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적당하게
나호열
사방팔방으로 천 개의 팔을 가진 길도
밤이 되면 서서히 봉오리를 오무려
집으로 돌아간다
꼬리를 감추는 짐승처럼
잔뜩 어둠을 머금어 팽팽해진 산 속으로
차곡차곡 발자국 소리 쌓여가고
문득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적막한 그대 앞에 섰을 때
그믐으로 가는 달의 웃음이 스며오르고 있었다
부드럽고 창백한
흰 빛도 아니고 노오란 빛도 아닌
온 몸을 바위에 으깨며 소리치는 물의 그림자가
화병에 차오르면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 달개비꽃 한 송이도
제멋대로
적당하게 피는 법은 없다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말하지 않은 긴 혀와 같은 길은
어제의 그 길이 아니라고
밤새 산은 산통으로 고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