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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자기 시를 검토하는 열 가지 기준' 부분 1

by 丹野 2009. 11. 19.

 

 

 

 

 
지난 두 달 동안 <해변 시인학교> 특집 관계로 월평을 쉬게 되었다. 필자는 이 기간 동안에 《심상》지의 특집에 발표된 180명의 360편 작품을 비롯하여 10여개 문예지에 발표된 1천여 편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 땅의 시인들에게 좀 무례한 질문을 퍼붓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상당수의 시인들이 시의 기본조차 터득하지 못한 채, 그냥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잡지에 게재된 비평들이었다. 집필한 분들의 이름을 보면, 시가 무엇인지, 한국 현대시가 당면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 어떤 자세로 시를 써야 할 것인지를 알만한 분들인데도, 그런 문제점을 논의하기보다는 '죽은 지식'을 자랑하기에 급급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은 아마 '그래, 맞아!'하고 공감을 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자가 시인이라면 자신만은 예외적 존재 속에 포함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문학지가 우후죽순격으로 창간되고, 한정된 문학 시장에서 수록한 작품의 질이나 편집 방향의 개선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 각 문예지가 <신인 추천>이라는 제도를 이용하여 함량 미달의 시인들을 대량 양산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자신을 예외적 존재로 취급하려는 시인들에게 아래와 같은 항목에 따라 자기 작품과 문학적 견해를 검토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우선 <의미적 국면(意味的局面)>부터 질문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자기 시 속에 등장하는 <시적 인물>이 누구인가를 따져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그리고, <허구적 화자(虛構的話者)>를 선택한 시인이라면 왜 그런 인물을 선택했는가, 그 인물과 화제(話題) 이하의 층위와 어울리는가, 이 시대의 다른 시인들 작품과 선대 작품 속에 나타난 인물들과 비교할 경우 어떤 변별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따져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필자의 진단에 의하면 지난 3개월 동안, 아니 어느 달에 읽은 작품이든 80% 이상이 시인 자신인 <자전적 화자(自傳的話者)>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허구적 화자>를 채택한 작품들도 화자 이하의 층위와 유기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전과 허구의 어중간한 지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물론 자전적 화자를 택했다고 열등한 작품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으면 가급적 듣는 이(독자)에게 멋있게 보이는 데 치중하고, 그로 인해 진실되게 이야기하기보다 위선적으로 말하기 쉽다. 그리고, 이런 심리 때문에 자연히 화제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검토해 보라는 것이다.

 

 

둘째로, <화제의 초점(焦點)>을 <관념>·<물질적 인식>·<무의식적 반응>·<지적, 추상적 논리>로 나누고, 자기시의 초점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가를 살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 역시 화자의 유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요소로서, 필자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사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는 데 초점을 맞춘 관념시(platonic poetry)가 주류를 이루었고, 시적 대상의 물질적 감각에 초점을 맞춘 즉물시(physical poetry)가 일곽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무의식과 지적 논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은 극소수였다.
이 역시 작품의 우열을 평가하는 기준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관념시>나, 주지주의자들로부터 '의미 없는 텅 빈 그림(meaningless picture)'라는 비판을 받은 <즉물시>도 기존의 인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관념과 감각을 창조한 것이라면 마땅히 상찬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시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운율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장르관(觀)에서 보면 무의식이나 지적 논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이 이단적이며 비시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도덕을 장황하게 설교하거나 눅진눅진한 정서를 유출시킨 작품, 또는 그저 그렇고 그런 풍경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 작품들은 이미지스트들이 낭만주의자들을 공격하던 비판, 또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주지주의자들이 이미지스트들을 공격하던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시를 검토하는 열 가지 기준' 부분 / 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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