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제 2강좌: 나일 강의 선물: 지리적 배경

by 丹野 2009. 11. 24.

 

 

 

 

제 2강좌: 나일 강의 선물: 지리적 배경 / 김 성 교수

The Gift of the Nile: Geographical Background




“이집트는 꿈이 실현된 나라였다.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한 어머니처럼 매일매일이 경이로운 천국.

야자수 그늘, 대추야자 꿀, 바람의 노래,

아름다운 수련과 백합꽃 향기를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행복은 흐르는 강물처럼 느껴졌다.”

(크리스티앙 쟉크, 람세스 1: 201)



"나일 강의 선물": 헤카타이오스와 헤로도토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 강 때문에 가능했다. 이집트 문명이 나일 강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는 표현은 서기전 6세기 헤카타이오스(Hecataios)가 처음으로 언급하였다. 헤카타이오스는 오늘날의 터키, 소아시아 지방의 밀레토스(Miletos) 출신의 역사학자인 동시에 지리학자로서 서기전 500년경 페르시아와 이집트를 차례로 여행한 다음 일종의 여행 안내서로서 ������페리에게시스(Periegesis)������를 저술했고, 이 책에서 그는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하였다. 서기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헤카타이오스의 영향을 받아서 이집트 문명 형성에 나일 강의 절대적인 역할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헤카타이오스보다는 헤로도토스의 언급이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특별히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나일 강의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집중적으로 방문했던 하 이집트, 즉 나일 삼각주가 원래는 바다였는데 강의 퇴적작용으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에 지질학적인 측면에서 그 지역이 곧 나일 강이 만든 땅이라는 직접적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헤로도토스는 비교적 최근에 그 땅이 생겨났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일 강 The Nile

이집트는 북부 아프리카의 거대한 광야에 자리 잡고 있어서 원래는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지역이었는데 중부 아프리카 고원지대에서 북쪽의 지중해로 흐르는 나일 강 때문에 그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나일 강은 고대 이집트어로는 ‘이아테루(I3tr.w)’라고 불렸지만 서기전 8세기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네일로스(Νειλος)’로 알려졌고 오늘날 ‘나일’ 강의 어원이 되었다. 나일 강은 전체 길이가 670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긴 강이며 전체 중 오직 1/5만이 이집트 지역을 통과한다. 나일 강의 원류는 열대 우림 지역으로서 비가 많이 오지만 이집트는 거의 비가 오지 않는 광야 지역이다. 오늘날에는 아스완 댐의 영향으로 홍수기인 7-9월을 제하고는 연중 일정한 양의 물이 흐르지만 그 이전에는 갈수기에는 초당 방류량이 120 입방미터, 그리고 만수기인 7-9월에는 약 75배인 초당 9,000 입방미터에 달하는 등 연중 수량의 차이가 매우 두드러졌다. 또한 범람 지역과 나일 강 하류의 삼각주의 토양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 결과 연평균 1밀리미터의 충적토가 쌓인 것으로 드러났다. 나일 강의 물은 7월 초부터 서서히 불어나서 8월 중순 최고 수위에 달했다가 그 후 줄어들기 시작하여 11월 말부터 갈수기에 이르면 1-2월에는 최저 수위에 도달하게 된다. 나일 강은 이 지역의 유일한 수원지이자, 해마다 여름철(6-10월)의 범람으로 새로운 흙을 실어다 주고, 나아가 유일한 교통로로서 이집트 전역을 통일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또한 나일 강은 지중해로 흘러 내려오면서 해변에 거대한 삼각주를 형성하여 넓은 농경지에서 일찍부터 농경 및 목축이 가능하게 됐다. 이집트는 대부분이 광야이지만 나일 강 변과 특히 강 하구의 삼각주 지역에는 해마다 여름철 강의 범람으로 쌓인 퇴적토로 기름진 경작지를 형성한다.



