간의 형태을 통해 구체화된다. 인간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자연물이지만, 동시에 정신적인 존재이므로 보다 주관화된, 정신화된 이념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이 된다. 헤겔은 이렇게 이념을 이에 적합한 형식으로 나타낸 예술을 "고전적 예술형식"이라고 규정한다.

근대에 이르러서 이념은 더욱 주관화되어간다. 이념은 내면화되면서 자기 내부로만 침잠하여, 마침내 외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다. 이러한 이념은 자신의 주관화된 정신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을 외부에서 찾지 못한다. 이념과 형태가 이렇게 양분되어 이루어지는 예술을 헤겔은 "낭만적 예술형식"이라고 규정하고, 이념과 형태의 분리과정에 따라 낭만적 예술형식 내에서도 여러 발전단계를 구분한다.

이렇게 나눠지는 예술의 삼형식 중, "상징적 예술형식"은 지금까지 헤겔미학에 관한 연구에서 거의 주목울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연구가 자료로 삼아온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은 아무런 고찰의 가치가 없는 듯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호토판을 근거로 하여 재편집한 헤겔미학에도 상징적 예술형식은 예술적 측면에서 부정적으로만 특성지워져 있다. 심지어 M. 부브너가 재편집하여 발간한 《헤겔미학》에는 상징적 예술형식 부분이 완전히 빠져 있다. 부브너는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에 아무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헤겔미학 편집에서 이 부분을 쏭두리째 빼버린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9)

헤겔은 상징적 예술형식을 "전예술(Vorkunst)"로 규정한다. 이 규정은 호토판 헤겔미학과 강의필기노트 모두에서 보인다. 그러나 "전예술"이라는 규정은 이 두 자료에서 각각 다른 문맥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먼저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을 규정하는 "전예술"은 "비예술"과 동일한의미로 해석된다. 호토는 헤겔이 그리스 예술과 기독교 예술만 진정한 예술로 보고, 고대 동방의 상징적 예술은 아직 예술이 아닌 것으로 간주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호토의 생각은 호토 자신의 예술규정과 그 척도에 기준을 둔 것이다.

호토는 헤겔의 제자이지만 그가 실재로 발전시킨 예술이론은 오히려 쉘링과 후기낭만주의에 근거를 둔다. 즉 호토는 모든 예술을 '평가하려고' 하며, 특히 '미적 가치'에 따라 평가한다. 이 평가의 준거가 되는 것은 그리스 예술에서 정점에 달한 "미"와 기독교적인 내용이다.

호토는 이러한 그의 예술평가와 예술평가 기준을 헤겔미학을 편집할 때도 적용한다. "미"나, 기독교적 내용을 가진 예술만이 가치있는, 참다운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상징적 예술형식은 예술이 아닌 것으로 된다. 호토에게는 다만 그리스 예술과 기독교 예술만이 예술이며, 이 외의 다른 예술들은 비판적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그가 발간한 《헤겔미학》에서 "전예술"로 규정되는 상징적 예술형식의 예술들은 예술이 아닌 것, 비예술로 서술될 뿐이다.

이러한 서술에 대한 구체적인 예룰 들면,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특성은 이념의 "비순수성", 또는 "무이념성"이란 술어들로 표현된다.(10) 이러한 술어들은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이다. 이 술어들은 호토가 상징적 예술형식을 정신이 결여된 하위의 예술로 규정하기 위해 도입한 술어들이다. 헤겔에 있어서 예술이란 정신, 또는 이념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구체화하려는 정신의 산물로 규정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상징적 예술형식도 정신의 산물이며, 또한 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발전한 이념을 내용으로 함으로 "무이념적"이 아니다.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언급한 "전예술"이란 규정은 호토가 사용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헤겔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단지 상징적 예술형식을 그리스 예술, 고전적 예술형식과 '구조적으로' 구분을 하기 위해서였다. 즉 이 용어는 어떠한 미적 평가, 또는 내용적 가치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리스의 고전적 예술형식에서와는 다른 내용과 형식의 관계양상을 표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러므로 미학강의에서 언급된 "전예술"이란 상징적 예술형식이 미를 위한 '형식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이념과 형태가 '조화'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뿐만 아니라, 헤겔이 상징적 예술형식을 고찰하는 관점은 호토와는 완전히 다르다. 헤겔은 근본적으로 예술의 의미를 역사와의 연관에서 찾으며, 이와 더불어 '세 예술형식은 모두 내용적으로는 다를지나, 구조적으로는 동일한 역사적 기능을 가진다'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전제에서 헤겔은 다른 예술형식들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예술형식을 중요시 여긴다.

헤겔은 상징적 예술형식에서 하나의 특정한 역사적 시기, 즉 고대동양에서 구체화되었던 (역사적) 이념의(11) '형태'를 본다. 따라서 헤겔에 있어서 상징 예술형식은 - 다른 예술형식과 마찬가지로 - 한 역사적 시대에 제약되었던 정신, 또는 이념의 구체적인 현상방식, 하나의 특수한 표현방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은 1820/21년 겨울학기 미학강의에서는 상징적 예술형식의 예술들이 고대동양이란 세계에서 수행했던 역사적 역할을 논구한다. 그리고 이 논의를 토대로 하여 그 다음의 미학강의, 1823년 여름학기 미학강의에서는 상징적 예술형식에서 가능했던 당시 예술의 고유한 역할을 규명한다. 여기서 규명되는 고대동방에서의 예술의 역할은 그리스시대 때 예술이 수행했던 것과 내용적으로는 다르지만, 구조적으로는 동일한 것이 된다.(12)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은 "전예술"이라는 용어 이외에도 "일그러진(biza rr)", "농담과 같은(scherzhaft)", 그리고 "기괴한(grotesk)" 등과 같은 형용사들로 서술된다. 이러한 형용사들은 특히 인도예술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된다. 인도예술을 서술하는 데에도 호토는 자신의 미적 내지는 예술판단의 기준을 적용한다.

