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로, 자기 작품이 'A=B'로 <치환(置換)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가, 'A=A''라고 <설명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어쩌면 이 문제는 굳이 나무랄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시는 산문 쪽으로, 산문은 시 쪽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적 구조를 취할 경우 다른 층위에서 이른바 '시적'인 징표를 강화하지 않으면 어색한 산문 토막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렇다. 시란 정서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설혹 <지적>이고 <논리적>인 화제라고 해도 그것은 결국 좀 더 특수한 정서를 환기시킬 것을 목적으로 채택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서를 설명하려 들 경우에는 동어반복(同語反復)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르적 특질이 어느 쪽으로 이동하던 시의 본질은 로 바꾸는 치환 은유적 구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국면에서 한 가지 더 따져볼 것이 있다. 그것은 원관념(原觀念)과 보조관념(補助觀念) 얼마나 '낯설은가', 어느 한 부분을 치환했는가 전체를 치환했는가 하는 점이다. 다 같이 은유 구조를 취한 작품이라고 해도 두 관념이 너무 유사하거나, 어느 한 부분만을 은유하면 설명의 상태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가 독자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표현하려는 <경제적 양식>이 아니라, 언뜻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만드는 <비경제적인 양식>으로서, <원활한 독서>보다 <지체(遲滯)의 독서>를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처녀=꽃'이라는 은유적 표현만 해도 그렇다. 그런 표현에 너무 자주 접한 현대 독자들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원관념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처녀'의 속성을 잘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왜 처녀를 꽃이라고 했을까? 처녀는 사람이고, 꽃은 식물인데…'라는 의문을 자아내어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따라서, ①이미 관습화된 비유 ②별다른 노력없이 원관념을 떠올릴 수 있는 비유 ③어느 한 구절을 구체화하기 위한 비유 등은 '산문적인 비유(prosodic metaphor)' 또는 '죽은 비유(dead metaphor)'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섯째로, 자기 작품 가운데 <전경화(foregrounding)>된 부분이 있는가, 그리고 그런 부분이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자아내는가를 살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전경화(前景化)란 의미든 표현이던 또는 형태든 다른 부분에 비하여 이질적인 부분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와 같이 유사 자질(A) 속에 이질적인 자질(B)을 배치했을 때 얻어진다. 다시 말해, 유사 자질들은 배경화(背景化)되고, 이질적인 자질들은 전경화된다.
물론, '수수한 시'를 지향하는 시인들은 이런 기법을 못마땅해 할 것이다. 그러나, 전경화된 부분이 없는 작품들은 밋밋하여 구조를 형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적 긴장이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질적인 요소들을 불규칙하게 배치할 경우에는 원활한 독서가 이뤄질 수가 없다. 구조(structure)란 돌출한 부분과 물러나는 부분이 있어야 형성되고, 긴장(tension)은 서로 다른 요소들끼리 대결을 벌일 때 발생하며, 원활(圓滑)한 독서는 규칙적인 곳에서, 지체(遲滯)의 독서는 전체 질서에서 일탈(逸脫)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경화는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미적 구조를 획득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기 시를 검토하는 열 가지 기준' 부분 / 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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