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소외의 가치화
金載弘
(문학평론가, 경희대교수)
오늘날의 삶이란 온통 자본과 물질이 지배하는 형국이어서 정신과 영혼이 날로 황폐해 가는 모습이다. 그러기에 나날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과 소외현상이 심화돼가고 불안과 방황으로 인해 삶이 메말라가고 고단해져 가는게 사실이라고 하겠다.
이런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의 시대에 과연 시가 할 수 있는 기능이 무엇일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지만 대체로 시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고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데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시는 가장 높은 정신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예술이기에 슬픔의 힘, 절망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 샘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점에서 의사가 육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해 준다고 하면, 시인은 정신의 병을 위무해 주고 치유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기에 시중에서 특히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시가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한다.
이 달의 시 가운데 필자가 관심을 갖고 읽은 것은 신달자의 「봄의 금기사항」외(문학사상 5월호)와 김남조의 「먼 전화」외(시와 시학 여름호), 나태주의 「풀꽃」(시와 시학 여름호), 그리고 오철환 시집『엮는다고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 등이다. 이들 시편들에는 오늘과 같은 단절과 소외, 불안과 방황의 시대를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이겨 나아가고자 하는 안간힘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 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는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 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니까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라
신달자「봄의 금기사항」
우리들에게 봄이란 무엇인가? 봄이란 겨울지나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꿈 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 손잡고 도는 봄」이 아니겠는가. 지난 겨울이 상징하는 온갖 단절과 상처, 절망과 죽음에서 살아나 온갖 생명들이 살아 있음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서로의 생명을 축복하며 기려주는 계절이 아닌가 말이다. 말 그대로 부활과 소생을 의미하는 생명의 계절이란 뜻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서로 서로 손잡고 도는 봄 들에 두발 내리면/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꽃향에 녹아/사랑은 그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다. 봄은 바로 생명과 사랑을 말하는 대자연의 은유이다. 그러기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무겁게 말문을 닫고/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나란히 서서/출렁이는 생명의 출항/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봄이 바로 생명이고 사랑 그 자체이기에 그냥 그렇게 온몸으로 생명과 사랑을 누리면 될 뿐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말이다. 봄에는 사랑으로 생명과 생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단절과 소외, 그리고 불안감이 해소되고 정신의 평화가 찾아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루루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는지
그래 좋다 한 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신달자「4월의 꽃」
따라서 봄은 생명 있는 것들, 산 자들 뿐만 아니라 죽은 혼령들과도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생명의 계절이 된다. 비록 일상의 나날들은 온갖 사건․사고로 얼룩지고 또 그렇게 고장난 채로 흘러가지만, 꽃이 피어나는 동안에는 생명들이 하나로 얼크러져서 생명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찬탄하는 모습이다. 「벚꽃 철쭉들/저 집합의 무리는/그저 꽃이 아니다/우루루 몰려 몰려/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는지/그래 좋다 한 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잠시 이승에 불러모아/한 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라는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승과 저승의 거리, 원한과 증오의 단절을 뛰어넘어 서로 얼크러져서 사랑과 평화로 녹아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봄을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봄과 꽃을 매개로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봄은 사랑이고 생명이면서 동시에 평화를 의미함으로써 정신의 힘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남조 시도 사랑을 핵심 주제로 하고 있다. 실상 사랑은 그의 첫시집 『목숨』(1953)에서 시작되어 근년의 열 네 번째 시집 『희망 학습』(1998)에 이르기까지 김남조의 시의 대주제로 끊임없이 확대되고 심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기어이 저질러 버렸구나
사랑의 고백 하나
