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시집] 타인의 슬픔
지은이 - 나호열
타인의 슬픔 1 / 나호열
문득 의자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의자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으므로
제 풀에 주저앉았음이 틀림이 없다
견고했던 그 의자는 거듭된 눌림에도
고통의 내색을 보인 적이 없으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결합했던 못을
뱉어내버린 것이다
이미 구부러지고 끝이 뭉툭해진 생각은
쓸모가 없다
다시 의자는 제 힘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태어날 때도 그랬던 것처럼
타인의 슬픔을 너무 오래 배웠던 탓이다
타인의 슬픔 - 미네르바시선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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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 - 1953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했다.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무크지 우리 『함께 사는 사람들』(1981)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동안 울림시, 미래시, 시우주 문학회의 동인으로 참가했다. 월간문학 신인상(1986), 시와 시학 중견 시인상(1991), 녹색시인상(2004), 세계한민족작가상(2007)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국예총 정책연구위원장 겸 월간 예술세계 편집주간, 인터넷문학신문 발행인, 시와산문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문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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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내일이면 닿으리라
폭설 _ 13
산에 들어 _ 14
겨울밤 _ 16
장성 지날 때 _ 17
삼부연 폭포 _ 18
밤길 _ 19
낙엽에게 _ 20
거룩한 손 _ 21
가을의 기도 _ 22
원경(遠景) _ 23
보름달 _ 24
너에게 묻는다 _ 25
큰 물 진 뒤 _ 26
바람소리 _ 27
내일이면 닿으리라 _ 28
봄밤 _ 29
사월의 일기 _ 30
인두염 앓던 날 _ 31
법고 치는 사내 _ 32
음지식물 _ 33
제2부 시간을 견디다
하루 _ 37
사랑은 앓는 것이다 _ 38
겨울의 자화상 _ 39
사막의 문 _ 40
오래된 책 _ 41
옛길 _ 42
긴 편지 _ 43
그가 말했다 _ 44
시간을 견디다 _ 45
풍경 _ 46
김옥희 씨 _ 47
낮달 _ 48
제3부 탑과 나무가 있는 풍경
75번 국도 _ 51
춤 _ 52
경강이라는 곳 _ 54
경강역에서 _ 55
사막의 금언 _ 56
정선 강물 _ 57
어느 새에 관한 이야기 _ 58
먼 길 _ 59
가마우지 한 마리 _ 60
섬 _ 61
신탄리행 _ 62
삼릉 숲 _ 63
정선 장날 _ 64
사막에 살다 _ 65
탑과 나무가 있는 풍경 _ 66
저어새의 다리 _ 67
제4부 강물에 대한 예의
커피에 대하여 _ 71
모래를 쌓다 _ 72
길을 찾아서 _ 73
고백하라, 오늘을 _ 74
어느 나무에게 _ 75
백발의 꿈 _ 76
문 _ 77
아다지오 칸타빌레 _ 78
검 _ 80
안아주기 _ 81
강물에 대한 예의 _ 82
전등을 신봉하다 _ 83
불꽃놀이 _ 84
풍경 속으로 _ 85
폭포 _ 86
눅눅하다 _ 87
붉은 혀 _ 88
거울은 벽에 등을 대고 있다 _ 89
타인의 슬픔 1 _ 90
타인의 슬픔 2 _ 91
인생 _ 92
어느 범신론자의 고백 _ 93
│해설│
인고의 세월 속에 풍화된 기다림과 성찰의 시학·박영우 _ 94
인고의 세월 속에 풍화된 기다림과 성찰의 시학
이 시집은 나호열 시인의 시집으로 사막 같은 상처로 가득한 세상에서 상처난 길을 수행하듯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시인을 볼 수 있다. 시인의 시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 아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시인은 영원히 상처가 없는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그것이 나호열 시인의 숙명이기에...
우리들의 삶이란 사막에서 길을 찾고 또한 길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들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고 만들어가는 일이란 어쩌면 수행의 길이요, 고행과도 같은 길이다. 더군다나 시를 쓰는 시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목적지가 없는 길을 평생토록 묵묵히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길에는 왕도가 없다. 오직 온갖 번뇌와 외로움만이 황량한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가득할 뿐이다. 나는 어느 날 그 모래언덕 어디쯤에서 나호열 시인을 만났다. 그는 사막 같은 세상에 길을 내고 또 그 길들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낯선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 길의 끝은 언제나 상처로 가득하다. 그 상처난 길들을 수행하듯 걸으며 시인은 또한 그 상처를 시로 치유하고 아물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상처가 없는 새로운 길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날 것이다. 그것이 시인과 우리 앞에 놓인 숙명이기에. 나호열 시인의 시편들이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명시들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_박영우(시인·경기대 교수)