청 나일과 백 나일 The Blue Nile and the White Nile

나일 강은 동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타나(Tana) 호수에서 발원하는 청 나일과 중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Victoria)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 나일이 오늘날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Khartum)에서 합쳐진 것이다. 청 나일은 타나(Tana) 호수에서부터 발원하며 백 나일과 합쳐지는 카르툼까지의 길이는 1700 킬로미터이다. 백 나일의 원천인 빅토리아 호수는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의 세 나라에 걸쳐있는 넓이 68,800 제곱킬로미터의 거대한 내륙 호수로서 적도에 위치하여 일년 중 강수량이 2000 밀리미터 이상이나 되는 지역이다. 빅토리아 호수는 1858년 영국의 스펙크(John Hanning Speke)에 의해 발견되었고, 빅토리아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최남단의 루부부(Ruvubu)강의 수원지는 오늘날 브룬디(Brundi)에 있으며 이 수원지는 1937년 독일의 발데커(Burkhart Waldecker) 박사에 의해 최초로 확인되었다. 이곳에는 라틴어로 ‘카풋트 닐리(Caput Nili)’, 즉 ‘나일 강의 머리’라는 라틴어 구절이 새겨진 피라미드가 기념비로서 나일 강의 원천을 표시하고 있다. 빅토리아 호수의 물은 르완다와 브룬디에 걸쳐있는 월산(the Mountains of the Moon)에 쌓인 눈이 녹아 카게라(Kagera) 하천을 통해 루부부 강으로 따라 들어온 것이다. 백 나일의 수원지인 월산(Mountains of the Moon) 지역에는 연중 강수량이 2000 밀리미터에 달하며 청 나일과 합쳐지는 카르툼까지의 길이는 약 3700 킬로미터이다. 카르툼에서 합쳐진 나일 강은 아스완까지 모두 여섯 개의 급류를 이루며 흘러간다. 청 나일, 백 나일 외에도 카르툼 북쪽에는 에티오피아 고원 지대에서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류인 아트바라(Atbara)강이 나일 강으로 합쳐진다.



급류와 지리적 경계 Cataracts and Geographical Division

이집트는 나일 강을 유일한 교통로로 이용하여 통일 왕국을 건설했는데 지중해로부터 약 1000킬로미터 떨어진 아스완 근처에 더 이상 배가 지나갈 수 없는 급류가 형성되어서 전통적인 이집트의 남쪽 경계가 되었다. 흔히 ‘폭포’로 잘못 번역되는 나일 강의 급류 카타락트(cataract)는 그리스어 ‘카타두포스(Καταδουπος)’에서부터 유래되었으며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물길’이라는 뜻을 지닌다(헤로도토스, ‘역사’ II.17). 나일 강이 지나는 이집트의 대부분의 지역은 석회암 지대여서 쉽게 강물이 지나갈 수 있지만 아스완 지역은 매우 단단한 화강암 지대여서 바위 사이사이를 뚫고 물이 흐르면서 경사지 급류를 이루었다. 오늘날 이집트학계에서는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 급류부터 시작해서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급류에 차례대로 번호를 붙여서 아스완 지역을 제 1급류로 그리고 최남단인 카르툼 근처의 급류를 제 6급류 등으로 분류했다. 이미 고왕국 시대부터 급류지역에서 배를 분해하여 우회한 후 다시 조립하여 항해를 계속함으로써 남쪽의 누비아(Nubia)를 점령하기도 했지만 이집트의 전통적인 남쪽 경계는 중왕국 시대까지도 엘레판틴 섬의 주거지를 중심으로 하는 아스완, 즉 제 1급류였다. 신왕국 시대에 들어와서는 남쪽의 경계가 좀 더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는 오늘날 아부 심벨(Abu Simbel)이라 불리는 이곳에 거대한 규모의 신전을 건설하는 등 이집트의 남쪽 경계를 더욱 확장했다. 이집트인들이 나일 강의 급류라는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상류 쪽으로 진출한 이유는 황금, 노예, 상아, 향료, 흑단목(ebony) 등 이집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아프리카의 특산물들을 얻기 위해서였다. 신왕국 시대 제 18왕조의 하쳅숫트(Hatshepsut) 여왕은 나일 강의 급류들 때문에 큰 배들은 운항할 수가 없어서 대규모의 선단을 홍해에서 발주하여 오늘날의 소말리아로 여겨지는 푼트(Punt)에 원정을 보내 국제무역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집트를 지칭하는 전통적인 이름들: 케멧트, 미쯔라임, 이집트, 콥트의 어원  