인도예술에서 보이는 여러개의 머리를 가진 신상과 수천의 팔을 가진 시바여신상의 모습, 또한 신적인 것을 괴기하게 표현한 형상들은 사실 지금의, 그리고 그 문화에 속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호토는 이러한 형상들을 단지 미적으로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가치가 없는 예술로 규정한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형상들을 호토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헤겔은 우선 이러한 역사적인 예술에서 보이는 형상들은 지급의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이해되지 않음을 명시하고, 이러한 형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성적' 고찰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형상들을 반성적으로 고찰할 때 헤겔이 중요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 형상들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러한 형상들로 표현되어진 정신적 이념이며, 그 당시 민족들의 역사적인 의식이다. 나아가 그러한 형상들이 그 당시의 민족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해명해내는 것이 헤겔의 관심사이다.(13) 그러므로 미학강의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은 정신-문화사적 측면에서 고전적 예술형식과 낭만적 예술형식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예술형식으로 파악된다.

이와 달리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은 미적으로 아름답지도 않으며, 내용적으로도 기독교적인 것이 않음으로 고전적 예술형식과 낭만적 예술형식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예술형식으로만 특성지워진다. 상징적 예술형식이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이렇게 가치가 하락되어 서술되는 이유는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호토가 미와 기독교적 내용을 준거로 하는 자신의 예술판정을 헤겔미학 편집에도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예술형식의 변증법적 체계?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이러한 가치하락적인 평가와 서술에는 또 하나의 다른 이유가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호토가 헤겔미학을 변증법적 체계에 맞추어 하나의 통일된, 완결된 체계로 편집하려고 한 것이다. 호토는 헤겔이 예술, 종교, 철학을 절대정신의 세 영역으로 나누었던 것을 기초로 하여, 예술, 종교, 철학을 인식의 완전도에 따라 서열화하여 변증법적으로 체계화한다. 이 체계에 따르면 가장 완전한 인식은 철학에서 가능하며, 철학은 계몽된 근대인의 의식에 유일하게 적합한 인식방법이 된다.

호토는 또한 예술 자체에도 이러한 변증법적 방법을 적용하여서 상징적 예술형식, 고전적 예술형식, 낭만적 예술형식을 가치서열적으로 체계화한다. 호토는 세 예술형식들을 이 체계에 맞추어 특성짓기 위해, 상징적 예술형식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 예술형식에다 가장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낭만적 예술형식에는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이러한 의도에서 "미"를 고전적 예술의 속성으로만 보지 않고, 낭만적 예술형식에서도 찾는다. 더구나 낭만적 예술 중에도 호토는 르네상스의 종교화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데, 그 이유는 르네상스 예술이 한편으로는 기독교적 내용을 갖는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의 부활이라고 보기 때문이다.(14)

이렇게 절대정신의 세 영역을 서열에 맞춰 변증법적으로 체계화하고, 미학에서 예술형식들도 이러한 체계에 따라 서술하면서 헤겔미학의 활성화하려고 했던 호토는 스스로 자신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절대정신의 세 영역 가운데 철학만이 근대세계에 적합한 인식방법이라고 규정된다면, 예술과 종교는 근대세계에서 존립할 수 있는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이것은 낭만적 (기독교적) 예술형식에서 예술의 - 호토에게는 기독교적이라는 이유에서 - 더 높은 발전과, 이로써 근대에 있어서의 헤겔미학의 생동성을 제시하려고 했던 호토의 시도와 반대되기 때문이다.

헤겔도 그의《피히테과 쉘링의 철학체계의 차이》(1802)라는 논편에서 절대정신을 표현하는 세가지 방식으로서 예술과 종교, 철학을 구분한다. 예술에는 신적 이념을 표현함에 있어서의 "객관성"을, 종교에는 "주관성"을, 철학에는 앞의 두 방식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보유하는 "사변성"이 강조된다.(15) 헤겔은 이를 기초로 하여 《엔찌클로페디아》(초판 1817, 제 2판 1827, 제 3판 1830)에서도 예술, 종교, 철학을 절대자가 현시되는 세 영역으로 규정하고, 이 세 영역의 순위를 확고히 한다. 그러나 여기서 순위를 둘 때 헤겔이 기준으로 삼은 것은 - 호토가 한 것 처럼 - 인식의 완전성의 정도가 아니라, 다만 특정한 역사적 형태의 이념이 어느 정도로 명료하게 현시되는지에 따른, 이념의 명료성의 정도이다.

더구나 미학강의에서는 이 세 영역의 서열적 순위보다는 공통점이 더 강조된다. 여기서 헤겔은 예술, 종교, 철학, "이 세 방식 모두에는" 유한한 정신과 절대적 진리의 관계를 나타낸다는 것이 공통적이라고 하고, "이들은 단지〔표현의〕형식에 의해서 구분될 뿐"임을 강조한다.(16)

이와 마찬가지로 헤겔은 예술형식들을 "미"나, 기독교적 "내용"을 기준으로 하는 도식적인 변증법적 체계에 맞추어 구분하지 않았다.(17) 그에게 있어서 세 예술형식은 진리, 신적 이념에 대한 인류의 의식을 반영하며, 동시에 인류의 역사적 자기의식이 형성되는 것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동동하다.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의 규정도 이러한 정신사적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다. 정신사적 관점에서 보면, 상징적 예술형식은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보이듯, 단순히 '아름답지 않은', '이념이 빠진', '내용이 공허한' 예술형식으로 특성지워지지 않고, 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한정되어 가능했던 이념을 표현한 하나의 특수한 표현방식으로서 규정된다.

"미"의 대립으로서의 "숭고(Erhabenheit)"?