산탄되어 흩어졌느니
꽃 피어서 꽃 지듯이
후련히 절로 그리 되었느니
생의
이력서에 기록될
내 마지막 짝사랑이
이로써 완성되었다
김남조「고백」
김남조 시에서 사랑은 오랫동안 소재이고 제재이며 동시에 주제로서 다양하고 깊이 있게 형상화되어 왔다. 그만큼 이 땅의 역사가, 그 속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겠다. 해방기의 혼란과 6․25의 비극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되기 시작한 김남조의 시편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된 사회사적 갈등과 불안으로 인해 그의 시로 하여금 거친 현실에 대응하는 하나의 응전 양식으로 사랑과 평화를 지속적으로 노래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야말로 삶을 이끌어 가는 정신의 추동력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삶이란, 사람의 한 생애란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의 완성으로서 마무리되는 과정의 연속에 해당한다. 밥이 우리에게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육신의 열과 힘을 주듯이 사랑은 정신의 에너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연결해주고, 순간과 영원을 매개해주는 원동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지도에서도 못찾을
서름한 먼 나라에서
걸려온 전화,
어서 돌아오세요 라고 했더니
햇살 반 소낙비 반 같은
모순의 웃음소리가
전화 목소리 걸어오는 길가에
좌르르 깔린다
왜 웃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라는 그 말이
행복해서라나 뭐라나
반년만에 일년만에
잊을만 하면 걸려오는 전화
어서 돌아오세요 라고 하면
그 말 한 번 듣는
천금같은 재미 탓에
못온다나 어쩐다나
김남조「먼 전화」
지도에서도 못찾을 서름한 나라란 과연 어디이고, 거기에서 걸려온 전화란 또 무엇인가? '서름한 나라'란 바로 죽음, 즉 이별로 인해서 끊어진 사랑이 이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 시에서 먼 전화란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 이승과 저승의 먼 거리를 매개해주고 연결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자 정신적 통로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감은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말과 「왜 웃느냐고 물어보니/돌아오라는 그 말이/행복해서라나 뭐라나」라는 말 사이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2연에서도「어서 돌아오세요/그말 한 번 듣는/천금같은 재미탓에/못온다나 어쩐다나」라는 구절 사이에 아련한 그리움과 아지 못할 기다림으로서 사랑의 마음이 짙게 깔려 있는 모습이다. 그만큼 사랑의 마음은 삶 속에, 육신과 영혼 속에 서로 육화돼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함께 발표된 「십자로」에는 그러한 감정이 「기다림은 끝났습니다/길을 찾는 일도 마쳤습니다/이제 봄 볕 속에 도착하여/가만히 서 있는 겁니다」와 같이 평상심의 상태, 평화로운 마음 자세로 승화돼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시 「베틀에 앉아」에서는 「봄 한철 베틀에 앉아/햇살에서 잦은 실로 비단을 짜서/내 몰골은 가려두고/옷 한 벌 지어 내밀꺼나」와 같이 아직도 지속돼 온 아련한 사랑과 그리움의 정감을 내비치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그러고 보면 김남조의 사랑시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형성중인 것으로서 미완의 긴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이미 그것은 죽음의 상태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랑의 정감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는 한 김남조의 사랑시학은 언제나 현재 진행중이고 미래 완료형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나태주의 시편들은 오늘날과 같은 불연속의 시대에 있어 시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데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몸이 아파, 병이 깊으면 지금도 나는
고향인 서천의 신한의원이나 경북한약방에서
한약을 지어다 먹는다, 그러면
병이 수월하게 낫는다
이번에 서울에 있는 딸아이 아팠을 때
공주에 있는 연춘당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고 몸이 좋아졌다, 그것은
딸아이의 고향이 공주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병이 깊어졌을 때
약을 지어다 먹을 시골의 한의원 한군데쯤
있다는 것 좋은 일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나태주「고향」
김남조와 신달자의 사랑이 나태주에게선 고향의 의미로 변주되어 제시된다. 고향이란 바로 나태주에게 있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왜 고향의 병․의원에서 약을 지어먹으면 병이 수월하게 낫는다고 생각하고 또 믿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바로 근원에 대한 사랑이며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자 신뢰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믿음의 힘이 병을 낫게 하고 삶을 이끌어가게 하는 추동력이자 희망으로서 작용한다는 뜻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마음, 추억의 힘이 정신의 에너지로서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소문난 명의도 아닌데 시골의 한의원이나 약방이 무어 그리 대단히 영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다만 고향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 그것이 스스로 병을 낫게 하는 힘, 나아지게 만드는 묘약으로 생각하게 하는 근본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바로 여기에서 나태주 시인의 고향사랑의 정신이란 바로 정신의 주체성과 삶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안간힘의 반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른바 주변부의 중심부화, 또는 소외된 것의 가치화를 통해서 시대적인 어려움과 삶의 외로움을 이겨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풀꽃 하나에서 사랑과 영원을 읽어내는 나태주의 시혼은 오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벼려진 정신의 힘이 아닐 수 없다. 