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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비비추 / 고영민

by 丹野 2009. 3. 4.

 

 

 

비비추

 

고영민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번 본 적 없는 그 꽃을

왠지 알고 있는 듯도 하네

그 꽃은 누구에게도 잠깐 빌려온 저녁

그 먼 곳의 가짓빛 하늘과

꽃대

단지 이름만으로도 떠오르는 희디흰 얼굴 너머

약가 문드러진 목소리

 

그러다 결국엔

속속들이 너를 다 알아버릴

어느 슬프고도 멋모를

저녁 한때의 시간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번 본 적 없는 그 꽃을

오랫동안 그리워한 적이 있는 듯도 하네

 

밤새 손전등을 들고

기웃이 내 부근을 서성이던

강기슭과 젖은 물관부 너머

불 꺼진 울타리와

잠들기 위해 찾아간

개개비 둥지, 눅눅한 바위 밑

움푹 파인 그 자리

 

비비추라는 꽃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내 잔잔해진 귀에 대고

아주 오랫동안 소곤거린 듯

그저 비비추, 비비추

몇번이고 중얼거려보는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