Names of Ancient Egypt: Km.t, Mitzraim, Egypt, Copt


케멧트 Km.t

고대 이집트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케멧트(Km.t), 즉 검은 땅이라고만 불렀다. 검은 땅이란 다름 아닌 나일 강의 범람으로 형성된 비옥한 충적토를 말하며 따라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서 검은 색은 곧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검은 땅 케멧트는 붉은 땅을 의미하는 데쉬렛트(Dšr.t)와는 대조를 이루는데 데쉬렛트는 이집트의 광야가 주로 누런색과 갈색을 띤 풍화된 석회암 지대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미쯔라임 Mitzraim

오늘날 아랍어로 이집트를 ‘미쎄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같은 셈어족에 속하는 성서 히브리어의 ‘미쩨르(Mitzer)’에서 유래됐다. 히브리어로 미쯔라임은 ‘두 개의 미쩨르’, 즉 ‘두개의 이집트’를 의미하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북쪽의 하 이집트와 남쪽의 상 이집트를 한꺼번에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집트 Egypt

고왕국 시대(서기전 2686-2181) 이집트인들은 그들의 수도인 멤피스를 그 곳의 신전 이름을 따라 ‘훗트-카-프타(Hut-ka-Ptah)’, 즉 ‘프타의 영혼의 신전’이라고 불렀다. 신왕국 시대에는 멤피스를 ‘히-카-프타(Hi-ka-Ptah)’로 불렀고, 서기전 14세기 아멘호텝 3세와 4세의 외교 문서인 ‘아마르나 문서’에서는 멤피스가 아카드어(Akkadian)로 ‘히-쿠-우프-타(Hi-ku-up-ta)’로 기록돼 있다. 서기전 8세기경 이집트가 그리스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리스어로 ‘에-기-프토스(Αι-γυ-πτος)’로 발음되었고, 라틴어로 ‘에깁투스(Aegyptus)’, 즉, 이집트(Egypt)로 발전되었다.

훗트-카-프타 --> 히-카-프타 -->히-쿠-우프-타-->에-기-프토스-->에깁투스-->이집트



콥트 Copt

오늘날 콥트(Copt)는 이집트의 소수 민족중의 하나인 기독교인들과 이집트 기독교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 명칭은 이집트의 라틴어식 이름인 에깁투스의 아랍어식 발음에서 비롯되었다. 서기 640년 아라비아 반도 출신의 이슬람 세력의 무슬림들은 이집트를 점령하여 카이로를 건설하였고, 그들은 이집트를 ‘다르-알-깁트(Dar al-Gibt)’, 즉 ‘이집트인들의 고향’이라고 불렀다. 점령 당시 이집트는 비잔틴 제국의 한 식민지로서 국교가 기독교였던 만큼 이집트 기독교인들을 깁트(Gibt)로 부르게 되었으며 나아가 콥트(Copt)로 발전되었다.

