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강좌: 고대 이집트의 재발견 / 김 성 교수
Rediscovery of Ancient Egypt
“No special knowledge is required in order to be impressed by
the grandeur and technical accomplishment of the Great Pyramid at Giza,
to be enchanted by paintings in the Ramessid private tombs at Deir el-Medina, or be left dumb founded by the opulence - rather erratic - taste
shown in the objects from the tomb of Tutankhamun
in the Valley of the Kings, and now in Cairo Museum.
Nonetheless, knowledge may be add to our appreciation and enjoyment.”1)
이집트학이란 무엇인가? What is Egyptology?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인두스(Indus), 황하와 함께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손꼽힌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가 서기전 3300-3000년경에 문자를 발명하여 사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역사상 최초의 고등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왜냐면 인두스는 서기전 2600년부터 1000년 정도 지속되다가 인도 본토로 그 중심 무대가 옮겨졌고, 황하 문명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서기전 1600년 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문자를 사용하는 고등 문명의 차원에 도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으로 사방으로 개방되어 주인공들이 여러 번 바뀐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이집트는 광야에 둘려 싸여 외부와는 고립되었고 오직 나일 강이라는 단일 교통로로 통일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이집트 3000년 역사를 통하여 단일 민족과 문화의 동질성을 보전할 수 있었다. 특히 서양문명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는 그리스 문명의 뿌리가 다름 아닌 고대 이집트라는 사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이집트 문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유럽과 북미의 유수한 대학들에서는 이미 19세기, 20세기 초부터 고대 이집트에 관한 전문 분야인 이집트학(Egyptology)이 본격적으로 정착되어서 인류 고등문명의 기원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 왔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한민족 문화의 뿌리인 국학이나 주변의 중국 문명 연구도 미흡한 차원이어서 세계사적 관점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는 현재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집트학은 인류의 지적 문명의 유산을 다룬다는 점에서 반드시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연구되고 가르쳐야 할 인문과학의 진수라고 볼 수 있다.
헤로도토스(서기전 484-420)의 이집트 연구 Research of Egypt by Herodotos
고대 이집트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인 연구는 서기전 5세기 소아시아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서기전 430-425년에 기록되었고 그리스 민족과 페르시아 제국 사이의 투쟁과 갈등의 역사를 묘사한 전체 9권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 ������역사������ 중에서 제 2권이 바로 이집트에 관한 내용들이다. 헤로도토스는 실제로 서기전 450년경 이집트를 방문하였고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내용들을 중심으로 제 2권을 기록했지만 과장된 부분도 적지 않다고 평가된다. 당시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남부 아스완 지역까지 방문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테베(룩소르)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는 대신 오히려 북쪽의 삼각주 지역에 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는 주로 하 이집트를 집중적으로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나폴레옹과 이집트학의 기원 Napoleon and the Origin of Egyptology
“France, snatching an obelisk from the ever heightening mud of the Nile, or the savage ignorance of the Turks... earns a right to the thanks of the learned of Europe, to whom belong all the monuments of antiquity, because they alone know how to appreciate them. Antiquity is a garden that belongs by natural right to those who cultivate and harvest its fruits.”
“프랑스는 항상 차오르는 나일 강변의 진흙과 터키인들의 무관심 속에서부터 하나의 오벨리스크를 낚아챔으로써, 유럽의 지성 덕분에 문화재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왜냐면 그들만이 문화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정원과 같아서 누구든지 그것을 가꾸고 열매를 수확하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2)
“나는 이집트에서,
거추장스러운 문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거기서 모든 것을 꿈꾸었고,
꿈꾸었던 모든 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들을 발견했다.
...(중략)...
내가 이집트에서 보낸 시기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3)
이집트학이란 고대 이집트의 언어, 문학, 역사, 고고학 등을 다루는 일종의 총체적인 ‘지역 고전학(regional classical studies)’으로서 본격적인 연구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과 탐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798년 5월 19일 스물아홉에 프랑스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 된 나폴레옹은 38,000명의 군대를 실은 328척의 함대를 이끌고 툴롱 항을 떠나 이집트로 향하였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의 주된 목적은 인도의 식민지로 통하는 지중해의 동서 교통로를 확보하고 있는 영국에 맞서 이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이탈리아와 이집트를 남북으로 연결함으로써 영국의 위상에 치명타를 가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이집트 정복을 단순히 전략적인 목적으로만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문명의 보고 이집트를 송두리채 연구하길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폴레옹의 선단에는 이집트를 체계적으로 탐사하기 위하여 167명에 달하는 고고학자, 언어학자, 지리학자, 물리학자, 토목기사, 측량사, 화가, 시인 등과 함께 탐사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참고 서적 등이 실려 있었다. 나폴레옹의 전기 작가 중 가장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 에밀 루드비히는 이를 두고 그가 ‘소규모의 종합대학’을 이집트에 상륙시켰다고 비유했다. 한편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는 한 달 내내 지중해의 길목을 지켰으나 결정적인 순간에 짙은 안개로 그만 프랑스 함대를 놓치고 말았다. 약 40일 동안의 항해 끝에 7월 1일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프랑스 군대는 ‘피라미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면서 이집트 내륙으로 진격했다. 그 해 8월 1일 영국 함대는 아부키르에 정박해있던 프랑스의 함대를 찾아내어 무자비한 포격을 가한 끝에 단 두 척을 남겨놓고는 모조리 침몰시켰다. 하지만 이미 이집트의 내륙으로 진출한 프랑스군은 이집트를 요새화하였고 두 세력의 대결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이집트지������의 출간 Publication of Descrption de l'Égypte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동행했던 167명의 탐사단은 프랑스에 돌아와서 약 20여년(1809-1828)에 걸쳐 그 결과를 ������이집트지(Descrption de l'Égypte)������라는 제목으로 모두 24권에 이르는 방대한 전집으로 출판하였다. ������이집트지������는 나폴레옹의 전폭적인 지지와 명에 의해 출판되었고 그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집트의 유적, 사람들, 유물, 동식물, 광물 등 모든 것들을 망라하여 주로 정밀한 스케치로 그린 그림들과 이에 대한 해설 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집트지������ 출판은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이 고대 이집트 문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집트에 관한 총체적인 이 백과사전은 오늘날에도 특히 그림 자료가 여전히 참고로 연구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1800년 이후 이집트 유적들의 상당수가 파괴되어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1) J. Bains and J. Málek, Atlas of Ancient Egypt. London: Phaidon. 1980: 10.
2) Captain E. de Verniac Saint-Maur, Voyage de Luxor. 1835.
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1803
김 성 교수님(협성대 교양학부 교수. 성서고고학박물관장) -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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