들풀 하나 풀꽃 하나 하나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는 인식 속에는 주변부의 중심부화 또는 소외의 가치화라고 하는 정신의 분투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실상 이러한 외로움의 시학, 소외의 가치화는 「해 저물녘/길 잃은 강아지/나 따라 다닌다//하느님 눈엔/나도 또한/길 잃은 강아지//저녁놀은 혼자서 볼 때만/저녁놀이다」(「저녁놀」전문)라는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나태주의 시는 외로움에 대한 혈연적 사랑 또는 소외의 가치화를 통해 실존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신의 구원과 평화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달의 읽은 시집 가운데는 오철환의 『엮는다고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가 관심을 환기한다. 우리 시대의 중심 화두라고 할 문학 생태학을 기저로 하면서 권위주의, 재벌주의, 적대주의, 허위와 부조리 등 이 땅에서 전개된 온갖 종류의 폭력과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GGL 싸랑해요
벽장이 무너지게
기름덩이로 남해안을 엎어주셔
GGL, 고마워요
남해 앞바다를 닦아내게
럭키치분 보내주셔
GGL 감사해요
100년이 가도
1000년이 가도 씻기지 않을
기름띠를 쳐주셔
씨프린스호 선장님
GGL 회장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남해안 멸종생물일동
오철환「GGL, 싸랑해요」
이 시는 연전에 남해안에서 있었던 씨프린스호 침몰로 인한 기름 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벌의 무분별한 탐욕과 횡포를 고발한다. 마치 70년대 초 김지하의 「오적」과 같이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과 야유를 통해 진정한 양심회복과 정의사회 구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우리는 오철환 시의 주제를 인간회복에 대한 염원, 또는 생명회복의 꿈이라고 말해 볼 수 있겠다. 그만큼 시집에는 참인간성을 살려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생명회복에 대한 염원이 절실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집에는 어느 면에서 좀 지나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직접적인 고발과 비판, 야유와 냉소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단점이지만 동시에 장점으로 인식된다. 현실이 그만큼 각종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나날이 부패하고 타락해가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들이 하나의 위험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적나라한 고발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강렬한 비판과 고발 속에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과 역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물결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역사와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깊이 있게 노래한 아름다운 그의 시 「낙화」가 애잔하게 가슴에 메아리져 오는 게 아닌가 한다.
온 세상에 낙화가 하얗게 휘날린다
쌓여서 어쩌자는 건가
무정한 봄이 물오르기도 전에 떠나간다
사연은 하늘저녁이면 다다
엮는다고 다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
잎순보다 먼저 떠나는 꽃잎이 오늘따라 고웁다
소문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봄이런가?
더불어 왔다가 가는게 인생인가?
꽃들이 일제히 떠나가는게 추억속의 영화같다
여린 꽃잎 떨어져 흐르는게
어린 심청 마음만 같아
소식 없이 떠나는 봄이 아리다
사랑과 소외의 가치화
金載弘
(문학평론가, 경희대교수)
오늘날의 삶이란 온통 자본과 물질이 지배하는 형국이어서 정신과 영혼이 날로 황폐해 가는 모습이다. 그러기에 나날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단절과 소외현상이 심화돼가고 불안과 방황으로 인해 삶이 메말라가고 고단해져 가는게 사실이라고 하겠다.
이런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의 시대에 과연 시가 할 수 있는 기능이 무엇일까?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지만 대체로 시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은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고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는데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시는 가장 높은 정신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예술이기에 슬픔의 힘, 절망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는 샘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점에서 의사가 육신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해 준다고 하면, 시인은 정신의 병을 위무해 주고 치유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기에 시중에서 특히 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시가 많은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닐까 한다.