후-카-프타-->에깁투스-->다르-알-깁트-->깁트-->콥트





두 개의 이집트: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

Two Egypts: Upper Egypt & Lower Egypt


이집트는 예로부터 나일 강 유역을 따라 전체 국토를 양분했는데, 상 이집트가 나일 강 상류 지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하부 이집트는 지중해 쪽의 삼각주 지방을 일컫는다. 이 두 지역의 경계는 현재 카이로 남쪽 20 킬로미터 지점의 멤피스(Memphis)이며, 두 지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고왕국 시대부터 멤피스는 이집트의 정치적, 종교적 수도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두 개의 이집트 개념은 고대 히브리어에서 이집트를 ‘미쯔라임’, 즉 ‘두 개의 미쩨르’, 즉 ‘두 개의 이집트’로 표기한데서도 그 유래를 잘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상 이집트는 22개 그리고 하 이집트는 20개의 고대 그리스어로 노모스(nomos)라 불리는 주(州)로 구분되어 있으며 멤피스는 하 이집트의 첫 번째 주에 속하였다. 서기전 3000년경 남쪽의 상 이집트 세력이 북쪽의 하 이집트를 정복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통일 이집트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 후 이집트의 모든 왕들은 자신이 두 이집트의 통합 왕이라는 의미에서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여러 가지 상징물을 이용하여 그들의 왕권을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부조와 조각들을 통해서 밝혀진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상징들은 다음과 같다.



상징 동물

상징 식물

왕명 상징

상징 왕관

수호신

상 이집트

독수리

연꽃

골풀

흰 왕관

셋트

하 이집트

코브라

파피루스

꿀벌

붉은 왕관

호루스




상 이집트 Upper Egypt = 남쪽의 나일 강 상류 지역

상 이집트는 남쪽의 제 1급류 지역인 아스완에서부터 북쪽의 나일 강이 지류로 나뉘어져 삼각주를 이루기 시작하는 멤피스까지 남북의 길이가 약  85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대부분 나일 강의 범람으로 얻어지는 강 양편의 폭 1-10 킬로미터의 강변평야를 경작하여 농사와 목축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영위해 왔다. 또한 상 이집트는 남부의 누비아(Nubia) 지역의 금 광산을 개발하고 상아, 흑단목, 노예 등 아프리카 특산물을 이집트로 들여오는 관문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상 이집트의 대표적인 도시들로는 아비도스(Abydos), 테베(Thebes), 텔 엘-아마르나(Tell el-Amarna) 등의 수도들과 남쪽 경계가 되는 아스완 지역의 엘레판틴(Elephantine), 콤 옴보(Kom Ombo), 에스나(Esna), 에드푸(Edfu), 베니 하산(Beni Hasan), 덴데라(Dendera) 등이 있다.



하 이집트 Lower Egypt = 북쪽의 나일 강 삼각주 지역

[이집트어] 타-멕후(T3-mḥw) “파피루스의 땅”

이집트의 농경지는 삼각주와 나일 강 변을 따라 양쪽으로 띠 모양으로 형성되었으며 이 면적은 전체 100만 제곱킬로미터 중에서 3퍼센트의 땅인데 오늘날 이 곳에 전체 인구의 96퍼센트가 거주하고 있다. 삼각주는 전체 면적이 2만2천 제곱킬로미터이며 이 지역은 흙과 물과 태양이 일 년 내내 충분하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농작물도 경작이 가능한 낙원 같은 곳이다. 나일 삼각주의 형성은 서기전 9000년 이후에 빙하기가 끝나고 지중해의 해수면으로 상승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지질 조사 결과 해수면이 오늘날의 위치로 상승한 서기전 6500년경부터 퇴적물이 쌓이기 시작했으며 서기전 4000년 이후부터는 퇴적작용의 속도가 증가하였다. 오늘날까지 약 8천년 동안의 퇴적층의 두께는 평균 10-15미터이며 두꺼운 곳은 50미터나 된다. 삼각주의 중요한 고대 도시들의 유적은 해마다 나일 강의 끊임없는 범람으로 인한 퇴적층의 증가와 농경지 개발로 대부분 파괴되거나 땅속에 묻혀버렸다. 상 이집트와는 달리 이곳에는 석재가 귀해서 대부분의 건물들이 흙벽돌로 지어졌기 때문에 잘 보존되지 못한 점도 있다. 또한 석재로 건설된 왕궁이나 신전이 있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거주해 왔기 때문에 이미 그 돌들을 다 뜯어 와서 다른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오늘날 남아있는 유적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오늘날까지 약 20 여 군데의 유적지에서 이집트 왕조 시대와 그리스-로마 시대에 건설된 도시들의 유적이 발굴되었으며 이 중에서 대표적인 도시들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 아바리스(Avaris), 람세스(Ramses), 타니스(Tanis), 레온토폴리스(Leontopolis), 부바스티스(Bubastis), 피톰(Pithom),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등이다. 하 이집트의 전통적인 수호신은 코브라 여신인 와젯트(Wajet)였으나 나중에 호루스로 대체되었다.





