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순장殉葬
신현락
바람은 연의 심장에 뚫린 구멍이다.
그 구멍 속으로 바람의 아이들이
연을 날린다.
하관을 하듯
흰 뼈의 숨구멍 속으로
바람을 집어넣은 적이 있었다.
그 바람은 어디 갔을까.
그리운 연 한 장 날아오지 않는
이상스런 여백이 지속되었다.
내 탓이었다.
어느 날 문득,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뼛속 바람이 문풍지처럼 떨고 있다.
이 고립과 유폐의 감옥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시간이 되는 것임을 나는 안다.
팽팽해진 얼레의 실을
나는 그 바람의 어깨위에 풀어준다.
원래부터 바람은 연의 몫이었다.
갈 것은 가는 것이고
멀리 간 것은 다시 돌아오는 것,
입술을 오므리고 흰 뼈의 숨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바람은 둥글게 부풀어 오른다.
바람은 공기의 심장에 뚫린 구멍이다.
바람의 아이들이 구멍 뚫린 내 심장을 날리리라.
나는 바람과 바꾼 연의 심장 앞에
기꺼이 입을 벌리고 목구멍을 보여준다.
나는 이제 살아서 헛것이었다고
헛되고 헛된 게 삶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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