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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헤겔 미학의 전래

by 丹野 2010. 10. 1.

 

 

 

헤겔 미학의 전래

 

 

 

 

헤겔은 미학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쓰고자 했다고는 합니다만, 실제 그 양반 살아 생전 이에 대한 책을 남기지 않았죠.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헤겔 미학은 어디에 근거를 두는가? 통상 우리가 접하는 '헤겔 미학'이라는 책은 강의 기록서입니다. 그러니까 헤겔의 대학 강의를 비지땀 흘리며 열심히 적어 놓은 학생 제자들의 노트 기록을 헤겔이 죽은 후 새로 정리해 출판한 책이죠. 여기에 추가로 등장하는 연구 자료로서는 헤겔이 직접 여기 저기 끄적거려 놓은 미학에 대한 짧은 촌평들입니다. 최근에는 이게 또 헤겔 미학에 내용적 새로움을 추가함에 급속히 학자들간에 연구 경쟁의 빌미로 파급되고 있는 바, 쪼께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다만, 하여튼 이미 발견된 헤겔의 적지 않은 귀중한 촌평 자료들이 부분적으론 아직까지도 출판이 되어 있지 않다 하네요. 물론 저는 이와는 별로 상관이 없죠. 아니 이미 알려진 자료도 소화시키기 힘들어 헉헉거리는 판에...

 

이리 보매 우리가 접하는 '헤겔 미학'이란 책의 출판史 역시 파란만장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는 따로 독립된 주제로도 충분히 설정될 수 있는 사안이나, 가만 독심술로 주욱 훑어보니 이 문제에 관심 던지시는 님들이 매우 적어 걍 접어두렵니다.

 

대신 이 미학의 전래라는 맥락에서 그 전후의 다른 미학들에 비해 돋보이는 점에 대해 짧은 말씀 드립니다. 우리가 만약 미학이라는 학문을 美라는 대상에 대한 추상적이고 초역사적인 철학 함이라 이해한다면, 헤겔의 예술철학은 이러한 미학의 범주를 뛰어 넘어 예술 작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예술사에 대해서까지 철학함의 기록입니다. 쪼께 펼쳐 말씀드리면, 헤겔의 미학은 예술 작품의 구체적인 구조미 내지는 형식미와 더불어 그 역사에 대해서까지 이론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철학적 시도라 볼 수 있습니다. 즉 현재의 예술을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예술과 관련된 역사라는 큰 맥락에서 다시 짚어보고 비추어 보며 철학 하는 방법입니다. 나아가 이러한 역사성에 비추어 봄으로써 현재의 예술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자 하며 아울러 이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로의 방향성을 제대로 내다볼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의미에서 헤겔의 미학은 예컨대 그 당시 소위 '괴테 시대'의 미학적 사고 방식과 그 내용을 나름대로의, 어쩌면 최고의 독창적인 눈으로 종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 어째 말이 점점 거창해지니 괜스레 남세스러워지는군요. 그래 한 마디 촌평만 붙이고 넘어가렵니다:

 

헤겔 예술철학의 이러한 종합적 성격은 그 이전에 세상에 나온 칸트의 미학에서는 아직 발견할 수 없으며, 그 이후, 즉 헤겔의 사후 유물론을 추구한 소위 헤겔 좌파에 의해 그 전수가 끊겨버렸습니다.