이집트의 사막 Egyptian Deserts

이집트는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북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하라 사막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집트의 사막은 나일 강을 기준으로 동부 사막과 서부 사막으로 구분된다. 면적으로 본다는 서부 사막이 7:3으로 동부 사막보다 크다.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 지역이지만 특히 서부 사막에 발달된 몇 개의 오아시스 지역에는 지하의 사암층에 고여 있는 지하수와 이것이 지상으로 흘러나와 형성된 소규모의 호수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발달하였다.


동부 사막과 천연자원 Eastern Desert & Natural Resources

동부 사막에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화강암 바위 산봉우리들이 즐비한 홍해 산맥(Red Sea Mountains)이 자리 잡고 있다. 홍해 산맥의 최고봉은 케나(Qena) 북동쪽 13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해발 2187미터의 제벨 샤입 엘-바낫트(Shayib el-Banat)이다. 홍해 산맥은 원래 시나이 반도 남부의 시나이 산맥과 같은 지역이었는데 시리아-아프리카 대단층 작용의 결과 홍해가 생겨나면서 이 둘이 오늘날과 같이 동서로 분리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액 3700만년 올리고신(Oligocene) 시대부터 아라비아 반도가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가 시작하면서 홍해 골짜기가 형성되었고 이 현상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동부 사막은 홍해와의 무역을 위한 무역로 개척 및 특히 황금을 비롯한 수많은 보석과 희귀한 석재 광산이 산재해 있어서 초기 왕조시대부터 개발되었다.



서부 사막과 오아시스 Western Desert & Oases

서부 사막의 면적은 68만 제곱킬로미터로서 이집트 국토의 2/3를 차지한다. 서부 사막은 리비아 사막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부 사막은 대부분 석회암 지대이며 군데군데 사암 지대가 있다. 서부 사막은 거대한 사하라 사막으로 이어지고 지하자원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지만 모두 여섯 군데의 대규모 오아시스가 잘 발달되어 있어서 일찍부터 농업 중심지로 개발될 수 있었다. 오아시스는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샘이나 우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추야자의 군락에서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이집트의 오아시스는 나일 강의 지류를 통해 형성된 파이윰 오아시스를 비롯해서 시와, 바하리야, 파라프라, 다클라, 카르가 오아시스 등이 있다. 오아시스가 위치한 서부 사막은 지금으로부터 1만년 이 지역은 비가 오는 초원지대로서 동식물이 널리 분포되어 있어서 구석기 시대 주인공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하지만 서기전 4000년경부터 서서히 비가 오지 않아 오늘날과 같은 사막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이들 지역에 사람들이 정착했던 흔적이 있으며 제 1왕조의 설립과 함께 여러 지역에서 신전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지들이 발달되었다. 왕조시대에 오아시스는 농업 중심지로서 대추야자, 올리브, 포도의 생산지였다. 신왕국 시대에 이 지역의 오아시스는 이집트의 서쪽 국경을 방어하는 전진 기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서부 광야의 오아시스 중 규모 면에서는 파라프라 오아시스가 가장 크고 거주 인구는 시와 오아시스가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