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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어떤 주검, 나무들의 무덤 그리고 어떤 죽음 / 장성호

by 丹野 2010. 5. 10.

 

 

    어떤 주검, 나무들의 무덤 그리고 어떤 죽음

                                      

                                                                                                                        장성호 (시인)

 

 

 

우면산 질퍽한 황톳길 오른다

어떤 나무 한 그루

죽은 소처럼 쓰러져 있다

그날의 붉은 울음소리 아직도

그곳에 소리의 뼈로 박혀 있다

깊게 팬 나무껍질

검은 핏빛이다

숨죽이고 다가가

가만히 손을 대본다

물컹, 손바닥이 흥건하다

그간 뜨거운 눈길 한 번

따스한 손길 한 번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길가 벤치에 모로 누운

덥수룩한 한 보헤미안

비에 온몸 흠뻑 젖어 있다

그날의 밭은 기침소리 아직도

그곳에 소리의 뼈로 박혀 있다

땟물 진 겉옷

검은 핏빛이다

                     - 졸시「어떤 주검」전문

 

 

  영화, 연극, 소설, 시와 같은 예술적 창작품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죽음을

경험하도록 해준다. 예술의 힘은 무한한 상상력과 몽상으로 은유적인 죽음

을 묘사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고 창안한다. 그 죽음은 인격적인

죽음이다. 그러나 때로는 현실세계에서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

다. 인격적인 죽음은 다름아닌 타인-되기. 타인-되기란 이중적으로 주체

의 죽음이자 타인으로부터 출현하는 새로운 주체-되기다.

  타인-되기를 사유하고 실천하게 될 때 마침내 시를 짓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 죽음은 느린

우물이다. 우울, 낯섦, 강물, 술, 밤, 보름달, 어둠, 가을겨울, 하강, 흩어짐,

감성, 안, 접기, 포옹, 울음, 감쌈, 흡수, 보자기, 자궁, 방랑자.

 

  죽음은 느림이다. 느림을 끝까지 밀면 느린빠름에 도달한다. 느린빠름은

죽는삶이다. 죽는삶은 부정, 원한, 악의, 저주, 질투가 아니다. 자살, 타살,

학살과 같은 생물학적인 죽음도 아니다. 죽는삶은 긍정이고 희망이며 또

다른삶이다. “ 당신은사랑받기위해태어난사람” “걱정말아요” “살아있

음에 감사하라” “서두르지 말라 그러면 행복하리라.”

 

  죽는삶은 죽음의 극한이며 죽음 너머의 삶이다. 불에 제 몸을 태우고. 그

재 속에서 부활하는 불사조이다. 불사조, 불새, 피닉스는 불멸의 삶, 불사의

삶을산다. “ 천사가날아다니는하늘위에서라도나는결코죽지않으리”

 

 

우면산 중턱마다 터 잡은

푸석푸석한 통나무들

장작더미처럼켜 켜이 쌓여

수 년째 동행하고 있다

길 잃은 작은 날짐승만

잠시 머물다 가는 그곳

바람 소리만 아득히 들려온다

비쩍 마른 살과 뼈들이

바람과 함께 사그라지고 있다

죽어가면서도 낯선 이방인들

서로 부둥켜안고 동행하고 있다

지난 숱한 나날들

슬픔과 기쁨의 소용돌이

바람 소리에 오롯이 담아낸다

저기 푹 썩은 나무들

밑바닥 무너지는 소리의 뼈

붉은 황토 속 깊이박힌다

이 먹먹한 봄날 나도

낯선 이방인들과 정처없이

동행하고 싶다

                     - 졸시「나무들의 무덤」전문

 

 

  시간이 만물을 집어 삼켜 시간-강물이 된다. 사람도 강물이 된다. 시간

이 사람을 만든다. 이데아 세계에서 내쫓긴 환상이며 허상인 시뮬라크르.

그 몽환적인 허상이 시간-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또 다른 나는 다름아닌 타자임을 알게 될 때 마침내 그는

죽는삶이자 불멸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는 타인의 죽어

감을 통하여 나의 죽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자아가 밑바닥까지

처참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는 가

능성의 불가능성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시와 소설은 우리에게 불사의 삶을 살게 해 준다. 불사의 삶이자 죽는삶

을 달리 말하면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드는 삶이다. 아마도 여러 개

의 다양한 복수의 세계로의 넘나듦이다. 어느 한 세계에 너무 빠지게 되면

암적인 또는 생물적인 죽음에 이르게 된다. 영화, 연극, 시, 소설 등 문학작

품은 바로 꿈과 현실 세계를 휘젓고 날아가게 해준다.

 

 

음습한 동굴 속에서

주린 배 맞대고 친구들과

뒤엉켜 지내던 그 사람

어느 날 영문도 모르고

세상 밖으로 끌려나온다

얇은 비닐 같은 뱃가죽

임산부처럼 부풀어 오른다

검은 복수가 차고 있다

붉은 해 넘어간다

차디찬 바깥으로

질질 끌려나가고 있다

손톱자국 같은 초승달 뜬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

그의 뱃속 샅샅이 뒤지고 있다

스멀스멀 안개 낀 새벽녘

쓰레기 수거차 종이 울린다

온몸 상처투성이 그 사람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다

그가 머물던 바닥

흥건히 젖어 있다

                 - 졸시「어떤 죽음 」전문

 

 

 

 

 장성호 시인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졸.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

2005년《시와창작》으로 등단

시집으로『가을 겨울 봄 여름』이 있음

pinkdunt@naver.com

 

출처 / 우리시회 카페 http://cafe.daum.net/urisi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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