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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향기로 말을거는 詩

비비추 / 고영민

by 丹野 2009. 2. 21.

 

 

 

 

비비추

 

고영민


비비추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번 본적 없는 그 꽃을
왠지 알고 있는 듯도 하네
그 꽃은 누구에게서 잠깐 빌려온 저녁
그 먼 곳의 가지빛 하늘과
꽃대
단지 이름만으로도 떠오르는 희디흰 얼굴 너머
약간 문드러진 목소리

그러다 결국엔
속속들이 너를 다 알아버릴
어느 슬프고도 멋모를
저녁 한 때의 시간

비비추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번 본적 없는 그 꽃을
오랫동안 그리워 한 적이 있는 듯도 하네
밤새 손전등을 들고
기웃이 네 부근을 서성였던
강기슭과 젖은 물관부 너머
불 꺼진 울타리와
잠들기 위해 찾아 간
개개비 둥지, 눅눅한 바위 밑
움푹 패인 그 자리

비비추라는 꽃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내 잔잔해질 귀에 대고
아주 오랫동안 소곤거린 듯
그저 비비추, 비비추
몇 번이고 중얼거려 보는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