새로운 헤겔미학 해석원천을 근거로 하면 상징적 예술형식은 이처럼 더 이상 종례의 연구에서와 같이 그리스 고전예술의 범주인 "미"란 척도에 의해 그 가치를 평가받거나, 고찰하기에 무의미한 것으로 단정지워지지 않는다. 헤겔은 이러한 상징적 예술형식에 고유한 미학적 범주를 부여한다. 그것은 "숭고(Erhabenheit)"라는 범주이다.

헤겔이 정의하는 숭고란 예술의 내용인 이념과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부조화의 관계에서 보여지는 숭고의 특성은 칸트나, 쉴러가 정의하는 "숭고"와는 달리, 이성이념 자체의 무한성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고, 고대동양정신에서 아직까지 자연적으로 머물고 있는 정신을 표현하려는 형식의 무한계성, 부적합성에 놓여 있다. 특히 칸트가 정의하는 숭고가 자연의 위대한 현상을 통해 이성이념의 무한성을 유비적으로 느낄 때 인식주관에 일어나는 감정상태의 특성을 가르키는 것이라면(18), 헤겔이 말하는 숭고는 인식주관의 심정과는 무관한, 형식과 내용의 관계양상에만 관계한다.

헤겔이 이러한 의미로 상징적 예술형식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숭고는 "미"와 상반되지 않는다. 고전적, 그리고 상징적 예술형식의 고유한 미학적 범주로 적용되는 "미"나 "숭고"는 미적 가치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지 내용과 형식의 관계양상에 의해 구분되는 미적 범주들이다. 미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관계를, 숭고는 이 양자의 부적합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19)

호토판 《헤겔미학》에도 상징적 예술형식의 특성은 "숭고"라고 규정된다. 하지만 그것은 아름다운 그리스 고전예술에 대립되는 범주로 의미된다. 즉 호토가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특성으로 사용하는 숭고는 "미"의 척도를 기준으로 한 미적 판단에 의거할 때 미적으로 가치가 결여된 예술의 특성을 대표하는 범주로 이해된다. 숭고에 대한 이러한 호의 '해석'은 그가 "이념상(das Ideal)"을 "미"와 동일시 하는 데에 기인한다.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의미하는 "이념상"이란 먼저 이념의 구체적인 상을 말한다. 그는 이것을 "이념의 현존재(Dasein der Idee)", 또는 "실재(Existenz)"라고 표현한다.(20) 그러므로 이 이념상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 그리고 호토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하듯, 그리스 예술에서 이루어진 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념상은 이념의 구체적인 형태로서,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결합되는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시말해 이념상은 역사적으로 상징적, 고전적, 낭만적 예술형식, 세 예술형식 모두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으로, 각 각 "숭고", "미", "특성적인 것"이란 특징을 가진 형태들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헤게이 그리스 예술의 특성을 "미"라고 규정할 때, "미"란 단지 내용과 형식의 조화로운 결합을 의미할 뿐, 미적 가치판단에 의한 규정이 아니다. 미는 숭고와 마찬가지로 이념상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념상을 이렇게 해석하면, 상징적 예술형식은 호토판 《헤겔미학》을 근거로 한 종례의 헤겔미학 해석에서와는 달리 규정된다. 상징적 예술형식은 이념상, 즉 미가 결여된, 그리하여 고찰해 볼 중요성이 없는 예술형식이 아니라, 고대동방에서 실현되었던 이념상의 역사적 형태를 보여주는 예술형식으로서, 호토가 미적 가치를 부여하는 고전적 예술형식 및 낭만적 예술형식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하나의 역사적 예술형식이된다.

III.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상징적 예술형식"

헤겔미학의 새로운 해석원천, 즉 네차례에 걸친 베를린 미학강의를 받아써 놓은 학생들의 강의필기원고들은 단지 호토판 《헤겔미학》에 섞여있는 호토의 시각에 의한 규정들을 수정함으로써 상징적 예술형식을 새로이 규정할 수 있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강의필기노트들은 상징적 예술형식에 관한 헤겔사유의 발전과 수정, 그리고 그 맥락들을 알 수 있게 한다. 새로이 밝혀지는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상징적 예술형식의 규정은 지금까지의 연구에서 보여지는 규정들과 전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상징적 예술형식이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에 대한 헤겔의 규정에 중요한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네차례의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상징적 예술형식을 매번 다른 측면에서 규정했다. 먼저 1820/21년 겨울학기 강의에서 헤겔은 이미 《정신현상학》(1807)의 예술종교편에서 기초를 잡아놓은 동양의 종교적 세계관과 예술형식을 근간으로 하여 상징적 예술형식의 체계적 구조를 세우는데 몰두한다. 두번째 강의인 1823년 여름강의에서 헤겔은 상징적 예술형식을 서술함에 있어서 고전적 예술형식과 내용적으로는 다를지나, 구조적으로는 동일할, 고대동양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예술들이 행하였던 역사적 역할들을 규정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 규정은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앞의 두 강의에서는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내재적인 규정이 이루어졌다면, 마지막 두 강의에서 헤겔은 근대에 있어서의 예술의 의미와 가능할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상징적 예술형식을 재파악한다. 앞서 결론을 말한다면, 그는 마지막 두 강의에서 근대 (낭만적) 예술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요소들을 상징적 예술형식에서 찾아내고, 이 요소들을 근대 예술에서 확장시키고, 재활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면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의미을 밝힌다.

