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된 시들과 표현되지 않은 시들에 관한 생각
김백겸
○ 心魂이란 자아를 초월하는 정신의 자율성이며 신성한 힘(Numinose)이며 강렬함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다(이부영, 『아니마와 아니무스』)
○ 일상의 속악한 사물에서 聖의 속성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예언이나 찬양으로 흐르지 않는다. 비밀은 일상의 수면아래 잠겨 있으며 시인은 그 비밀을 은밀한 인식아래 감춘다. 시인의 욕망이 바라보는 ‘오브제 쁘디 아’(라깡)로서의 사물은 환상의 기쁨과 시적인식의 원천이다.
○ 시들은 다 불행과 憂愁의 시들이다. 밝은 주제도 수면아래 리듬과 운율의 그늘을 깔고 있어야 밝은 주제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극도로 절제된 지적계산이 들어간 감정일 때 시인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혹하다.
○ 시를 맹렬히 보고 쓸 때는 여름날의 플라타나스처럼 수사가 무성한 시들이 좋더니 이제는 시 나무의 줄기가 잘 보이는 가을 날 같은 시들이 잘 보인다.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데 이러다가 늙으면 골계미만 남은 禪詩취향이 되겠지. 시의 정열이 드러나면 에너지가 화려한 여름나무 시가 되고 감추어지면 에너지가 뿌리로 내려간 겨울나무 시가 된다.
○ 꿈과 사랑과 인생이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여분을 남긴다. 개인사뿐만 아니라 인류사와 문화사가 다 그렇다. 문화라는 기호와 무늬로 표현된 양이 백분지 일쯤은 될까? 시인은 홀연忽然이라는 미묘한 마음의 상태를 빌어서 하지 못한 말씀을 하고 싶으나 그 역시 불완전하다.
○ 삶과 죽음은 경계가 애매하면서도 서로를 반면거울처럼 쳐다보게 한다. 생명의 목적이 종족보존이라면 하루의 사랑과 번식이 중요하다. 인생이 하루살이의 시간처럼 일회적인가? 그렇다면 쾌락제일주의가 현명하다. 인생이 하루살이를 넘어선 긴 시간의 드러난 부분인가? 그렇다면 다음 시간을 위해 힘을 아껴야 하니 견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 꽃은 식물의 섹스이니 꽃앞에 서면 同氣感應이라 동물인 인간도 색욕과 생명력을 느낀다. 식물과 동물은 음양이 반대여서 인간은 머리가 하늘에 가고 발이 땅으로 가는데 식물은 머리(뿌리)가 땅으로 가고 발(가지)이 하늘로 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꽃 피는 순간이 귀중한 축복임을 깨닫게 된다. 한시에도 명 귀절이 있다. 歲歲年年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작년에나 올해나 꽃은 똑같이 피는데, 작년에나 올해나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똑같지 않다).
○ 에로스란 분리된 자아가 타자(연인.애착물)와 하나가 되려는 소망이고 죽음도 자아를 타자로 귀일시켜려는 욕망이니 결국 같은 욕망의 뿌리이나 방향만 다를 뿐이다, 에로스란 죽음의 제어를 받아 천천히 불타오르는 생의 기름이다. 제어를 받지 아니한 에로스(사랑의 광기)는 일시에 기름을 써서 불타오르고 곧바로 죽음의 시간으로 간다.
○ 기호란 사람의 의지 감정 지식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사물’의 모사인 동시에 인간 내 심적 작용과의 결합물이다. 기호자체를 의미 대상으로 삼는 고전기호론자들의 생각들이 있지만 나는 별로 찬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계의 무한운동과 생생한 감각을 놔두고 죽은 시체를 만지는 장의사같은 사람들이다, 죽은 시체가 최고의 석학이나 미인인들 무엇하겠는가.
○ 영혼과 윤회에 대한 확신은 세계관을 다르게 한다. 『만들어진 신』이라는 저서에서 도킨스는 인간은 죽는 공포와 존재의 불안 해소를 위해 신과 사후세계를 만들었다고 기술했다. 과학적 증거란 측정가능한 사실과 경험만을 다룬다. 현상이 있으나 합리적사고로 설명할 수 없으면 과학영역 밖이다. 종교와 다른세계에 대한 믿음의 원천은 신비주의자들의 비전과 체험에 의한다. 그런 신비주의자들의 체험에 예수나 석가 마호메트와 같은 성인들이 있으며 종교인들은 이들의 체험이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 몽상가들은 꿈을 마시고 고통을 달래지만 현실인들은 술로 해결한다. 꿈과 술. 전자는 정신을 취하게 하고 술은 육체를 취하게 한다. 세상을 취생몽사로 넘어갈 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 표현된 시가 있고 표현되지 않은 시가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가 보이는 시보다 더 큰 부피와 무게로 다가올 때 시의 긴장과 사유는 높아진다. 양자는 시라는 용기 안에서 행복한 결합을 해야 한다. 연인들이 한 몸이 되어 엑스타시에 이르듯이 보이는 시와 보이지 않는 시는 연인들의 정신으로 결합되는 연결고리로 시의 기쁨을 제공한다.
○ 시인들의 사회적 보상이 낮은 사회이다. 천신만고 애간장을 끓여 시를 생산해보았자 누가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야지. 돈이 되나. 권력이 있나. 명예라도 얻어야 분이 덜할 것인데 이만 명 인플레시인사회에서 시인들은 이름 내기도 어렵다. 시인들이여 눈물을 그쳐라. 좋은 시라면 눈 밝은 사람들이 읽어준다. 자화자찬해서 나 같은 사람이 읽어주고 소개한다.
출처 /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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