이 달의 시 가운데 필자가 관심을 갖고 읽은 것은 신달자의 「봄의 금기사항」외(문학사상 5월호)와 김남조의 「먼 전화」외(시와 시학 여름호), 나태주의 「풀꽃」(시와 시학 여름호), 그리고 오철환 시집『엮는다고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 등이다. 이들 시편들에는 오늘과 같은 단절과 소외, 불안과 방황의 시대를 사랑과 평화의 마음으로 이겨 나아가고자 하는 안간힘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 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는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 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향에 녹아
사랑은 그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리라.
사랑하니까 봄보다 먼저 온몸에 꽃을 피워내면서
서로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기는
꽃술로 얽히리니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무겁게 말문을 닫고
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
나란히 서서
출렁이는 생명의 출항
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라
신달자「봄의 금기사항」
우리들에게 봄이란 무엇인가? 봄이란 겨울지나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꿈 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 손잡고 도는 봄」이 아니겠는가. 지난 겨울이 상징하는 온갖 단절과 상처, 절망과 죽음에서 살아나 온갖 생명들이 살아 있음의 기쁨을 노래하면서 서로의 생명을 축복하며 기려주는 계절이 아닌가 말이다. 말 그대로 부활과 소생을 의미하는 생명의 계절이란 뜻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서로 서로 손잡고 도는 봄 들에 두발 내리면/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꽃향에 녹아/사랑은 그의 가슴 속에 스며들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것이다. 봄은 바로 생명과 사랑을 말하는 대자연의 은유이다. 그러기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무겁게 말문을 닫고/영혼 깊어지는 그 사람과/나란히 서서/출렁이는 생명의 출항/파도치는 봄의 들판을 고요히 바라보기만」하면 되는 것이다. 봄이 바로 생명이고 사랑 그 자체이기에 그냥 그렇게 온몸으로 생명과 사랑을 누리면 될 뿐 새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는 말이다. 봄에는 사랑으로 생명과 생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단절과 소외, 그리고 불안감이 해소되고 정신의 평화가 찾아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홀로 피는 꽃은 그저 꽃이지만
와르르 몰려
숨 넘어가듯
엉겨 피어 쌓는 저 사건 뭉치들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벚꽃 철쭉들
저 집합의 무리는
그저 꽃이 아니다
우루루 몰려 몰려
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는지
그래 좋다 한 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
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
잠시 이승에 불러모아
한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
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
신달자「4월의 꽃」
따라서 봄은 생명 있는 것들, 산 자들 뿐만 아니라 죽은 혼령들과도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생명의 계절이 된다. 비록 일상의 나날들은 온갖 사건․사고로 얼룩지고 또 그렇게 고장난 채로 흘러가지만, 꽃이 피어나는 동안에는 생명들이 하나로 얼크러져서 생명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찬탄하는 모습이다. 「벚꽃 철쭉들/저 집합의 무리는/그저 꽃이 아니다/우루루 몰려 몰려/뜻 맞추어 무슨 결의라도 하는지/그래 좋다 한 마음으로 왁자히 필 때까지 피어보는/서럽고 억울한 4월의 혼령들/잠시 이승에 불러모아/한 번은 화끈하게 환생의 잔치를 베풀게 하는/신이 벌이는 4월의 이벤트」라는 구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승과 저승의 거리, 원한과 증오의 단절을 뛰어넘어 서로 얼크러져서 사랑과 평화로 녹아들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봄을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봄과 꽃을 매개로 사랑을 노래하면서, 사랑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봄은 사랑이고 생명이면서 동시에 평화를 의미함으로써 정신의 힘으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남조 시도 사랑을 핵심 주제로 하고 있다. 실상 사랑은 그의 첫시집 『목숨』(1953)에서 시작되어 근년의 열 네 번째 시집 『희망 학습』(1998)에 이르기까지 김남조의 시의 대주제로 끊임없이 확대되고 심화돼 온 것이 사실이다.