"형식적 도야(formelle Bildung)"의 매체로서 예술

미학강의에서 예술을 논의하는 헤겔의 기본관점은 정신철학적, 또는 역사철학적 관점이다. 그리고 그의 기본전제는 '예술은 각 역사적 및 문화적 시기에 구조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갖는다'는 것이다. 헤겔이 두번째 미학강의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면, 1826년의 세번째 미학강의에서는 낭만적 예술형식, 특히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규정해 보려고 했다.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기능에 대한 헤겔의 물음은 "예술의 종말" 내지는 "예술의 과거성"이란 논제와 무관하지 않다. 즉 이 물음은 예술의 종말 이후인 근대에서는 예술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선 고대 그리스의 경우를 보면, 그리스에서 신화는 호머와 헤지오드가 그리스인들에게 만들어준 것으로서,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진리관이었다. 그리스 예술 - 특히 조각 - 은 그러한 신화를 직관의 형식으로 가시화함으로써 그리스인들에게 진리를 직접 매개하는 역할을 했었다. 헤겔은 이 당시에 예술이 행한 역할을 역사상 예술이 할 수 있었던 최대의 역할이라고 본다.

고대 그리스시대에서 예술의 그러한 - 직접적인 진리매개의 - 역할이 가능했던 것은 그 당시의 보편적 세계상태와 관련된다. 헤겔은 그 시대의 세계상태를 "영웅시대(Heroenzeit)"라고 명한다. 이 세계상태의 특성은 개인과 세계, 개별자과 보편자가 일치한다는 것, 그래서 이들 양 대립적 요소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총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헤겔은 세계 속의 개인을 이념의 구체적인 상인 "이념상"을 현실화하는 매체로 보는데, 이 시대에 개인(영웅)을 통해 현실화되는 이념상은 어떠한 현실적 제약도 없이 세계의 총체성을 보유한다. 또한 개인의 행동은 개별적, 주관적이지만 않고, 그 자체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니며, 진리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그러한 개인(영웅)들과 신들의 행동을 내용으로 하는 그리스 예술에는 이념상이 보편적이며, 진리 자체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겔은 그 가능성에 있어서 예술의 최대의 역할은 그리스 시대 때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는 그와 같은 예술의 역할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러나 헤겔이 근대에서 예술은 의미가 없다거나, 아무런 역할하지 못한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근대에서는 예술의 의미와 역할이 '한정되었다'고 할 뿐이다.

근대에서 예술의 의미와 역할이 한정된 이유는 먼저, 예술이 - 질료적 한정성 때문에 - 주관화된 정신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예술의 내용이 되는 종교적 세계관의 측면에서도, 근대에서는 그리스 신화처럼 어느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이 보편적 진리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노동이 분화된 근대에는 개인의 행동이 제한이 되어, 개인 자체가 전체가 되거나, 보편적일 수 없으며, 또한 하나의 개인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문화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특수할 수 밖에 없음으로, 이러한 개인, 또는 개인의 행동을 통해 현실화되는 "이념상"도 보편성이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Partikularitat)"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21)

이러한 이유들에서 헤겔은 근대에서 예술의 의미와 역할은 "부분적일(partial)"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헤겔은 1826년 미학강의에서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숙고하면서, 근대 예술의 - 진리매개에 있어서의 -"단편성(Partialitat)"과 이념상의 "특수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규정에 대한 긍정적인 논의단초로 삼는다.

헤겔의 논의에 따르면, 근대에서 예술은 그것이 매개하는 진리내용이 단편적이고, 한정적일 수 밖에 없음으로, 가능한 한 여러 종교적 세계관과 여러 민족의 삶의 형태와 행동방식들을 매개해야 된다. 더구나 그 대상범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현재나 한 민족의 문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즉 근대에서 예술은 하나의 특정한 (종교적) 세계관을 우리의 행동의 기준을 보장해 주는 유일한, 보편적 진리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능할 진리의 여러 형태들을 제의할 뿐이다.

근대에서의 이러한 예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헤겔의 규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가 《법철학》과 《역사철학강의》에서 종국적으로 발전시킨(22) "형식적 도야"란 구상이다.(23)

"형식적 도야"란 "보편성에 이르도록 하는 도야(Bildung zur Allgemeinheit)"를 말한다.(24) 여기서 보편성이라 함은 헤겔의 다른 철학에서 보이는 완전한 자유나, 인륜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형식적 보편성"으로서, 단지 모든 특수한 것들을 수렴하는 보편적 사유의 틀을 뜻한다.

헤겔은 "형식적 도야"를 근대국가에서의 교육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보며, 이 도야는 예술, 종교, 철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형식적 도야"가 근대국가에서의 교육에 본질이 되는 이유는 계몽된 근대인의 의식에서 어떠한 진리내용도 단편성을 탈피하지 못함으로 그 특수성을 전제로 하여 개별적 삶의 상황과 조건에 맞추어 비판적으로 검증되어 반아들여져야 되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에서의 삶"(Staatsleben)이 모든 특수성을 포괄하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형식적 도야"의 특성은 한편으로는 진리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내용적 도야'와 달리, 전수되는 내용, 나아가서는 역사와 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의식향상을 목표로 하는 "비판적 의식형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한 한 역사와 여러 문화들의 특수성들과 부딪혀서 그 특수성들을 하나의 (형식적) 보편성에 수렴시키는 것이다.

"형식적 도야"는 세 실제적인 계기를 가진다. 첫째는 한 대상을 다른 대상들과 "구분하기(Unterscheiden)"이다. 이것은 한 대상을 다른 것과의 관계에서 규정하고,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대상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둘째 계기는 "자기 내로 들어가기(Insichgehen)"이다. 이것은 자신의 밖에 놓인 대상을 인식한 후 "대상성을 고려한 자신의 규정"으로, "내면성"으로 되돌아 가는 계기이다. 세번째 계기는 "하나의 특정한 것에서 빨리 다른 곳으로 나아가기"인데, 이것은 "정신의 움직임"을 장려하는 것이다. 이 능력은 "흥미로운 규정들과 대상들의 다양성"에 의해 자극된다. 이러한 계기들을 가짐으로써 "형식적 도야"는 근대인의 생활에 필수적인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25)

"형식적 도야"에 대한 구상은 헤겔이 미학강의에서 규정한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와 역할을 한층 명확하게 한다. 즉 근대에서 예술은 "형식적 도야"의 매체가 된다. 이러한 매체로서 예술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어느 특정한 시대와 공간에 한정되지 않는 채, 단편적인 진리내용들일 여러 (종교적) 세계관과 다양한 이념의 특수성들을 제시하고,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예술에 의해 행해지는 "형식적 도야"는 "역사 및 문화적 도야"가 된다. 헤겔은 근대에서의 예술을 이러한 측면에서 규정하면서, 역사적으로 과거의, 그리고 이질적 문화의 예술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함께 밝힌다.

