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念의 起源관념의 기원
로 크
John Locke(1632- 1704)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 철학자이며 近代 民主主義의 대표적 사상가. 그는 철학. 교육. 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영국의 자유주의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그의 정치철학은 1688년의 名譽革命의 지도적 이론이었다. 주요저작으로는 『寬容에 관한 書翰』 Epistola de tolerantia 1688, 『人間悟性論』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統治論 二篇』 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90, 『敎育考』 Some Thoghts concerning Education 1693, 『基督敎의 合理性』 The Reasonableness o Christiantiy 1695 등이 있다. - 인간오성론의 발체본
제 1 권 生得觀念에 대하여
제 2 장 정신 속에는 어떠한 생득적 원리도 없다
1. 우리가 어떤 지식을 얻는 방법이 증명되면, 그 지식이 생득적이 아님은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다.
약간의 사람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는 확정된 의견에 의하면, 悟性 가운데에는 일정한 생득적 원리, 즉 약간의 원초적 개념, 공통개념 Koini ennoiai ,이를테면 인간의 정신에 찍힌 文字와 같은 것이 있으며, 영혼은 이것을 처음 태어날 때에 받아서 아 세상에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의 그릇됨을 공평한 독자들에게 납득시켜 주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단지 자기의 타고나 능력만을 사용함으로써 어떠한 생득적 인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지식에 도달할 수가 있으며, 또 그와 같은 원초적 관념이나 원리가 없어도 확실성에 도달할 수가 있는가를 밝히기만 하면(나는 이 논문의 다른 부분에서 이것을 밝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충분할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視覺을 부여했고, 또 두 눈에 의해서 외적 대상으로부터 色을 받아 드리는 능력을 부여했는데도, 이러한 인간에게 있어서 색의 觀念이 생득적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이 온당치 못한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용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의 진리가 처음부터 정신에 刻印되어 있기나 한 것처럼 진리를 용이하고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들 자신의 안에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는데도, 그러한 진리를 타고난 인상과 생득적 文字의 탓으로 돌린다면 그것도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2. 一般的 同意가 커다란 論據이다
全人類가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확실한 思辨的 原理와 實踐的 原理가 (그들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이야기하므로) 있다는 것보다 더 일반적으로 當然之事라고 생각되는 일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원리는 인류의 영혼이 처음 태어날 때에 받는 不變的 인상임에 틀림없으며, 인간의 영혼은 자신의 고유한 능력이나 마찬가지로 필연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원리를 이 세상에 가지고 나온다고 한다.
3. 보편적 승인은 하등 생득적인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보편적 승인에서 이끌어낸 이 논의는 다음과 같은 불행을 가지고 있다.: 즉 설사 전 인류가 동의하는 확실한 진리가 있다는 것이 사실상 참이라고 할지라도, 만일 사람들이 그들이 승인하는 것의 보편적 동의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밝혀질 수 있다면, 그러한 진리가 생득적이라는 것은 증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다른 방법이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라는 것과 ‘동일한 것이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라는 것은, 보편적 동의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또 雪上加霜으로 보편적 승인에 관한 이러한 논의는 생득적 원리를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건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오히려 생득적 원리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증명이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동의하는 원리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사변적인 원리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의 극찬을 받는 증명 원리 가운데서 ‘존재하는 것이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는 것을 예로 들어 보겠다. 이 원리는 다른 모든 원리 중에서 생득적임을 요구할 자격을 가장 많이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원리는 보편적으로 승인되는 公理라고 하는 확고한 평판을 받고 있으므로, 만일 누군가가 이것을 의심하는 듯이 보인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기이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례를 무릅쓰고, 이러한 명제들이 보편적 동의를 받기는 고사하고, 인류의 대부분은 이 명제를 알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둔다.