기어이 저질러 버렸구나
사랑의 고백 하나
산탄되어 흩어졌느니
꽃 피어서 꽃 지듯이
후련히 절로 그리 되었느니
생의
이력서에 기록될
내 마지막 짝사랑이
이로써 완성되었다
김남조「고백」
김남조 시에서 사랑은 오랫동안 소재이고 제재이며 동시에 주제로서 다양하고 깊이 있게 형상화되어 왔다. 그만큼 이 땅의 역사가, 그 속에서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었다는 반증이 될 수 있겠다. 해방기의 혼란과 6․25의 비극 속에서 형성되고 전개되기 시작한 김남조의 시편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된 사회사적 갈등과 불안으로 인해 그의 시로 하여금 거친 현실에 대응하는 하나의 응전 양식으로 사랑과 평화를 지속적으로 노래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이야말로 삶을 이끌어 가는 정신의 추동력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삶이란, 사람의 한 생애란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의 완성으로서 마무리되는 과정의 연속에 해당한다. 밥이 우리에게 있어 살아갈 수 있는 육신의 열과 힘을 주듯이 사랑은 정신의 에너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사랑은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연결해주고, 순간과 영원을 매개해주는 원동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지도에서도 못찾을
서름한 먼 나라에서
걸려온 전화,
어서 돌아오세요 라고 했더니
햇살 반 소낙비 반 같은
모순의 웃음소리가
전화 목소리 걸어오는 길가에
좌르르 깔린다
왜 웃느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라는 그 말이
행복해서라나 뭐라나
반년만에 일년만에
잊을만 하면 걸려오는 전화
어서 돌아오세요 라고 하면
그 말 한 번 듣는
천금같은 재미 탓에
못온다나 어쩐다나
김남조「먼 전화」
지도에서도 못찾을 서름한 나라란 과연 어디이고, 거기에서 걸려온 전화란 또 무엇인가? '서름한 나라'란 바로 죽음, 즉 이별로 인해서 끊어진 사랑이 이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 시에서 먼 전화란 여기와 저기, 차안과 피안, 이승과 저승의 먼 거리를 매개해주고 연결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자 정신적 통로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 사랑의 정감은 「어서 돌아오세요」라는 말과 「왜 웃느냐고 물어보니/돌아오라는 그 말이/행복해서라나 뭐라나」라는 말 사이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2연에서도「어서 돌아오세요/그말 한 번 듣는/천금같은 재미탓에/못온다나 어쩐다나」라는 구절 사이에 아련한 그리움과 아지 못할 기다림으로서 사랑의 마음이 짙게 깔려 있는 모습이다. 그만큼 사랑의 마음은 삶 속에, 육신과 영혼 속에 서로 육화돼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함께 발표된 「십자로」에는 그러한 감정이 「기다림은 끝났습니다/길을 찾는 일도 마쳤습니다/이제 봄 볕 속에 도착하여/가만히 서 있는 겁니다」와 같이 평상심의 상태, 평화로운 마음 자세로 승화돼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시 「베틀에 앉아」에서는 「봄 한철 베틀에 앉아/햇살에서 잦은 실로 비단을 짜서/내 몰골은 가려두고/옷 한 벌 지어 내밀꺼나」와 같이 아직도 지속돼 온 아련한 사랑과 그리움의 정감을 내비치고 있어서 관심을 환기한다.
그러고 보면 김남조의 사랑시는 아직도 진행 중이며 형성중인 것으로서 미완의 긴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이미 그것은 죽음의 상태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랑의 정감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심화되는 한 김남조의 사랑시학은 언제나 현재 진행중이고 미래 완료형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음이 분명하다.