"형식적 도야"란 테두리에서 보면, 과거의 예술은 "역사적 도야"를 위한 소재가 된다. 과거의 정신의 산물들을 소재로 하는 "역사적 도야"는 우리로 하여금 정신의 역사적 발전의 자취와 그 발전의 내적 필연성을 알게 하고, 역사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통해서 현재를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게 한다. 그리고 이질적 문화의 예술들을 소재로 하는 "문화적 도야"는 저마다 다른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투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의 동화의 산물인 여러 상이한 문화에서 신적 이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이해되었는지를, 또한 이념상이 어떠한 형태로 현실화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세계를,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게 하는 것이 된다.

헤겔은 역사적 소재를 잘 활용한 근대의 모범적 예술작픔으로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예로 든다. 그는 세익스피어가 영국의 역사에서 소재를 취하여 그것을 근대적 상황과 동떨어지지 않게 적절히 가공하되, 역사적 소재 자체도 본질을 손상하지 않는 방식으로 다루었다는 것에 중요성 부여한다.(26)

더구나 상징적 예술형식과 관련해서는 세익스피어가 상징적 예술형식의 요소인 수사법들 - 헤겔은 이를 "의식적 상징론"이라고 명한다 -, 그 중 특히 "직유", "은유" - 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말해진다. 여기서의 세익스피어 작품의 중요성은 단지 그가 상징적 예술형식의 요소들을 재활용했다는 것이 아니다. 헤겔이 보는 "직유"나 "은유"의 중요한 효과는 시적 반복을 통해 의식이 대상에 머물게 되면서 우리는 자신의 주관적, 직접적인 감정에 대해 거리를 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질적인 문화적 요소와 세계관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으로서는 괴테의 《서동시집》이 예로 제시된다. 헤겔은 이 시집의 중요성을 두가지 측면에서 논의한다. 하나는 - 아래에서 상술될 것이듯 - 괴테가 서구인들에 결여되어 있는 동양정신의 "실체성"을 서구인들에게 매개해주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시적으로" 아주 훌륭하게 행해냈다는 것이다.

1826년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이러한 맥락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을 특성짓는다. 상징적 예술형식은 "형식적 도야"란 논의의 틀에서, 무엇보다도 -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 근대 예술에 가능할 소재의 근원으로서 중요성을 갖게 된다. 이 강의에서 상징적 예술형식과 동양에 대한 헤겔의 관심은 최고조를 이룬다.

그러나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의 관심은 이러한 이유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동양의 종교적 세계관을 탐구하면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내용적 특성을 재발견하고, 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주관적 주관성"의 극복

헤겔은 동양의 세계관의 특성을 범신론에서 찾는다. 헤겔이 의미하는 "범신론"이란 일반적으로 오해되기 쉬운 "다신론", 또는 "모든 것이 신"이라는 것이 아니다. 헤겔은 범신론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이것과 자신의 개념규정을 구분한다.(27) 그의 규정에 따르면 범신론은 하나의 신, "일자(das Eine)"를 절대적, 무한적 존재로 상정하고, 만유에 그 신적 본질이 내재해 있다고 보는 종교적 세계관이다.

헤겔이 이 범신론에서 주목한 것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관계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한자와 무한자가 어떻게 규정되고, 또 양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통일되느냐 하는 것이다.

헤겔은 인도종교에서도 범신론적인 특성을 보지만(28), 범신론의 보다 본질적인 특성을 신페르시아의 모하멧교에서 추출한다. 그는 모하멧교에서(29) 보이는 범신론을 인도의 범신론과 구분하는 의미에서 "신범신론(Neupantheismus)"이라고 부른다.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모하멧교의 "일자(das Eine)"를 "실체(Substanz)"란 용어로써 규정하면서, 이 실체를 "모든 것을 지배하는"(30) 동시에 "모든 것이 그것에 내재하는"(31) 것으로 설명한다. 즉 실체는 모든 유한적인 것에 내재하는 본질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체의 규정은 헤겔이 신범신론에서 실체와 유한한 대상들이 통일을 이루게 되는 가능성과 방식을 논의하는 근거가 된다.

헤겔이 신범신론에서 보이는 '일자 내지 실체와 유한적인 것의 통일'의 근본특성으로 논의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통일에서 자연대상물들은 일자 내지는 실체가 그것들에 내재함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자신의 고유한 영광"으로 고양되며, 고무된다는 것이다.(32) 헤겔은 이러한 신범신론에서 보이는 유한한 것에 대한 신적인 것의 관계가 동양의 시에도 본질적인 기초가 된다고 본다.

동양의 시를 분석할 때 헤겔의 관심사는 실체와 유한적인 것, 또는 일자와 "모든 것(das Alle)" 간의 관계 뿐만 아니라, 시인의 주관적 느낌과 시의 내용 간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헤겔은 동양의 시인의 정신을 이러한 일자, 또는 실체에 대한 이러한 범신론적 관계에서 규명한다.