5. 어린이들이나 白痴 등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나면서부터 정신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모든 어린이들과 백치들은 이러한 명제들을 조금도 이해하거나 사유하고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생득적 진리에 필연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보편적 동의를 파기하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영혼에 각인되어 있으나 영혼이 知覺 또는 이해하지 못하는 진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나에게는 모순에 가까운 것 같이 생각되고, 또 만일 각인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진리로 하여금 지각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에 어떤 것을 각인하되 정신이 그것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이로 보인다. 그러므로 만일 어린이들과 백치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고 정신을 가지고 있고, 정신에 각인된 이러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지각할 수 밖에 없고, 또 필연적으로 그러한 진리를 알고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므로 그러한 인상이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만일 그것이 나면서부터 각인된 관념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생득적일 수 있을까? 또 만일 그것이 각인된 관념이라면, 어떻게 해서 그것이 알려지지 않을 수 있을까?...어떠한 명제도 정신이 아직 인식한 일이 없고 정신이 아직 의식한 일이 없는 것이라면, 정신 속에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정신이 아직 인식한 일이 없는 어떤 명제가 정신 속에 있을 수 있다면, 그와 똑같은 이유로, 참되며 정신이 언젠가는 동의할 수 있는 모든 명제는 정신 속에 있으며 각인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정신이 이직 인식한 일이 없는 어떤 명제가 정신 속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다면, 이는 오로지 정신이 그 명제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해서 그러한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신이 언젠가는 인식하게 될 모든 명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렇게 되면 정신이 인식한 일도 없고 또 앞으로 인식하게 되지도 않을 진리도 정신에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오래 산다해도 그의 정신이 인식할 수 있었던 많은 진리를 결국은 인식하지 못하고 죽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만일 인식의 능력이 곧 우리가 지금 논쟁하고 있는 , 나면서 가지는 인상이라면, 사람이 언젠가는 인식하게 될 모든 진리는 이런 이유로 해서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생득적이라고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성 속에 생득적 관념이 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의 말은( 그가 생득적 관념이 어떤 명확한 진리라고 말할 셈으로 있다 하더라도) 오성이 知覺한 일도 없고 또 아직도 전혀 알고 있지 못한 진리가 오성 속에 있다고 함을 의미하는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 (즉 오성 속에 있다 <to be in the understood>는 말)이 어떤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이해되고 있다 (to be understood)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오성 속에 있으면서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 즉 정신 속에 있으면서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 정신이나 오성 속에 있으면서도 또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만일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존재한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 존재하며 또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이 두 명제가 나면서부터 각인된 것이라면 어린이들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幼兒들과 영혼을 가진 모든 것들이 반드시 그들의 오성 속에 이 명제를 가지고 있고, 그 진리를 인식하며 그것에 동의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제 2 권 觀念에 관하여
제 2 장 관념 일반과 그 기원에 관하여
1. 觀念은 思考의 對象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이 사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고 또 思考하는 동안에 자기의 정신이 향하는 것은 거기에 있는 관념이므로, 인간이 그 정신 속에 여러 가지 관념, 즉 白, 堅固, 甘味, 思考, 運動, 人間, 코끼리, 軍隊, 酩酊 등과 같은, 말로 표현되는 여러 가지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인간은 그러한 관념들을 획득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가 맨 먼저 탐구되어야 할 일이다. 내가 알고 있기에는, 인간은 타고난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처음 태어날 때에 정신에 원초적인 文字가 찍혀 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승인된 학설이다. 이러한 견해를 나는 이미 상세히 검토하였다. 그러나 悟性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을 어디에서 얻는가, 또는 이 관념들은 어떠한 방법과 단계로 정신 속에 들어오는가 하는 문제가 밝혀지게 되면, 내가 前 卷에서 이미 언급한 것이 아마도 훨씬 더 용이하게 승인을 받게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는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는 관찰과 경험에 호소하고자 한다.
2. 모든 관념은 感覺이나 反省에서 나온다
그러면 정신은 이를테면 아무런 문자도 쓰여져 있지 않은, 어떤 관념도 가지지 않은 백지라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해서 이 정신은 관념을 갖추게 되는가? 인간의 多忙하고 限이 없는 空想力이 무한히 다양하게 정신 위에 그려놓은 저 광대한 薀蓄을 정신은 어디에서 획득하는 하는 것인가? 추리와 지식의 모든 素材를 정신은 어디에서 얻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나는 한 마디로 經驗으로부터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바로 이 경험에 기이하며, 종국적으로는 감각적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하는 관찰이나, 또는 우리들 자시이 지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우리의 정신의 내부의 작용에 대해서 우리가 하는 관찰이 곧 우리의 오성에게, 사고의 소재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것이 지식의 기초요,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또는 나면서부터 가질 수 있는 모든 관념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3. 감각의 대상이 관념의 하나의 源泉이다.
