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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이탈한 자가 문득/ 램프를 켜다

[옥타비오 파스]시적 계시(1)

by 丹野 2009. 1. 30.

 

 

 

  [옥타비오 파스]시적 계시(1)

 

 

 

   종교처럼 시도 인간의 원초적 상황, 즉 인간이란 잔혹하고 냉담

한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유한

한 시간밖에 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시인도 나름의 부정적인 경로로 언어의 가장자리에 닿는다. 그 가

장자리는 침묵이며 백지다. 침묵은 매끄럽고 조밀한 수면의 호수와

같다. 말들은 그 수면 아래 잠겨 있따. 잠수하여 바닥에까지 이르러

입을 다물고 기다려야 한다. 빔 다음에 충만함이 오듯이, 영감은 불

모의 상태 다음에 온다. 시적인 말은 가뭄의 시기를 거쳐 움튼다.

그러나 시의 구체적 내용이 어떤 식으로 표현되든지 간에, 시 언어

는 이 땅 위의 삶을 긍정한다. 다시 말해, 시편 개개의 내용과는 관

계없이 시적 행위, 시를 쓰는 일, 시인의 언표는 어떤 해석이 아니

라 본래부터 인간 조건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 혹은 저것에 대해,

아킬레스 혹은 장미에 대해,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빛 혹은 파도에

대해, 죄 혹은 무죄에 대해 말하거나 간에, 시적 언어는 리듬이며

끊임없이 솟아나고 소생하는 시간성이다. 그것은 리듬이면서 또한

대립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을 한마디로 껴안는 이미지다. 실존 그

자체처럼, 한껏 고양된 순간에조차도 그 안에 죽음의 이미지를 품

고 있는 삶처럼, 시간의 흐름인 시 언어는 죽음과 삶을 동시에 긍정

한다.

 

 

  시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판단도 아니고 해석도 아니다. 솟구쳐

오르는 리듬과 이미지가 표현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일 뿐이다.

시의 단어가 갖는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드러내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이다. 여기서 미리 말

해둘 것은, 개개의 시 작품의 의미와 시를 쓰는 것의 의미는 서로

다르며, 우리가 주목을 끄는 것은 시인이 시를 쓰고 독자들이그것

을 다시 살려내는 시적 행위의 의미인 것이지, 이런 혹은 저런 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다. 이제, 시가 원초적인 인간의 조

건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시를 쓴다는 것이 인간의 결핍 혹은 근원

적인 결함에 대한 판단 이외에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근원적 조건

은 본질적으로 결함을 갖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우연적이며 유한하

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앞에서 놀라는 것은, 세계가 낯설고 황량

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는 것은, 세계

속에서 인간이 갖는 의미란 고작해야 인간의 존재 가능성이 세계에

부여하는 의미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그

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곧 죽음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나자마

자 곧 죽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의 삶은 낯설고 황

량한 곳에 머물러 있는 극도의 불유쾌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인간의

삶이 불유쾌한 것은, 인간이 향해가는 곳이 무이며 비존재이기 때

문이다. 인간의 '결핍' 혹은 '부재' 는 원천적인 것이지 후천적으

로 연유되는 것이 아니며, 결핍 그 자체가 인간의 존재 방법이다.

 

  다시 말해 결핍은 인간의 근원적 조건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본래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하이데거는 오토와

일치하는 것 같다. "(인간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의 존재란 "현재를 사는,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즉 죽을 운명"이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확실히 인간에게 신의 완전함이라는 관념

은 배제되어 있으면, 근거 없는 결핍과 구원 없는 부채가 주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빚지거나 혹은 결핍의 상태

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것은 갚을 길 없는 부채이며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인생은 꿈이다]를 쓴 스페인의 극작가 칼데론과 불교가

말하는 바는 옳다. 인간의 가장 큰 죄는 태어난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태어남은 이미 죽음을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해석이 가

져온 역할을 우리에게 목포한 하이데거의 분석은 결국 우리가 속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었다. 만일 시를 쓴다는 것이 진실로 인간의 원초

적이고 영원한 조건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활과 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