실체와 범신론적인 관계에 있는 동양의 시인은 그가 실체, 일자를 자신의 본질로 하기 때문에, 실체에 대해 노예상태에 있거나, 종속적이지 않고, 유한자인 채로 자신의 "독립성"을 보유하면서 실체와 "긍정적인(affirmativ) 관계"에 있게 된다. 헤겔은 동양의 시인이 이렇게 실체와 긍정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실체적이며, 자유롭고, 자립적이며, 위대하다"라고 특성짓는다.(33)

나아가 동양의 시인은 자신이 일자와 이러한 긍정적 관계에 있듯, 세계와 사물과도 "긍정적 관계"를 형성하고, 그것과 동화된다. 헤겔은 이러한 모하멧교의 신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진 시인의 특성을 동양시인과 동양인들의 일반적 특성으로 간주한다. 이와 함께 그는 동양인들의 정신은 "내면에 자유로운 실체성, 무근심성을 보유하는", 그리고 또한 대상들에 있어서도 긍정적으로 임하는", "자기 내에서 독립적인 정신"이라고 규정한다.

동양시인 및 동양인들의 정신에 대한 헤겔의 특성규정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동양인들이 일자, 또는 실체와의 이러한 긍정적 통일관계에서 자신의 정신의 독립성과 무근심성을 보유하기 때문에, 이들이 일자와의 관계에서든, 자연적 대상과의 관계에서든 "만족스러워(befriedigt)" 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 "만족스러워" 함에서 동양인들의 "유괘하고, 지극히 행복스러운 친밀성"의 성격이 자라난다고 본다.(34)

헤겔은 동양인들의 이러한 친밀성을 "자유로운 친밀성", "최고의 실체성"이라 명하고, "유괘함(Heiterkeit)"을 이 친밀성의 본질적 특성으로 규정한다. 여기서의 "유괘함"은 주관적 내면성이 대상세계와 합일하고 있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에, 그는 이 유괘함을 "객관적"이라고 특성짓는다. 헤겔은 이러한 동양정신의 특성을 그의 낭만주의 비판에서 더욱 중요하게 평가한다.

헤겔의 낭만주의 비판은 - 이미《정신현상학》에서 보이듯 - 낭만주의에서 "주관성"이 그 내면성 속으로 침잠하고, 자기의식적 주관성이 됨으로써 정신의 발전이 "실체적 삶"을 넘어간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적 내면성이 세계와의 연관성을 상실하고서 무세계적이 된 것에 초점을 둔다.(35)

사실 주관성 자체는 의식의 최고 형식이며, 낭만적 예술의 원리가 된다. 헤겔이 비판하는 것은 이 주관성 자체가 아니라, 주관성의 "결점", "실재상실", "참된 객관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무능함"이다.(36) 다시말해 헤겔은 주관성의 세 규정과 이에 따르는 낭만적 기본태도를 비판하는데, 그것은 첫째 "무실체적인 주관성으로서의 아이러니", 둘째 "악주관성(schlechte Subjektivitat)", 셋째 세계와 "비화합적인 주관성"이다.(37)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근대의 주관성의 이러한 무실체성, 무세계성, 무객관성을 넘어서 객관적인 것과 새로이 화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서 그는 근대 정신은 자신의 대상들과의 참된 화합 내지는 통일에 의해 가능한 "유쾌함"을 보유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아울러 헤겔은 정신의 이러한 "유쾌함"이 예술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26년의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주관성의 객관화와 "유쾌함"을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하며, 그 가능성을 범신론적 동양정신의 특성, 즉 "실체성"과 이 "실체성(Substantialitat)"에 근거한 세계와 사물에 대한 동양인의 "유괘함(Heiterkeit)"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헤겔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서구의 근대와 동떨어진 동양정신의 객관성이나 친밀성, 유쾌함이 근대 서구에서 단순히 반복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는 이러한 동양정신의 특성이 서구인들의 주관적 내면성에 대한 하나의 양자택일일 수 있기 위해서는 시적인 매개에 의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에서 헤겔은 1826년 미학강의에서 괴테의 《서동시집》을 상징적 예술형식의 마지막 부분에다 끌어들인다. 그는 괴테가 이 시집에서 동양정신의 본질적 특성들을 시적으로 아주 잘 표현했으며, 이를 서구인들의 의식에 적합하게 결주시켰다는 점에서 이 시집을 칭송한다.

이에 반해 1828/29 강의에서 헤겔은 주관적 주관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과 정신의 "유쾌함"울 실현시킬 수 있는 예술의 형태에 대한 물음을 주된 논의대상으로 삼는다.

새로운 예술형식: "객관적 해학"

그는 낭만적 예술은 주관성을 원리로 한다고 규정하며, 낭만적 예술의 가장 발달된 형식은 "해학(Humor)"에서 이루어졌다고 본다. 해학은 대상 및 우연적 주관성의 "특수성들(Patikularitaten)"을 예술가의 주관성 속에서 반성적으로 파악하지만, 그 특수성들은 여기서 "주관적 방식으로" 해소되어 버리고, 서로 "객관적 연관성이 없는 채" 머물게 된다.(38)

즉, 해학에서 객관적인 것은 주관성을 통해 내면화되지 않고 단지 외적인 어떤 것으로만 현상할 뿐이다. 그래서 헤겔은 이러한 해학을 "주관적" 해학이라 정의하고(39), 이 해학을 "참된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에서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비판과 함께 객관성과 주관성의 합일에서 생겨나는 "참된 객관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해학을 요구하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지를 숙고한다.