첫 째로 개개의 감각적 대상들에 관계하는 우리의 感官이, 이들 대상이 감관을 촉발하는 여러 가지 방법에 따라, 사물의 여러 가지 독특한 知覺을 정신 속에 전달해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노랗다, 희다, 뜨겁다, 차다, 부드럽다, 딱딱하다, 쓰다, 달다고 하는 관념, 그리고 우리가 감각적 성질이라고 부르는 모든 관념을 획득하는 것이다. 내가 감관이 이것을 정신 속에 전달해 준다고 하는 말한 것은, 감관이 이러한 지각을 정신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외계의 대상으로부터 정신 속으로 전달해 준다고 하는 의미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관념은 전적으로 우리의 감관에 의존하고 있으며 또 감관에 의해서 오성에 끌어들여진 것이므로, 이러한 관념의 그와 같은 커다란 원천을 나는 감각이라고 부른다
4. 우리의 정신의 작용이 관념의 또 하나의 원천이다.
둘 째로 오성이 경험을 통해서 관념을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초는, 오성이 자신이 얻은 관념을 사고하는 일에 종사할 때에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우리들 자신의 정신의 작용에 관한 지각이다. 이 작용은 영혼이 그것을 반성하고 숙고하게 되면, 외계의 사물로부터는 얻을 수 없었던 다른 일단의 관념을 오성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곧 知覺, 思考, 懷疑, 信念, 推理, 認識, 意志 의 諸活動과 그밖에 우리의 정신의 온갖 상이한 활동이거니와,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의식하고 있고 또 이러한 활동이 우리의 내부에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관을 촉발하는 물체로부터 받아들이는 것과 똑같이 판명한 관념들을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우리의 오성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념의 이러한 원천은 누구나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내부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의 대상과는 무관하므로 감관은 아니자만, 그러나 그것과 매우 흡사하므로 內感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이 원천 속으로부터 나오는 관념이란 정신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 자신의 작용을 반성함으로서 얻는 관념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는 다른 원천을 감각이라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원천을 反省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논문에서 반성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정신의 방식에 관해서 기울이는 注意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정신이 이러한 주의를 함으로 말미암아서 오성 속에 그러한 작용에 관한 관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내 의견으로는 이 두 가지의 것, 즉 감각의 대상으로서의 외계의 물질적 사물과 반성의 대상으로서의 내부의 우리들 자신의 정신의 작용이, 우리의 모든 관념이 싹터 나오는 유일한 기원이다. 여기에서 이 작용이라는 말을 나는 넓은 의미로 사용하여 단지 정신이 그 관념에 관해서 하는 활동분만 아니라, 때로는 이러한 활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어떤 激情 즉, 어떤 사고에서 일어나는 만족이나 불안 같은 것도 포함시킨다.
5. 우리의 모든 관념은 이 두 원천 중의 어느 하나에서 나온다.
오성은, 이 두 원천 중의 어느 하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면, 어떠한 관념도 전연 알지 못한다고 나에게는 생각된다. 외계의 대상은 정신에게 감각적 성질에 관한 관념을 부여한다. 그리고 이 관념은 외계의 대상이 우리의 내부에 낳아 놓는 여러 가지의 지각이다. 또 정신은 오성에게 자기 자시의 작용에 관한 관념을 附與한다.