 

II. 미학과 예술철학

 

아, 말씀 드리다 보니 저 자신도 미학이란 용어와 예술철학이란 용어를 섞어 쓰는군요. 변명을 하자면, 사실 또 섞어 써도 크게 틀리지는 않습니다. 이를 가능케 한 인물이 바로 우리의 헤겔이기도 하죠. 뒤집어 말하자면 미학이란 개념의 뜻을 헤겔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 바라볼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단어를 학적인 의미로 처음 쓴 사람은 독일의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 1714-1762)이라는 철학자인바, 이 양반이 1750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책 'Aesthetica'를 세상에 내놓은 게 그 시발점입니다. 어원적으로는 고대 희랍어 aisthanesthai 로서 우리말로 인식하다 내지는 감지하다라는 뜻이죠. '感知하다'가 걸맞다 생각되네요. 그러니까 원래의 의미는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그런 뜻이 아니라 감성론이라고나 할까, 일반 철학 인식론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점점 어려워지니 정신 바짝 차리십시오.^^)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을 보면 앞부분의 감성론을 다룬 부분에 당연 이 용어 - Aesthetik -가 보이지요. 뭐 더 정확히는 우리말로 '선험적 감성론'이라 불리는데,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대상을 감지하며 받아들이는 등의 경험 이전에 자리매김되는, 그러면서 동시에 바로 이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대해 철학 하는 부분이 바로 이 先驗的 감성론입니다. 심심찮게 들리는 칸트의 시간과 공간 개념이 바로 이 범주에 속합니다.

 

이에서 엿보듯 헤겔 이전의 미학에서는 감정, 느낌 등의 심리적-감성적 전개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혹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에 대해 들어보셨는지요? 고대 희랍어로 정화, 세척 등의 뜻인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영적 정화 세척의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즉 비극과 같은 예술에는 우리가 그러한 예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깨끗이 씻는 힘이 있다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예술이 우리 감성 내지는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주안점을 두고 생각을 모아본 시도였죠. 이러한 수동적 사고 양태는 놀라웁게도 칸트 시대에도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습니다.

 

칸트의 미학 책인 소위 '판단력 비판' 또한 일단은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일 수도 있어요. 칸트는 이 책에서 '무엇이 아름답다'라는 판단이 이루어지는 인식 과정 중에서 감정, 특히 쾌감과 불쾌감이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 철학하고 있거든요.

 

근데 쪼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은 게, 칸트의 용어 >>비판<<이 갖는 비중 때문이지요. 이 양반은 비판이란 개념을 자신의 철학과 거의 동일시합니다. 굳이 비판이라 한 이유에 대해선 물론 많은 말이 오갈 수 있으나,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모든 사유의 기/본/ 바/탕/을 캐묻는 정신 노동을 대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다른 글에서 말씀드렸던 >>스스로 생각함<<이 없으면 이러한 비판 정신 또한 불가능함은 두 말하면 잔소리고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칸트는 자신의 철학 이전의 전래 미학을 마구 흔들어댔죠. 그냥 통째로 말입니다. 그 근본을 들입다 헤쳐 캐묻고 따지고 했으니 말이죠. 결국 미학에 대한 전래의 사고 방식이 품고 있었던 '미학은 예술 작품 등이 인간 감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학문이다'라는 지극히 수동적인 경향이 칸트에 의해 처음으로 철퇴를 맞고 그 대신 예술을 그 자체로서 이해해 보고자 하는 능동적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술에 대한 객관적 철학 함에의 첫 발을 내디딘 셈이라고나 할까요? 감성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미학 함을 주관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으니 한번 이리 불러 봅니다. 이러한 꿈틀거림이 칸트 이후 셸링이나 졸가라는 철학자들을 통해(이름 알아두셔도 손해는 없으니 걱정 마시길...^^) 바로 우리의 헤겔에서 그 정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술 속에서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철학을 하는 인간 정신 노동의 최고봉이죠.

 

헤겔의 말을 직접 들어봅니다:

 

"우리는 미학이라는 용어를 일단 한 쪽으로 치워둔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한 명칭으로서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그 외 이 용어는 이미 일상 언어 속으로 편입이 되었으매 명칭으로서는 그냥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 우리의 학문에 해당하는 표현은, 엄격히 말하자면, >>예술철학<<이며, 더 정확히는 >>아름다운 예술 철학<<이다."

 

 

 출처 /  http://blog.daum.net/jsgroupb/3161?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jsgroupb%2F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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