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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의 궁전
丹野의 깃털펜/풍경이 되고싶은 詩

물컹한 슬픔 2 / 김경성

by 丹野 2009. 1. 10.

        


 

 

물컹한 슬픔 2 -사과나무

 

                       시 : 김경성

                        그림 : 김성로 


한 사람이 무릎 꿇고 앉아 먹을 갈았다

맑은 물이 먹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제 빛을 잃었을 때

그는 마음속의 심지를 꺼내서 그림을 그렸다

붓끝이 휘어질 때마다 나는 부러질 듯 몸을 구부렸다

화선지 너머까지 나아갈 수 없었다, 화선지 밖으로 나가는 일은

잘 드는 칼날에 몸을 베이는 일이었으므로

거미의 다리처럼 몸을 구부려서

꺾어진 관절마다 베인 상처의 틈

을 헤집는 찬바람 눈물겨운 일이어서  

휘어진 그대 가슴 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꺾인 몸 사이사이  꽃망울 걸어놓았다

꽃 지고 몇 번의 태풍이 지나고 나니 여름이 갔다

먹물 찍은 붓이 지나간 자국마다 조금씩 더 깊은 그림자 졌다

붉은 꽈리 밀쳐두고

그의 마음속 심지가 있는 곳에 

눈물 담뿍 들어 있는 붉은 등 내다 걸었다

펴지지 않는 굽은 등뼈 마디마디 환했다

그제야, 먹물 빛 사라지고 화선지 가득 붉은 꽃물 흥건했다

 

 

 

출처 :김성로(KIM SUNG RO) 원문보기 글쓴이 : 솔뫼 김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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