우리가 이 두 가지 관념들과 그 여러 가지 樣態, 結合, 關係를 충분히 조사해 보면 우리는 이 두 가지 관념이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관념 전체에를 포함하는 것이며, 또 우리의 정신 속에는 이러한 두 가지 방법 중의 하나에 의해서 들어오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사고를 음미케 하고, 자신의 오성을 철저히 탐구케 한 다음에,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자신의 오성 속에 가지고 있는 모든 원초적 관념이 그의 감관의 대상에 관한 관념이나 또는 그의 반성의 대상으로서 고찰된 그의 정신의 작용에 관한 관념 이외의 어떤 다른 관념인가 어떤가를 진술하게 하여 보라. 그러면 그가 아무리 많은 지식이 그의 오성 속에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엄밀한 견해를 취한다면, 그는 그의 정신 속에 이 두 가지 대상 중의 하나가 각인 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관념도 없다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 관념은 오성에 의해서 무한히 다양하게 복합되고 확대되는 것이기는 하다.
24. 우리의 모든 지식의 기원
이 두 가지의 것, 즉 정신이 밖에 있는 외적 대상에 의해서 우리의 감관에 주어지는 인상과 장신 자신에 내재하는 고유한 힘으로부터 나오는 정신 자신의 작용- 이 작용도 정신 자신에 의해서 반성될 때에는 정신의 관찰의 대상이 된다- 과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지식의 기원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지서의 최초의 능력은 외적 대상에 의하여 감관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든, 또는 정신이 자기 자신의 작용을 반성할 때에 그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든, 정신 안에 만들어지는 인상을 정신이 받아들이기에 적합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어떤 것의 발명을 향해서 내딛는 第一步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연히 가지게 될 모든 개념을 쌓아올리기 위한 토대이다. 구름 위에 우뚝 솟아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온갖 숭고한 사상도 여기에서 일어나고 여기에 기초를 둔다. 정신이 매우 넓은 범위를 배회하여 思辨가운데에서 고상해진 듯이 보이는 때에도, 정신은 감각과 반성이 정신의 고찰을 위하여 제공한 관념을 조금이라도 넘어서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25. 단순관념을 받아들일 때에 오성은 대체로 수동적이다
이러한 部面에 있어서는 오성은 단지 수동적이다. 그리고 오성이 이러한 端緖 즉 이를테면 지식의 소재를 가지느냐 가지지 않느냐 하는 것은 오성 자신의 힘이 미치는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관의 대상은 대다수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특유한 관념을 우리의 정신에 강제로 밀어 넣으며, 우리의 정신의 작용은 우리들로 하여금 적어도 그 관념의 희미한 관념이나마 가지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도 자신이 사고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전연 모르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러한 단순관념이 정신에 제공될 때에, 오성은 이미 그것을 받기를 거부할 수도 없고, 이 단순관념이 각인 될 때에 그것을 변경할 수도 없고, 또 그것을 말살하고 자신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도 없다. 이것은 마치 거울 앞에 놓인 대상이 거울 속에 만들어 놓는 映像 즉 관념을 거울이 거부하거나 변경하거나 말소할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이 우리의 器官을 여러 가지로 촉발하는데 따라서, 정신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가 없고, 이 산상과 결부되어 있는 관념을 지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제 2 장 단관념에 관하여
1. 非複合的인 現象이다
우리의 지각의 性質. 樣式, 範圍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에 관해서 주의깊게 관찰되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곧 이 관념 중의 어떤 것은 단순하고 어떤 것은 복합적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우리의 감관을 촉발하는 여러 성질들은 사물 그 자체에 있어서는 잘 결합되고 혼합되어 있으므로 상호간에 분리도 거리도 없지만, 그러나 이 성질들이 정신 속에 형성하는 관념들은 감관을 통해서 단순하고 서로 섞이지 않은 채 들어온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어떤 한 사람이 동시에 운동과 색을 보며 손이 동일한 밀초 조각에서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느끼는 것처러므 비록 시각과 촉각은 때때로 동일한 대상으로부터 동시에 상이한 관념들을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동일한 물체에 있어서 그처럼 결합되어 있는 단순관념들은 상이한 감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관념이나 마찬가지로. 완전히 따로 따로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 사람이 한 조각의 어름에서 느끼는 차가움과 단단함은, 백합이 향기와 백색, 또는 설탕의 맛과 장미꽃의 향기나 마찬가지로, 정신 속에 있어서는 서로 별개의 관념들이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그가 이러한 단순관념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명석판명한 지각보다 더 명백한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또한 이러한 단순관념들은 각각 그 자체가 비복합적인 것이므로 정신 속에 있는 하나의 꼭같은 현상이나 개념 외에는 아무 것도 내포하고 있지 않고 또 상이한 여러 관념으로 구별될 수도 없다.
