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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날마다 밀항을 꿈꾸는 소년의 신화

by 丹野 2009. 12. 15.

                                                                        p r a h a

 

 

 

               날마다 밀항을 꿈꾸는 소년의 신화 / 김규성

 

 

 

 

 우리詩 2008년 1월호 고성만 신작소시집 해설



  바슐라르는 “시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몽상의 추억을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상상력은 현실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 아니고 현실을 넘어서 현실을 노래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신작 소시집에 실린 고성만 시인의 시편은 신화적 상상력이 시적 모티프와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설화적 서사와 점액질적 서정을 구조물로 추상적 비현실을 실제처럼 구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 있어서 ‘신화적 상상력’이란 시인들의 유토피아 지향성이나 고향의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으로, 상상력의 구현을 통하여 신화 속의 이상향을 주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세계로 이끄는 장치를 말한다. 신화는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인 유아적 상상력의 현현이다. 그러나 그 원시의 심연에는 결국 변증법의 포로이기 마련인 논리를 뛰어 넘어선 순수 직관이 내장되어 있다. 시인들은 그 직관을 끌어내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그 언어를 통하여 자동기술과도 같은 나름의 신화를 재창조한다. 그러기에 신화의 형식과 언어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의 시가 탄생한다. 신화의 원형인 꿈은 꿈꾸는 자의 내면적 자료이며 미처 발효되지 않고 내장된 무의식의 물질화이다. 

  생명체의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인류의 무의식 역시 그 원형질인 물의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시인들은 저마다의 선사시대 사료인 물의 역사시대를 기술하는 기자들이다. 고성만 시인도 원시적 체험의 잠재태인 물과 어둠의 기억을 되살려 신화를 창조한다. 그 신화의 일환인 시를 들여다보자.

 

    “밖으로 잠긴 문안에서 <어둠>을 사랑하는 두 개의 별” - 「소년과 소녀」

    “<우물>곁을 떠난 지 몇 십 년 후”, “모래가 섞인 <물>을 끌어다 <식수>로 먹어온”, “<우물> 바닥을 핥는 혓바닥” - 「우물을 찾아서」

    “<밤>엔 별자리, 낮엔 <강물> 바라보다 소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청년” 

    “<물> 젖은 눈동자 속 유유히 <헤엄치는> 고니 떼” - 「겨울과 봄 사이」

    “<어둠> 속에서 아내가 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바닷가>를 떠나 노을 진 <수평선>을 <흘러흘러> 노랗고 파란 지붕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만나면 <열대어>처럼 <헤엄>”쳐 “<조개>를 뒤지는” - 「南港」

   “커다란 뱀처럼 숨어드는 <강>”

    “댓살 쪼개던 아내의 실수”로 <실명>한 남편

    “은하의 <냇물>이 마를 즈음/ 뿔과 눈 사이/ 그 거리만큼/가로놓인 <호수>” - 「강과 호수의 거리」 

 

  등의 시구에서 보이는 것처럼 시편마다 섹스의 배경이자 상징인 물과 어둠의 이미지로 충만해 있다. “초겨울 밥상 집어던지는 아버지를 피해 부리나케 아랫집 마루를 두드리며 도와” 달라고 애원하던(「우물을 찾아서」) 유년과 “날마다 밀항을 꿈꾸는”(「南港」) 사춘기적 나르시시즘이 우주적 나르시시즘으로 확대재생산 되는 그의 신화는 “돌 속에 고인 눈물”(「南港」)처럼 딱딱한 고체조차도 액체화한다. 그리고 “똑똑 떨어진 피”와 “산딸기의 즙”(「겨울과 봄 사이」)처럼 끈끈한 그 물은 “한 무더기/ 푸른 거웃 심어놓고/커다란 뱀처럼 숨어드는 강”(「강과 호수의 거리」)을 흘러 에로티즘의 바다를 이룬다. 시「南港」은 그 결정판이다.


    날마다 밀항을 꿈꾸는 소년들이 아열대 나무처럼 자라는 남쪽 항구


    돌 속에 고인 눈물은 어떤 맛이고 앞뒤 꼽추는 어떻게 관계하는 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는데 어느 사리 때 어머니께서 따오신 석화를 열고나서야 눈물이 간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꼽추가 자식을 여럿 두었다는 소문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둠 속에서 아내가 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소리 없이 흘린 눈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세상의 오만 잡것들 만났다 헤어지는 일이 어디 대수인가 마는


    부지런히 꽃술을 핥는 동박새의 바닷가를 떠나 노을 진 수평선을 흘러흘러 노랗고 파란 지붕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만나면 열대어처럼 헤엄쳐 조개란 조개는 모두 뒤져서 눈물 빛 진주를 훔치는 거야

 

    이제 더 이상 배 밑창에 숨을 수 없는 나이  


    꼽추의 자식들이 지 애비 무덤을 한 번이라도 찾았는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출렁이는 남쪽 항구

