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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나호열 시인/세상과 세상 사이

바람의 흔적, 존재를 찾아서(1)

by 丹野 2009. 2. 12.

 

 

 

바람의 흔적, 존재를 찾아서 - 박강순 시집 『바람 흔적

 

나 호 열

 

 

여자

 

 

그는 그 곳에 가고 싶어했다. 아니, 그는 그곳을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우리에게 변화된 것은 없었다. 몇 년 전보다 조금 더 늙었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 늘어난 만큼 푸념과 절망이 늘어간 것을 빼고는 말이다. 우리는 미망迷妄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한 해가 끝나 가는 12월 마지막 주의 어떤 날이라고 해두자. 코끝이 시릴 정도의 매콤한 공기가 흘러가는, 덜거덕거리는 쳇바퀴 하나를 버리고 또 하나의 쳇바퀴를 바꿔 끼우는 것쯤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그리하여 미망을 빠져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미망 속으로 빠져드는 물거품 같은 햇살이 유혹하는 고속도로에서 그는 몇 번인가 힘껏 가속 페달을 밟았다가는 풀어 주었다. 나는 그의 그런 동작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 것 같다. '아무리 밟아도 140킬로를 넘지 못해요'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 새로 장만한 그의 차는 엔진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핸들은 부드럽게 바퀴를 돌리고, 극락으로 떠나는 가마처럼 안락했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가속페달은 그가 빨리 도달하고 싶은 그곳으로 그를 데려다 주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엄밀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는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졸음에 겨워하는 귓가에 쏟아 놓았다. 그의 이야기는 창가에 세차게 부딪치며 일으켜지는 바람 소리 같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중년의 어떤 여자가 저녁마다 공원으로 운동 겸 산책을 나갔는데요, 거기서 한 늙은 남자를 만났대요. 그 남자는 혼자 살고 있었는데... 아마 그 여자에게청혼을 했나봐요... 그 여자는 거액의 돈에 홀려 이혼을 하고 말았던 모양이지요...그러다가 얼마 안 가서 그 남자가 죽고 생각지도 못했던 거액의 유산이 그 여자에게 남겨졌다고 그러대요... 그 이후, 그 공원에는 밤마다 이쁘게 화장을 한 여자들이 괜히 뜀박질도 하고요, 우아하게 걷기도 하고요... 근데, 우리 마누라가 불쌍해요....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그는 역사를 공부했다. 박사를 마쳤지만, 그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세상은 어디를 가도 그를 거미줄 안에 잠궈 두었다. 일 년의 육 개월을 수입 없이 공쳐야 하는 강사의 고달픈 삶이 몇 년 째 아니 앞으로도 여전히 그의 눈을 매섭고 건조하게 만들 것이었다. 운명이지 어쩌겠어, 우리는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는 없잖아. 나는 잘못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 어쩌다가 험로에 들어선거지. 요즘 세상에 남자만 벌어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는 게 우스운 일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안은 씁쓸했다. 절대절명의 생존의 위기 앞에, 과연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는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진화론은 생존의 매커니즘으로,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다. 한 예로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우열적 관점을 내재한 편견들, 더 나아가서 정치적 사회변동의 대립자로서의 남성과 여성의 헤게모니를 해체시킨다.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안정적으로 퍼뜨리기 위한 남성과 여성의 전략은 이기적이다. 더 나아가서 윌리암스George.C. Williams나 트리버스 Robert Trivers의 부모로서의 남성의 투자 male parental investment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배우자 선택에 있어서 무엇을 신중하게 고려하는지를 제사해 준다. 남성은 좋은 유전자의 보유 여부, 다산의 능력을 중시하므로 젊고 건강한 여성을 선택한다. 거기다가 여성이 얼마나 충실한가를 따진다. 즉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은 여성은 남성의 투자 성공을 가늠하는 요소가 된다. 반대로 여성은 외모, 체력, 보다도 높은 사회적 지위에 관심을 둔다. 또한 남성과 마찬가지로 충실함을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인다. 충실함의 의미는 남성과 여성에게 있어서 다르다. 남성은 성적인 측면에서의 충실함을, 여성은 믿음과 배려의 차원에서의 충실함을 견지한다. 사회생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내장된 적자생존의 본능을 확인시키는 한편, 본능과 자아의 충돌이라는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었다. 관습은 악몽이다. 본능에 지배받는 숙명의 연습이 아니라 본능을 지배하고자 하는 양성적 욕구는 이제 페미니즘의 정점에 올라와 있다. 이제 여자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화되면서 인간 저 너머의 지평선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나는, 우리는 영원히 그 지평선에 가서 목매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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