2. 정신은 단순관념을 만들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
이러한 단순관념은 곧 우리의 모든 지시의 소재이거니와. 이것은 기술한 두 가지 방법 즉 감각과 반성에 의해서만 정신에 떠오르고 정신에 주어진다. 오성은 일단 이 단순관념들을 축적하게 되면 거의 무한히 다양하게 그것을 반복하고 결합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복합관념을 임의로 만들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才智와 넓은 오성의 힘으로도, 아무리 재빠르고 다양한 사고로도, 앞에서 말한 방법에 의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하나의 새로운 단순관념을 創案하거나 案出 할 수는 없다. 또 오성의 어떠한 힘으로도 이미 있는 단순관념을 파괴할 수도 없다, 자기 자신의 오성이라고 하는 이 소세계에 있어서의 인간의 지배권은 가시적 사물들의 대세계에 있어서와 아주 꼭 같은 것이다. 이; 대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힘은 제 아무리 기술과 숙련에 의해서 운용된다 할지라도, 자신의 손에 닿는 기성소재를 합성하고 나누는 것 이상은 미치지 못하고, 새로운 물질의 극소의 입자를 만든다든가 이미 존재하는 것의 원자 하나를 없애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관을 통하여 외계의 대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또는 반성을 통하여 외계의 대상에 관한 자기 자신의 정신의 작용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단순관념을 자기의 오성 속에서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 속에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라도 자기의 미각을 한번도 자극해 본 일이 없는 어떤 맛을 상상해본다든가, 자기가 냄새를 맡아본 일이 없는 어떤 향기의 관념을 만들려고 노력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또한 눈이 먼 사람이 색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귀가 먼 사람이 소리의 참으로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짓겠다.
제 12장 복합관념에 관하여
1. 정신에 의하여 단순관념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정신이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관념을 고찰해 왔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감각과 반성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단순관념이거니와, 정신은 이러한 관념을 하나도 스스로 만들 수가 없으며, 전혀 이 관념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정신은 그것이 가지는 모든 단순관념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수동적이지만, 정신은 또 자기가 가지고 있는 단순관념을 소재와 기초로 하여 그로부터 다른 관념들을 만들어 내는 그 자신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한다. 정신이 그의 단순관념에 대하여 힘을 행사할 때의 정신의 활동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이다. 즉 (1) 여러 개의 단순관념을 결합하여 하나의 복합관념을 만든다. 모든 복합관념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다. (2) 제 2의 활동은 단순관념이든 복합관념이든 두 개의 관념을 모아 놓되, 그것을 결합하여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나란히 배열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신은 모든 관계의 관념을 얻는다 (3) 제 3의 활동은 어떤 관념의 현실적 존재에 있어 그것에 수반되는 일체의 다른 관념으로부터 그 관념을 분리시키는 일이다. 이것을 抽象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추상에 의해서 정신의 모든 일반적 관념이 만들어진다. 단순관념들은 여러 가지로 함께 결합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정신은 여러 개의 단순관념이 함께 결합되어 있는 것을 하나의 관념으로서 고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더욱이 이것은 이들 단순관념이 외계의 대상에 있어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할 뿐만 아니라, 정신 자신이 단순관념들을 결합시켰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기도 하다. 그처럼 여러 개의 단순관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관념을 나는 복합관념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美, 感謝, 人間, 軍隊, 宇宙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복합관념은 여러 가지 단순관념들이나 또는 단순관념으로 구성된 복합관념들이 뒤섞여서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정신이 그렇게 하고자 하면 각각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자적인 전체로서 고찰될 수도 있고 하나의 명칭에 의하여 표현될 수도 있다.