                                          -「南港」전문


  제목만으로는 남항이, 남쪽에 있는 항구를 말하는지 아니면 남항이라고 불리는 항구가 따로 있는지 막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시「南港」을 굳이 사실적으로 해석하려드는 것은 무의미하다. 손가락을 보다가 달을 놓치고 마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시인의 숨은 전략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밀항을 꿈꾸는 소년”은 성에 눈뜨는(장차 불륜까지고 탐하는)에로티즘의 예비 전사이다. 유난히 호기심 많은 사춘기를 치른 시인의 원형질이자 분신이기도 한 “소년”은 “마리아의 딸”로 “가지런한 잇바디 지저귀는 작은 소녀”(「소년과 소녀」)와 “조릿대 우거진 외딴 집 뒤안 푸른 하늘 고여 찰랑이는 눈동자”, “속으로 함께 들어가고픈 소녀”(「우물을 찾아서」)그리고 “눈먼 아비 귀머거리 어미 곁에서”, “밤엔 별자리 낮엔 강물 바라보”(「겨울과 봄 사이」)는 벙어리 소녀를 만나 “돌 속에 고인 눈물”의 맛을 본다. 그 후 “앞뒤 꼽추는 어떻게 관계하는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던 미개한 성은 “부지런히 꽃술을 핥는 동박새의 바닷가를 떠나 노을 진 수평선을 흘러흘러 노랗고 파란 지붕 검은 피부의 사람들을 만나면 열대어처럼 헤엄쳐 조개란 조개는 모두 뒤져서 눈물 빛 진주를 훔치는” 노골적인 섹스 편력에 이르게 되고 급기야는 “어둠 속에서 아내가 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길 가던 과객과 발정 난 아내가 아래 정지에서 몸을 풀던 중 남편에게 딱 걸려서 대칼로 생목이 짚”(「강과 호수의 거리」)이는 등의 불륜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효과적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독자들의 오해 속에서 “더 이상 배 밑창에 숨을 수 없는” 시인은 짐짓 딴전을 부리듯 “꼽추의 자식들이 지 애비 무덤을 한 번이라도 찾았는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출렁이는 남쪽 항구”를 화두로 던지며 신화 본연의 에필로그를 장식한다.

  베다 경전에서 물은 가장 원초적인 모성을 상징한다. 프로이드가『정신분석 서설』에서 이야기하듯 꿈의 경우, 탄생은 물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비옥성을 상징하는 물은 아이의 탄생을 비유하는 이미지이다. 한 방울의 물속에서 최초로 세례를 치르는 인간은 밀물처럼 바다로 달려나가 열 달 꼬박 물세례 속에서 유영하다가 이윽고 끈끈한 피의 세례를 치르고 나서야 세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인류 탄생의 원천인 물은 불의 결과물이다.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적 에너지의 발효인 불을 통해야만 한 방울 물속의 정자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 불은 자기가 생산한 물에 의해 진화되고 만다. 이를테면 교미가 끝나자마자 암컷에게 먹히는 물고기의 경우와 비슷하다.

  시인이 몸소 겪은 유년의 심연에 저장된 원시적 충격. “초겨울 밥상 집어던지는 아버지를 피해 부리나케 아랫집 마루를 두드리며 도와주세요”(「우물을 찾아서」)라고 애원하던 “ 나”는 그를 무의식의 바다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의 불안과, 공포 속의 갈증은 섹스에 대한 은밀한 욕구이다. 그리고 한참 달아오른 불 속에서 물을 찾는 것은  클라이맥스에서 야기되는 한 방울의 물 즉 정액을 생산하기 위한 본능의 휘발이다. 한편 그 한 방울의 물은 곧 뜨겁게 달아오른 불덩어리의 진화를 의미한다. 탄생을 위한 눈부신 제의인 것이다. 불과 물은 상극이면서도 인류에게 필수 불가결한 절대적 요소이다. 인류는 그 두 요소에 의해 탄생하며 유지된다. 그러나 둘은 끊임없는 갈등과 화해를 반복함으로써만이 생명과 우주의 원리인 ‘위대한 모순’의 일원 이차방정식을 성립시킬 수 있다. 신화는 그 불가해한 진리의 상징적 언어화이다. 그러나 그 언어는 늘 불충분하다. 그리고 수시로 변화한다. 그리하여 갈증은 계속된다. 그 갈증이 시인들에게 고통을 보상으로 시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처럼 늘 ‘언어와 실어의 경계’를 헤매는 고성만 시인이 “돼지우리 고샅을 태우던 화염 속에서 언뜻” 본 것은 “목이 말라 목이 말라” 외치며 “혓바닥”을 늘여 빼, “우물 바닥을 핥는”(「우물을 찾아서」) 벙어리의 벌린 입이다.