나태주의 시편들은 오늘날과 같은 불연속의 시대에 있어 시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데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몸이 아파, 병이 깊으면 지금도 나는
고향인 서천의 신한의원이나 경북한약방에서
한약을 지어다 먹는다, 그러면
병이 수월하게 낫는다
이번에 서울에 있는 딸아이 아팠을 때
공주에 있는 연춘당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고 몸이 좋아졌다, 그것은
딸아이의 고향이 공주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병이 깊어졌을 때
약을 지어다 먹을 시골의 한의원 한군데쯤
있다는 것 좋은 일다
고향이란 그런 것이다
나태주「고향」
김남조와 신달자의 사랑이 나태주에게선 고향의 의미로 변주되어 제시된다. 고향이란 바로 나태주에게 있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왜 고향의 병․의원에서 약을 지어먹으면 병이 수월하게 낫는다고 생각하고 또 믿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바로 근원에 대한 사랑이며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자 신뢰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과 믿음의 힘이 병을 낫게 하고 삶을 이끌어가게 하는 추동력이자 희망으로서 작용한다는 뜻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마음, 추억의 힘이 정신의 에너지로서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소문난 명의도 아닌데 시골의 한의원이나 약방이 무어 그리 대단히 영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다만 고향에 대한 사랑과 신뢰의 마음, 그것이 스스로 병을 낫게 하는 힘, 나아지게 만드는 묘약으로 생각하게 하는 근본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습이라 하겠다. 바로 여기에서 나태주 시인의 고향사랑의 정신이란 바로 정신의 주체성과 삶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안간힘의 반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른바 주변부의 중심부화, 또는 소외된 것의 가치화를 통해서 시대적인 어려움과 삶의 외로움을 이겨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풀꽃 하나에서 사랑과 영원을 읽어내는 나태주의 시혼은 오랜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벼려진 정신의 힘이 아닐 수 없다. 들풀 하나 풀꽃 하나 하나가 바로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는 인식 속에는 주변부의 중심부화 또는 소외의 가치화라고 하는 정신의 분투가 아로새겨져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실상 이러한 외로움의 시학, 소외의 가치화는 「해 저물녘/길 잃은 강아지/나 따라 다닌다//하느님 눈엔/나도 또한/길 잃은 강아지//저녁놀은 혼자서 볼 때만/저녁놀이다」(「저녁놀」전문)라는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나태주의 시는 외로움에 대한 혈연적 사랑 또는 소외의 가치화를 통해 실존의 위기를 극복하고 정신의 구원과 평화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달의 읽은 시집 가운데는 오철환의 『엮는다고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가 관심을 환기한다. 우리 시대의 중심 화두라고 할 문학 생태학을 기저로 하면서 권위주의, 재벌주의, 적대주의, 허위와 부조리 등 이 땅에서 전개된 온갖 종류의 폭력과 모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GGL 싸랑해요
벽장이 무너지게
기름덩이로 남해안을 엎어주셔
GGL, 고마워요
남해 앞바다를 닦아내게
럭키치분 보내주셔
GGL 감사해요
100년이 가도
1000년이 가도 씻기지 않을
기름띠를 쳐주셔
씨프린스호 선장님
GGL 회장님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남해안 멸종생물일동
오철환「GGL, 싸랑해요」
이 시는 연전에 남해안에서 있었던 씨프린스호 침몰로 인한 기름 오염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재벌의 무분별한 탐욕과 횡포를 고발한다. 마치 70년대 초 김지하의 「오적」과 같이 우리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를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비판과 야유를 통해 진정한 양심회복과 정의사회 구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우리는 오철환 시의 주제를 인간회복에 대한 염원, 또는 생명회복의 꿈이라고 말해 볼 수 있겠다. 그만큼 시집에는 참인간성을 살려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생명회복에 대한 염원이 절실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시집에는 어느 면에서 좀 지나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직접적인 고발과 비판, 야유와 냉소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단점이지만 동시에 장점으로 인식된다. 현실이 그만큼 각종 모순과 부조리로 인해 나날이 부패하고 타락해가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들이 하나의 위험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러한 적나라한 고발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러한 강렬한 비판과 고발 속에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과 역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물결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역사와 인생의 기쁨과 슬픔을 깊이 있게 노래한 아름다운 그의 시 「낙화」가 애잔하게 가슴에 메아리져 오는 게 아닌가 한다.
온 세상에 낙화가 하얗게 휘날린다
쌓여서 어쩌자는 건가
무정한 봄이 물오르기도 전에 떠나간다
사연은 하늘저녁이면 다다
엮는다고 다 역사이고 산다고 다 삶인가?
잎순보다 먼저 떠나는 꽃잎이 오늘따라 고웁다
소문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봄이런가?
더불어 왔다가 가는게 인생인가?
꽃들이 일제히 떠나가는게 추억속의 영화같다
여린 꽃잎 떨어져 흐르는게
어린 심청 마음만 같아
소식 없이 떠나는 봄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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