헤겔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해학을 "객관적 해학(der objektive Humor)"이라고 명한다. 그리고 그는 동양정신에서 발견한 정신의 "객관적 유쾌함(objektive Heiterkeit)"을 이 객관적 해학의 특성으로 규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즐거음", "객관적 유쾌함"이 주관성을 객관적으로, 실체적으로 실현시키는 바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헤겔은 객관적 해학에서 일어나는 '대상 속으로의 내면화', 또는 '심화'를 - 주관적 해학의 조소적이고 우울한 내면화와 다른 - "유쾌한" 것으로 특성짓고, 이를 또한 "대상을 정신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해내는 가능성으로도 특성짓는다. 그는 객관적 해학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근대 서구인들은 - 객관적 해학을 통해서 - 동양적 세계관에 전형적이듯, "세계의 사물들과 긍정적인 관계"에 이를 수 있으며, 그들이 "단편적 대상들"에서 얻는 자의적인 "만족"을 사물에 대한 정신의 "친밀성"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헤겔의 객관적 해학규정에서 주목할 점은, 여기서도 주관성이 내면화되고, 정서가 자기 내부로 되돌아 가지만, 주관성 또는 정서가 동시에 대상과의 연관성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헤겔은 대상과의 관계를 보유하는 이러한 주관성은 "주관적 느낌"이 아니고, 그 자체에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주관성이라고 말한다. 이 "자유로운 상상력"은 자의적이지 않으며, 낭만적 내면성의 "동경"도 아니요, 대상에의 욕구 내지는 물질적 관심, 어떠한 요구도 갖지 않는 상상력을 뜻한다.(40)

헤겔은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력을 실현하는 "가장 빛나는 방식"은 "동양인들"에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근대 낭만적 예술의 토대에서 그러한 자유로운 동양적 상상력을 시적으로 성공적으로 재생시킨 근대 예술작품으로 다시금 괴테의《서동시집》을 제시한다. 괴테의《서동시집》은 동양의 (범신론적인) 세계관을 서구인들에게 시적으로 가장 잘 매개한 것인 동시에, 헤겔이 새로운 해학의 형식으로 요구한 "객관적 해학"의 일례가 된다.

지금까지의 헤겔미학연구에서도 R. 부브너(Bubner) 같은 사람은 헤겔의 "객관적 해학"에 대한 구상을 부각시키면서, 헤겔이 근대에서 계속된 예술의 발전을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브너는 헤겔이 "객관적 해학"에 대한 구상을 발전시킨 근본맥락을 간과함으로써 "객관적 해학"에 대한 헤겔의 규정을 충분히 논증하지 못했다. (41)

위에서 서술된 바와 같이 헤겔이 근대에서 요구될 수 있는, 즉 "주관적 주관성"을 탈피하지 못한 낭만적 예술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객관적 해학"을 규정하고, 상징적 예술형식의 내용이 되는 동양의 세계관과 정신성의 특성을 "객관적 해학"의 본질로 논의한 것은 그가 상징적 예술형식 및 동양의 범신론적 세계관을 재평가하고, 새로이 특성지웠던 맥락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파악될 수 있다.(42) 또한 반대로, 네 차례의 베를린 미학강의에서 보이는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의 거듭된 수정, 또는 확장된 규정은 바로 이러한, 근대에서의 예술에 대한 헤겔의 계속된 사유와의 연관에서 해명될 수 있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던 것을 요약해보면, 1826년과 1828/29년 미학강의에서 헤겔은 근대에서의 예술의 의미과 역할에 대한 물음을 논의하면서 상징적 예술형식을 재파악했다. 그러면서 그는 - 세익스피어와 괴테의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 보았듯 - 근대예술에서의 상징적 예술형식의 중요성과 이 예술형식의 요소들과 기능이 근대예술에서 되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과 필연성을 규명했다.

IV. 헤겔미학의 현재적 의미

이렇듯, 새로이 발견된 헤겔미학의 자료인 강의필기노트들을 근거로 하여 네차례에 걸친 베를린 미학강의를 분석해 보았을 때, 상징적 예술형식은 종례의 연구에서와는 다르게 파악되었다. 강의필기노트들의 분석에서 밝혀진 것은 먼저 호토판 《헤겔미학》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규정으로 언급되는 개념들이 다른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특히 마지막 두 강의를 근거로 한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분석은 이 예술형식이 근대에서의 예술에 대한 헤겔의 규정과 관련되어 특성지워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분석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을 새로이 규정할 수 있게 하는 논의근거으로 밝혀진, 근대에서의 예술의 역할에 대한 헤겔의 규정 - "형식적 도야"의 수단으로서의 예술 - 은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시사한다.

그 하나는 헤겔이 "예술의 종말"이라는 논제를 수정하지 않고 끝까지 단정짓고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현재에도 또한 예술에는 포기할 수 없는 의미가 귀속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상징적 예술형식의 분석에서 함께 획득된 이 두가지 사실은 다음에서 서술될 것이듯, 곧 헤겔미학의 현재적 의미를 논의하는 근거가 된다.

헤겔미학을 화성화한다거나, 또는 그의 미학의 현재적 의미를 찾는다고 할 때, 일반적으로 그것을 현대의 예술현상의 체계적, 철학적인 해석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해한다. 이것은 헤겔미학을 활성화한다는 것을 일면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이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현재예술과의 관련점을 헤겔미학에서 찾아낼 수는 있다. 즉 추상표현주의와 (신)사실주의라는 두 방향으로 전개되는 현대예술의 양상을 헤겔이 낭만주의 예술의 특성을 분석할 때 서술한, 예술에서의 내용과 형식, 또는 의미와 형태의 극단적인 분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헤겔미학을 이러한 방식으로 활성화하려는 것은 현대예술을 설명하는 데에는 하나의 기여가 되겠지만, 헤겔미학에서 현대예술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즉, 이러한 활성화의 시도는 헤겔의 개념들이나 구상들을 미학의 협소한 기초명제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이용할 뿐이며, 헤겔미학에서 찾아낸 관련점의 필연성과 타당성을 충분히 논증하지 못한다는 취약점을 가진다. 특히 이러한 방식의 시도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헤겔미학의 해석에 "예술의 종말론"을 통합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연구는 근대문화 및 문화일반에서의 예술과 그 역할의 규정을 통해, "예술의 종말론"을 수정하지 않고서도 헤겔미학의 활성화를 논증할 수 있게 한다. 더우기 낭만적 예술에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요소들을 - 내용적인 측면 및 표현형식의 측면에서 - 부활시켜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 헤겔의 사유를 해명함으로써 우리는 헤겔미학의 활성화를 그의 전체적 명제와 관련시킬 수 있게 된다.