 

    벌컥 열린 방문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의 손에 들린 양동이 쇠스랑에도 아랑곳없이 훨훨 날아다니 는 붉은 보자기들 헛간 돼지우리 고샅을 태우던 화염 속 언뜻 보았다


    목이 말라 목이 말라


    우물 바닥을 핥는 혓바닥

    벙어리의 벌린 입을

                   ―「우물을 찾아서」 부분


 

    물 젖은 눈동자 속 유유히 헤엄치는 고니 떼 아아, 한숨 쏟던 청년이 아름드리 참나무를 잘라 만들기 시작한 마차 위 오색 무지개로 치장한 가마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부모를 두고 떠날 순 없다고 손가락을 펴는 소녀


    움푹짐푹 패인 마차바퀴 자국을 따라 애기별꽃 흰 얼레지가 무더기무더기 피어났다

                        ―「겨울과 봄 사이」부분


  그의 시에 신화의 알레고리로 자주 등장하는 불구자들. “어떻게 관계하는가”가 ”풀리지 않는 의문이”던(「南港」)꼽추와 “댓살 쪼개던 아내의 실수”(「강과 호수의 거리」)로 실명한 소경 그리고 위의 시에서처럼 심한 갈증에 혓바닥으로 “우물 바닥을 핥는”(「우물을 찾아서」) 벙어리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부모를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어서 손가락을 펴는”(「겨울과 봄 사이」)벙어리 소녀는 고성만 신화의 원천이자 주제이다. 그는 그 벙어리의 언어를 찾아 광대무변한 시적 탐험과 유랑을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단순히 섹스만을 읽었다면 그것은 작품의 겉만 핥은 것으로 오히려 그런 독자의 상상력이 불순하다. 그가 섹스라는 손가락을 통하여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 비로소 시에 대한 진정한 독해가 이루어진다. 그의 신화가 지시하는 ‘달’은 곧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언어 이전의 언어다. 발효하지 못한 무의식처럼 내밀한 우주적 언어를 세상의 언어로 드러내기 위해 그는 신화를 창조한다. 섹스는 그 신화적 상상력의 역동적 알리바이일 뿐이다.  

  융은 “인간에게는 우리들의 발상이나 행동을 선도하는 적당한 수로의 역할을 하는 심리적인 기능이 선천적으로 준비되어 있는데 그것은 원형적인 이미지로 우리들에게 지각된다”고 하며 “인간의 의식이 다시 어린이 나라로 되돌아가서 새롭게 무의식과 연결되면 인간은 스스로의 생명의 원천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역사는 더 좋은 상징, 즉 태고유형을 의식적으로 완전히 실천하기 위한 상징―개성화―을 찾아온 도정이다. 시인들이 창조하는 신화, 다시 말해 신화적 기법을 차용하는 시 형식은 기하학 못지않은 고도의 구상적 얼개를 생명으로 한다. 따라서 정치한 밀도를 지니지 못했을 때는 자칫 어설픈 동화나 설화의 경지로 떨어질 우려가 있다. 무의식에도 질량의 법칙이 있듯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하려면 그만큼 치밀하고 적확한 언어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경우일수록 단어 선택과 그 직조에 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의 애매성을 확대 해석하여 막연한 언어유희나 이미지의 남발을 기교로 착각함으로서 괜히 애먼 독자의 평상적 감상 포인트를 고통스럽게 혼란시킬 필요는 없다는 원론적 이야기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고성만 시인은 나름의 치밀한 서사적 구조와 순결하면서도 농염한 서정을 교직하여 밀도 깊은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아래의 시「강과 호수의 거리」에서처럼 감각적 언어로 특유의 풋풋하면서도 끈끈한 감성과 남도의 정겹고 기름진 정서를 감미롭고 진솔하게 담아낼 때 그의 시는 더욱 감동적이고 신선하다. 


    누비이불 같은 논밭 가다가다

    한 무더기

    푸른 거웃 심어놓고

    커다란 뱀처럼 숨어드는 강

        ―「강과 호수의 거리」부분


  아래의, 물기 흥건한 서정의 자유공간 속에서 산해경처럼 사물의 경계를 자유로이 왕래하는 상상력을 발휘한 빛나는 이미지들을 가만히 촉촉한 입술 위에 얹어보자.


    “양귀비꽃 들판 위에 뜬 별” - 「소년과 소녀」

    “우물 바닥을 핥는 혓바닥”

    “벙어리의 벌린 입” - 「우물을 찾아서」

   “물 젖은 눈동자 속 유유히 헤엄치는 고니 떼” - 「겨울과 봄 사이」

   “돌 속에 고인 눈물”

    “이제 더 이상 배 밑창에 숨을 수 없는 나이” - 「南港」


  구구절절이 되새길수록 경이롭고 감칠맛 난다. 그렇듯 그의 창의적 열정의 결정체인 보석 같은 활구들이 일상적 담론을 따뜻하고 심도 깊게 갈고 다듬은 서정시 본연의 확장에 복무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은 나만의 기우일까. 아무튼 오늘도 치열하게 영토 확장을 위한 탐험에 몰두하는 그의 시 세계를 좇다보면 그가 얼마나 시를 사랑하며 시의 비의를 전경화하려고 노력하는가 새삼 놀라게 된다. 천상 그는 시인일 수밖에 없다.

 

 

 

 


김규성(시인)

2000년 『현대시학』등단

2006년 시집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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