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로, 자기 작품의 <거리>가 대상의 인식과 반응의 단계와 관계없이 <고정적>인가 그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가 확인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심리적 거리(psychic distance)의 유형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은 문학 이론에서도 아직 확립된 게 아니므로 편의상 초점의 유형을 적용하여 나눠보면, <단일 초점>을 취하는 작품은 고정된 거리를 취하는 작품이고, <복합 초점>을 취하는 작품은 이동하는 거리를 취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대부분의 작품들이 단일 초점을 취하거나 <관념+물질>, <무의식+물질>, <무의식+관념>의 2차 결합형이고, 그 이상을 포괄하는 작품들은 거의 발견하기 어려웠다.
물론 동일한 작품 안에서 거리를 이동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적 거리란 시인이 <자아>와 <화제>와 <청자(독자)>에 대한 태도를 나타내는 장치로서, 같은 작품에서 특별한 장치가 없이 이동할 경우에는 횡설수설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시에 모든 유형의 초점이 다 동원되었음을 고려할 때 거리를 이동시키는 방법 이외 새로워질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정된 거리를 취할 경우에는 '순수시(pure poetry)' 또는 '배제(排除)의 시(exclusive poetry)'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기에 권유하는 것이다.
이제 구조적 국면(構造的局面)에 대해 질문해 보기로 하자. 앞의 질문에 이어
넷째로, <플롯(plot)>에 대해 배려한 적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플롯의 문제는 흔히 소설론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모든 담화는 <작은 담화>의 집합이고, 전체 담화가 짜임새 있고 유기적(有機的)인 것이 되려면 무수한 작은 담화 가운데 무엇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중에 할 것인가에 대한 순서를 고려해야 하고, 같은 것끼리는 한 데 모아야 하며,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반복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시적 담화도 이런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일상적 담화와 마찬가지로 화자와 등장하는 시간적·공간적 배경(setting)과 상황(situation)을 제시하고 그 작품의 주된 화제를 제시하는 순서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떤 방법으로던지 그 작품의 첫머리에서 <언제→어디에서→누가>를 밝히지 않으면 독자들은 작중의 상황을 짐작하며 읽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그 다음 <주된 화제 → 그에 대한 또 다른 생각 →주된 화제>의 틀을 유지해지 않으면 그 작품의 주제가 부각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동안 읽은 작품들의 상당수는 이런 배려가 없이 정서의 흐름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자기 시를 검토하는 열 가지 기준' 부분 / 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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