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대한 애착
고성만 (시인)
억새 흔들리더니
흰 눈발 날리는 벌판
잿빛 옷의 스님이 가로질러오면
인사드려라
곳간으로 들어가시는 어머니
나는 일망무제의 바다를 그려보았다
검푸르게 깊어가는 물결 위
흘러가듯 떠 있는 섬
멀지 않은 골짜기 범종 소리에
고물고물 춤추는 물고기 고동 갈매기들
드넓은 밤하늘에 올라가서
별자리가 되는 꿈 속
갖다 드려라
어머니께서 맡기신 낟알을
스님이 내민 자루에 부을 때
악아 고맙구나 반짝,
물기 스쳐간 눈매를 보고 깨달았다
전생에 오누이 혹은
가시버시였던 인연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일이
곡식 베어낸 들에
푸르게 돋아나는 싹 같으리라는 것을
― 졸시, 「광활」전문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오늘이 10월의 마지막 날, 내일부터는 11월이다.
스무 살 무렵 어떤 여자가 말했다. 10월 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고, 그래서 혼자 내장사에
다녀왔다고. 단풍잎이 매우 고왔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도 혼자 내장사에 다녀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따로 가면서도 같이 가는 듯, 같이 가면서도 따로 가는 듯, 따로 지만 같이 있고 같이 있지만 따로 인 느낌.
바다에 대한 나의 관념이 그러하다.
바닷가에서 살 때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를 동경했었다. 도회지의 불빛이 그리웠고 밤거리의 낭만이 그리웠고 함께 놀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나는 고향 바닷가에 도착하자마자 도시를 앓았다. 채석강의 바람은 유배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고, 밤 파도 소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통곡이었다.
바다를 떠나온 지금, 바다가 그립다. 벤치에 쌓인 모래를 중심으로 펼쳐진 기나긴 해변, 푸른 물결 위 나뭇잎처럼 떠서 지나가는 여객선, 깎아지른 절벽에 아스라이 핀 구절초 아홉 마디마디, 다급히 몰아오는 폭풍우…….
아버지는 내게 바다를 가까이하지 말라 하였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바다로 가는 길목이 사무쳐 밤 내내 서성거린다.
추수 끝난 들판으로 사람 하나가 가로질러왔다. 스님이었다.
김제 만경, 부안 동진 평야는 넓다. 지평선이 보인다. 그 끝에 절이 있고, 절 너머에 바다가 있다. 망해사, ‘망한절’이다. 망해사가 있는 심포 앞바다가 새만금간척지에 포함되었므로 망해사는 이제 더 이상 바다를 바라볼 수 없는 절이다. ‘망해사 낙서전’은 오백 년 동안 바다를 꿈꾸었으나, 오고가는 세월, 안도감, 안타까움, 정과 한, 이 모두를 붉은 화염으로 태우던 바다는 이제 단단한 땅으로 바뀌게 된다.
망해사에서 부안 쪽으로 내려오면 김제군 광활면이다. 일망무제, 드넓은 땅이다. 그 들을 가로질러 탁발하러 오는 스님을 보면서, 인연이란 참으로 드넓다는 생각을 했다. 인연을 다스리는 것은 종(鐘)이다. 종소리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담아 종을 울린다.
옛날 이 땅은 싸움터였다. 6․25가 그랬고 동학농민혁명이 그랬고 수많은 전쟁이 그랬다.
우리는 과거 언젠가 오누이 혹은 가시버시, 사랑하는 사이였다. 난리 통에 뿔뿔이 흩어진 후 어느 거리에선가 물기처럼 ‘반짝,’ 만났다 헤어지는 사람들. 만남인 줄도 모르고 헤어짐인 줄도 모르는 그 감정을 나는 ‘어머니’와 ‘스님’으로 치환하였다. 설명할 길 없는 상실감은 ‘어머니’이고, 몸서리치는 외로움은 ‘스님’이다.
전생에 수 만 번 옷깃 스쳐야 후생에 한번 만난다 하지 않는가!
졸시,「광활」을 쓰긴 썼는데 뭔가가 아쉬워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던 늦가을 어느 날 문득 ‘곡식 베어낸 들’에 ‘푸르게 돋아나는 싹’이 눈에 들어왔다. 벼를 베어내고 나면 그 자리에 순이 돋아난다. 만약 우리나라가 열대나 아열대지역이었더라면 이모작이 가능했을 테지만 머지않아 눈발에 묻혀 열매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은 자란다. 그리하여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일이/ 곡식 베어낸 들에/ 푸르게 돋아나는 싹 같으리라는 것을’과 같은 결구를 얻게 되었다.
달력을 한 장 뜯어내니 온통 잿빛이다. 11월이다. 귀신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들녘에서는 마른 잎새 서걱이는 소리, 노동에 지친 관절 삐걱대는 소리, 들린다. 햅쌀 여러 포대 들여놓은 다음 청국장 끓여 진한 국물로 쓰린 속을 다스린다. 뒤를 돌아본다. 해놓은 일도 없으면서 시간만 보낸 것 같아 아쉽다.
나는 계절을 보내고 맞이할 때마다 몸살감기를 앓는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 사춘기를 겪어야하듯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선 ‘환절기’를 건너야한다. 더구나 올해에는 치료가 힘들고 전염성이 강한 독감이 출현하여 세상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계절을 보내고 맞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말수가 줄었다
붉게 물든 감 잎사귀 집어 드는 아침
마른 갈대 서걱서걱
바다로 가는 길목
커다란 항아리를 울리는 종소리
탈곡한 짚 다발 속에 들어가
잘 익은 홍시를 나누어먹다가
텅 비어 가는 들판을 바라보는데
상형문자를 그리는 철새 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느 날 나그네가
절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내가 기러기 형상의 섬을 가리키자
표표히 들판을 가로지르는 옷자락
가뭇없이 사라진 후
뒤돌아보는 눈 앞
흰 꽃잎이 휘날렸다
― 졸시, 「환절기」전문
고성만 시인
▪ 전북 부안 출생
▪ 1998년『동서문학』으로 등단.
▪ 시집으로『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가 있음.
출처 / 우리시회 카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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