2. 任意로 만들어진다.
정신은 관념들을 반복하고 함께 결합시키는 이러한 능력을 발휘할 때에, 감각이나 반성이 부여한 것을 무한히 넘어서서, 그의 사고의 대상을 변경하고 확대할 수 있는 큰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힘은 어디까지나 정신이 그러한 두 가지 원천으로부터 받은 단순관념에 국한된 것이요, 이 단순관념이 정신의 모든 구성물의 궁극적인 소재인 것이다. 왜냐하면 단순관념은 모두가 사물 그 자체에서 유래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물 자체에 관해서는 정신은 정신에 제시되는 것 이상의 것도, 또 그 이하의 것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은 감각적 성질에 관해서는 감관을 통해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관념도 가질 수가 없으며, 사고하는 실체의 작용에 관해서는 정신이 정신 자신의 내부에서 발견하는 것 이외의 어떠한 다른 관념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나 정신이 일단 이러한 단순관념을 획득해 놓으면, 정신은 단지 관찰과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즉 정신은 자신의 힘에 의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복합관념을 만드는데, 이것은 결코 정신이 그처럼 결합관계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3. 양상이거나 실체이거나 관계이다.
복합관념이 아무리 복합되고 다시 복합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그 수가 무한하고, 또 그것이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고 사람들의 사고를 채워주고 즐겁게 해 주는 것이라 할지라도, 복합관념은 모두 다음의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양상, 실체, 관계가 그것이다.
4. 樣相
첫째로 복합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신 속에 스스로 존립한다고 하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지 않고, 실체에 의존된 것 또는 실체의 성질이라고 생각되는 복합관념을 나는 양상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삼각형, 감사, 살인 따위의 말로 표현되는 관념이 그것이다.
6. 단일 실체와 집합적 시체
둘째로 실체의 관념은 스스로 존립하는 개개의 특수한 사물들을 나타낸다고 생각되는 단순관념들의 결합이요, 이 가운데에서는 실체라는 假定的인 또는 혼란한 관념, 예를 들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관념이 언제나 첫째의 주요한 관념이다. 그리하여 만일 실체에 어느 정도의 무게, 硬度, 柔軟性, 可熔性을 가진 어떤 희미한 백색이라는 단순관념이 결부되면 우리는 납의 관념을 얻는다. 또 운동, 사고, 추리의 능력을 가진 어떤 형태라는 관념의 결합이 실체에 결부되면 사람이라는 통상적 관념이 된다. 그런데 실체 가운데에도 두 종류의 관념이 있다. 하나는 단일 실체의 관념인데, 이것은 사람이나 양의 관념과 같이, 실체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경우요, 다른 하나는 함께 모인 여러 개의 실체의 관념인데, 사람들의 한 떼라든가 양의 한 무리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여러 실체가 함께 모여서 된 이러한 집합적 관념은 그 하나 하나가 한 사람이나 하나의 단위의 관념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단일한 관념인 것이다
7. 관계
셋째로 마지막 종류의 복합관념은 우리가 관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관념을 다른 관념과 함께 고찰하고 비교하는 데에 성립한다.
8. 가장 심원한 관념도 이 두 원천으로부터 나온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정신의 진보의 자취를 더듬어 가서, 어떻게 정신이 감각과 반성으로부터 받은 단순관념을 되풀이하고 보태고 결합하는가를 주의하여 관찰한다면, 우리는 처음에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더 진전을 보게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우리의 관념의 기원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우리는 아무리 심원한 관념이라도, 아무리 그것이 감각이나 또는 우리들 자신의 정신의 어떤 작용과는 먼 듯이 보일지라도, 그것은 역시 오성이 감각의 대상이나 이 대상에 관한 오성 자신의 작용으로부터 획득한 관념들을 되풀이하고 함께 결합함으로써, 스스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관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감각이나 반성으로부터 유래되는 것이며, 정신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통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도달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도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 정신의 능력은 감각의 대상으로부터 또는 정신이 자기 자신 속에 있음을 알고 있는 이들 대상에 관한 작용으로부터 받은 관념에 관하여 사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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