상징적 예술형식을 규정하는 데에도 기초가 되는 '예술의 역사적 기능'에 대한 헤겔의 규정은 '헤겔미학을 활성화하는 기초명제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주어질 때, 활성화의 실재적 관건으로 제시될 수 있다. 왜냐하면 헤겔의 현실성(Aktualitat)은 예술은 역사적인, 그럼에도 철학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라는 철학적 예술규정에 있기 때문이다.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헤겔미학의 현실성을 증명하는 데에 특히 적합한, 타당성있는 예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상징적 예술형식은 예술에 대한 헤겔적 규정의 맥락을 정신사에 대한 그의 문화철학적인 구상의 틀에서 재구성할 때에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화철학적인 이해의 틀은 또한 현재에 있어서의 헤겔미학의 의미를 논의할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

역사철학 및 문화철학적인 틀 내에서 헤겔미학을 논증한다면, 우리는 근대에 와서의 이념상의 특수성, 또는 - 달라진 신화이해와 표현에서의 질료적 한정에 의한 - 예술의 진리매개에 있어서의 단편성에 대한 헤겔의 구상을 부정적으로도, 또 긍정적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즉 "예술의 종말", 또는 "예술의 과거성"이란 논제는 복합적인 근대세계에서 예술은 단지 "단편적"일 수 밖에 없다는 한에서는 타당하다. 그러나 이 "단편성(Partialitat)"은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나 현재에서의 여러 민족의 상이한 세계관들과 삶의 형태들을 매개하는 가능성을 예술에 개시한다. 그러므로 근대에서의 예술은, 헤겔이 이미 초기의 단편인 "독일관념론의 최초의 체계구상" (1796/97)에서 촉구했던 "구상력의 다신론(Polytheismus der Einbildungskraft)"(43), 즉 가능한 세계관의 복수성을 구현하는 것이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헤겔이 보는 근대에서의 예술의 특별한 역할은 인간의 의식과 그들이 세계를 해석하여 실행하는 방식들을 우리에게 매개해주는 것이다. 즉 예술은, 헤겔이 철학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요구했듯이, 우리에게 "삶을 위해 배우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44) 이러한 규정은 "형식적 도야"에 대한 구상에서 - 이를 예술과 관련시킬 때 - 잘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예술은 단지 임의적인 주제를 자의적인 방식으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역사적인 소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로, '보편적 인간성(Humanitat)'을 요구하는 내용를 표현한다. 또한 예술은 기존의 확신이나, 행동습관을 들추어 내어서 그 정당성을 다시금 검토하게 하며, 반성되지 않은 채 타당한 것으로 정해진 세계관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보게도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술은 보다 보편적인 행동이나 세계관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직관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역사적 입장의 한정성을 - 더 높은 단계의 보편성을 위해 - 자문하게 한다. "형식적 도야"의 일환으로서 예술은 나아가 문화-역사적 내용들과 함께 매개되는 현재적 의식과 현재의 삶의 형식들에 대한 검증과 반성을 촉구하면서 근대세계에 대한 비판까지도 가능케 한다.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근대에서의 예술의 주요한 원리이다. 동시에 예술에 의한 직관과 반성의 이러한 결합은 역사적 도야를 배제하지 않는다. 여기서 역사는 현세계와 현재적 행동을 통해 재조명되어 현재에도 지속적인 의미를 보유하게 된다. 예술은 예술의 고유한 표현방식으로써 역사의 현재성과 지속적인 의미보유를 가능케 한다. '역사적 계기들을 예술을 통해 부활시키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있는가'란 물음에 대한 헤겔의 대답은 -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 근대에서의 예술의 규정을 위한 그의 기초명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헤겔의 예술규정을 방법론적으로 "형식적 도야"란 틀 내에서 밝혀 보면, 즉 미학의 기초명제를 역사철학에 통합시키면, 근대에서의 상징적 예술형식의 부활에 대한 헤겔의 기초명제를 그의 미학의 현재적 기초명제로서 서술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의 특성규정도 이러한 배경에서만 완전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

위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상징적 예술의 포괄적인 특성규정을 통해서 우리는 헤겔의 "예술의 과거성"이란 논제를 - 종례의 연구에서와는 다른 측면에서 - 재해석하고, 동시에 이 논제와 병립할 수 있는 헤겔의 예술규정의 현재적 의미를 밝혀낼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미 언급했듯이, 헤겔의 예술규정의 현재적 의미는 그가 예술를 규정할 때 "역사성"을 고려했다는 것에 있다. 헤겔은 이 예술의 "역사성"을 포괄적인 방식으로 서술했는데(45), 이는 체계적 기초를 포기하지 않고, 또한 철학의 독단론에 희생시키지 않고도 그의 미학을 활성화할 수 있게 하는 기초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아가 역사철학적인 측면에서의 상징적 예술형식의 새로운 규정은 아름답지 않은 예술들도 그 역사적 의미를 보유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헤겔이 아름다운 그리스 예술의 의미와 역할만을 논의하고, 이것에만 가치를 부여했다는 것을 비판하는, 소위 "고전주의 비난"을 해소시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우리는 역사적 지식이 종료점에 이르지 않고, 계속해서 축적되어지는 과정성을 지니는 것을 알게 된다. 의식 또한 이러한 역사적 지식의 축적과 더불어 형성되는데, 이 의식의 형성과정에 예술을 통합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에도 개별예술 현상들을 그 역사적 의미와의 연관에서 검토하고, 비판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상징적 예술형식에 대한 헤겔의 특성규정을 통해 명시된다. 따라서 상징적 예술형식의 새로운 규정은 곧 헤겔미학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출처 / http://cafe.daum.net/jsseo43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